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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노킴 Nov 13. 2021

지노 배낭여행기 - 지중해를 찾아서 50

비엔나의 연인

2009 11 30() 비가 추적추적


비엔나 왕궁

일단 비엔나는 볼거리가 꽤 많다. 그러나 비가 추적추적 내려서 구경을 할 수도 없고 사진도 찍을 수 없다. 지금까지 비가 와서 구경 못하고 사진 못 찍은 날은 없었는데..... 오늘이 처음이다.


  

비엔나 사진이 그려진 비엔나 우산

비엔나에서 처음으로 산 물건이 밥도 아니요 비엔나커피도 아니요 비를 막는 우산이다.  

  

비가 오면서 날씨는 왜 이렇게 추운지. 비가 조금 그치면 차에서 내려 사진 몇 장 찍다 보면 손이 얼얼하게  꽁꽁 얼어버린다. 오늘이 며칠인데. 요샌 날짜와 요일의 감각이 없다. 오늘이 2009년 11월 30일이다. 날씨가 추워지려나.  



비엔나 왕궁

 비엔나 왕궁이 다른 나라 어느 왕궁보다 규모나 건물의 운치가 떨어지지 않고 색다른 양식이 볼만하다. 이 비 오고 추운 날씨에도 관광객들이 이렇게 그룹으로 떼 지어 다니는데 모르긴 몰라도 여름 성수기에는 제법 많은 인파의 물결이 이도시에 밀려들 것 같구나.


왕궁의 휘장


오스트리아 역사: 약 Bc 1000년부터 이 지역에 인간이 거주한 흔적은 있는데 본격적으로는 로마제국이 소금과 철을 가지기 위하여 도시를 유지했고 초기 로마제국 후에는 아르메니아, 바바리안, 슬라브족들이 흘러 들어와 그들이 조상이 되었고 9세기경 왕국이 형성되어 유지되다가 1273년에 합스부르그 가문 출신이 신성로마제국의 황제로 선출(루돌프 1세)되어 (제위에는 오르지 못했음) 그 뒤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에 의해 신성로마제국이 1806년 해체될 때까지 약 600년간 신성로마제국 황제 선출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다가 나폴레옹에 의해 기가 완전히 죽었지만 명맥을 유지하기 위해 정략적으로 합스브르크 가문의 딸들을 프랑스 왕들에게 출가시켰다



마리아 테레사 황후

그중 유명한 왕비는 루이 14세 왕비인 마리아 테레사(1638-83). 스페인 출신인 테레사는 프랑스와 스페인의 오랜 전쟁 이후 평화조약의 일환으로 사촌관계가 되는 루이 14세와  정략적으로 22살 때 결혼했다. 순탄한 결혼생활도 하지 못한 채 55살 나이로 영면했다.



마리 앙투아네트

루이 16세 왕비인 마리 앙투아네트(1755-93). 부친은 신성로마제국의 황제인 프란츠 1세이고 모친은 합스부르그가의 상속녀이자 헝가리. 보헤미아의 여왕이자 신성로마제국의 황후인 마리아 테레지아로 가문은 최고다. 당시 정세가 프로이센의 위협으로 프랑스와 동맹관계를 강화하려는 목적으로 프랑스 황태자 루이 오귀스트(나중에 루이 16세)와 정략적으로 결혼. 적적한 궁중 생활을 사치와  파티로 재정 지출을 초래하여 많은 백성의 원성을 사다가 1793년 프랑스혁명 재판으로 루이 16세와 함께 단두대에서 아침이슬과 함께 사라졌다.  



마리 루이즈

 나폴레옹의 두 번째  황후 마리 루이즈(1791-1847). 마리 루이즈는 부친인 프란츠 2세의 명령으로 나폴레옹이 조세핀과 이혼하고 난 뒤 가문의 존속을 위하여 나폴레옹과 결혼을 강요받아 하기 싫은 결혼을 하였다. 그러나, 결혼 후에는 나폴레옹의 사랑을 받으며 행복한 결혼생활을 하다가 나폴레옹이 몰락한 말년에는 파란만장한 생을 보냈다.

 

그 후 주위 열강들의 침입을 물리치고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을 형성하여 1차 세계대전까지의 역사는 헝가리와 비슷하다. 2차 세계대전전까지는 독일의 속국이 되었다가 2차 세계대전 패전 후에는 1945년부터 1955년 10년 동안 연합국 감시하에 있다가 1955년 영세중립국으로 선언하면서 독립하여 현재에 이름.

 

합스부르그 가문: 시간 나면 한번 파디비 볼만한 정도로 이 가문이 유럽의 다른 가문과 정실로 얽혀있다. 원래는 그 이름은 스위스 슈바벵 지방에 세워진 합스부르크 성에서 유래했다고 하는데 처음에는 스위스와 남독일 지방의 작은 백작 집안이었는데 독일 남부지방으로 그 세력이 확장되어(집안의 누구인가의해 관리가 잘 된 모양이다. 그 비결이 뭔지 궁금하다) 그 영향력이 신성로마제국에 미치어 나중에는 신성로마제국의 황제에도 선출되었고 그 선출 과정에도 깊숙이 개입하여 제일  잘 나갈 때에는 오스트리아 왕, 독일 왕, 신성로마제국 황제, 에스파냐 왕, 포르투갈 왕의 왕가로 유럽 최대의 왕실 가문으로 이름을 떨쳤다. (그러니까 리스본 박물관에 가도 이가문의 이름이 나와서 그때는 매우 궁금했었다.) 단, 이 가문이 왕을 배출하지 못한 유일한 나라가 프랑스이다. 아마도 부르봉 가문에 의해 대단한 견제를 받은 모양이다.



호프부르크 왕궁(The Hofburg)

THE HOFBURG COMPLEX: 옛날의 거대한 왕궁이 거의 6백 년간 유럽을 통치한 합스부르그 왕실의 권력과 권위를 보여준다. 현재는 신성로마제국의 황제들의 침소, 박물관, 예배당과 성당, 국립 도서관, 동계 승마학교, 대통령 집무실로 많은 관광객에게  일부를 보여주고 있지만  그 옛날에는 유럽 권력의 중심지로 독일, 프랑스, 이태리, 스페인, 포르투갈의 왕들을 통치했던 신성로마제국의 총사령부로 반세기 역사를 주물렀다.  저 기마상 주인공은



입신출세한 유진 왕자

DMSPRINCE EUGENE OF SAVOY(1663-1736): 왕궁에 들어서면 제일 먼저 눈에 띄는 기마상인데 합스부르그 황실과는 아무런 인척관계는 없지만 합스부르그 황실에게는 중요한 인물이다. 출생은 프랑스 파리에서 SAVOY 명문가문 출신으로 SAVOY가문도 왕족가문이다.  그래서

PRINCE EUGENE으로 불린다. 타고난 약골 체질로 처음에는 성직자의 길로 갈려고 했으나 19세에 입지(立志)를 무관의 길로 바꿔 당시 프랑스 군주 루이 14세 휘하의 군대에 복무하려고 하였으나 퇴짜 맞고 짐 싸서 비엔나로 와서 합스부르그 황실에서 무관으로 출발했다. 그 후 죽을 때까지 합스부르그 출신 신성로마 황제인 레오폴드 1세, 조셉 1세, 찰스 6세  3명의 군주에게 충성을 다하여 신성로마제국이 부흥하는데 기여한 인물이다. 유진 왕자가 20세가 되는 1683년 오토만 터키가 동유럽으로 총공세를 몰아 어제 내가 지나온 헝가리 부다를 점령하고 비엔나 교외까지 육박하였다. 신성로마 제국이 이른바 풍전등화 같은 상황이었다. 이때 이들을 물리친 공으로 명성과 신임을 얻게 되어 출세의 길을 걷는다. 그 후 오토만 터키를 헝가리 부다에서 물리쳐 헝가리 왕국을 구하는데 일등공신으로 그 공을 기리기 위하여 그의 기마상이 헝가리 왕궁 앞 뜰에도 있다.  신성로마제국의 합스부르그 가문 역사에 한 페이지를 크게 장식한 인물이다. 이름하여 유진 왕자.


유진 왕자 기마상


AMALIENBURG

1575년 신성로마제국 황제인 막시밀리언 2세가 아들 루돌프를 위해서 지은 별궁으로 바로크 양식의 시계탑과 르네상스식 FACADE(건물 정면 장식물)가 유명하다.     



호프부르크 왕궁 정면 입구의 장식


정면에서 본 호프부르크 왕궁에 중축한 Neue Burg(신궁)

NEUE BURG. 원래 있던 왕궁에다 1913년 증축한 부분. 이 광장에서  2차 세계 대전전 1938년 아돌프 히틀러가 수 만 명이 모인 비엔나 시민들 앞에서 일장연설을 토한다. 독일과 오스트리아가 연합하여 유럽 질서를 바로 잡아야 한다고 그 특유의 웅변으로 사람들의 맘을 휘어잡는다.

지금으로부터 꼭 71년 전이구나.



Neue Burg 야경


아돌프 히틀러(1889 - 1945)


NEUE BURG로 들어오고 있는 히틀러. 뒤에 보이는 동상이 NEUE BURG 사진에 보이는 그 동상이다.  


            

왕궁 안에 맀는 greenhouse

BURGGARTEN의 GREENHOUSE: 왕궁 정원 BURGGARTEN 안에 있는 온실



프란츠 1세

BURGGARTEN에 있는 기마상은 1745-65년 사이에 신성로마 황제를 지낸 프란츠 1세로 프랑스 루이 16세의 장인이다. 즉, 그의 딸 마리 앙투아네트를 프로이센의 위협에 직면하여 프랑스 황실과 정략결혼시킴으로써 딸의 마지막 순간을 단두대에서 보내게 한 비정의 아버지다.  



 

Albertina 미술관

Albertina는 왕궁 끝에 있는 미술관인데 알베르트 공(위에서 언급한 마리아 테레사의 사위) 이름을 따서 명명했다고 함. 약 65천 점이 넘는 수채화 및 그림,  7 만점이 넘는 사진작품이 전시되어 있는데  그중 루벤스, 미켈란젤로, 피카소 등 유명 화가 작품도 볼 수 있다고 함.



국회의사당

지금은 오스트리아 공화국의 국회의사당이지만 원래는

1884년에 완성된 합스부르그가의 부속건물로 축조된 우아한 빌딩이다. RAMP로 올라가면 의자에 앉아있는 인물 조각상이 보이는데 고대의 철학자와 정치가라 하는 것 보니 뒤에 국회의사당으로 용도 변경되고 난 뒤에 더해진 것 같다. 국회의원들에게 현명한 철학자나 정치가처럼 정직하게 일 똑바로 하라고 본보기로 세워 놓은 것 같다.



아테네 분수대

의사당 앞에 있는 아테네 분수대.   그리스 지혜의 여신 아테네상을 중심에 세운  분수대로 1902년 세워졌다고 한다.    


많이 힘들어요?

아테네 분수대 옆에 세워놓은 동상으로 바다의 신 포세이돈과 여동생 아테네를 떠 받치고 있는 무명의 일꾼들의 애쓰는 모습이 안쓰럽다.



자연 역사 박물관

NATURAL HISTORY MUSEUM. 1889년에 문을 연 자연 역사박물관. 전시된 사료가 고고학적, 인류학적, 광물학적, 동물학적, 지지학적으로 가치가 있단다.  공룡 화석 및 인류 두개골 화석 등 유럽에서 가장 광범위하게 전시된 박물관이라고 한다.


자연역사 박물관 입구
마리아 테레사 광장의 마리아 테레사

MARIA THERESIA PLATZ. 박물관 오른쪽에 있는 마리아 테레사 광장에 앉아있는 마리아 테레사 여제. 1888년 완성. 신성로마제국 황제 카를 6세의 딸이며 역시 신성로마제국의 황제 프란츠 1세의 황후로 프랑스 왕 루이 16세의 장모가 된다. 당시 신성로마제국은 마지막으로 기울어가는 형세이지만 실세는 오스트리아 합스부르그 가문이 쥐고 있었다. 게다가 부군인 프란츠 1세가 정치적으로 무능했기 때문에 마리아 테레사가 국정을 능수능란하게 운영하여 그 후 마지막 몇 대가 신성로마제국 황제의 왕관을 이어갔다. 동상은 " PRAGMATIC SANCTION OF 1713"을 기념하여 세운 것으로 여자도 남자처럼 왕위를 계승받을 수 있도록 칙령을 선포한 기념이다. 동상 주위로 4명의 칙사를 4방으로 칙서를 선포하는 의미로 세우고 중앙에 있는 인물은 가신으로 그중에 여제의 주치의도 있단다. 여제가  5남 11녀를 생산했으니 주치의가 할 일이 무척 많았겠지.   



마리아 테레사

 

칼성당 전경

1713년 중세 유럽을 강타한 흑사병이 비엔나도 퍼졌다. 당시 황제였던 칼 6세가 공언하였다. 흑사병이 물러나면 죽은 영혼을 위하여 성당을 지으리라고. 다음 해에 황제는

성당 건축 공모전을 열어 최상의 블루 프린트를 선택하여

25년 걸려 칼 성당을 완성하였다.



칼성당(Karlskiche) 왼편 탑

중세기 흑사병이 유럽을 강타했을 때 칼 왕이 죽은 영혼을 위해 1714-39년에 지은 성당으로 고대 그리스 로마 건축 양식에다 바로크 양식을 가미한 걸작품이다.


칼성당 탑

이슬람의 미나렛(minaret)을 모방한 탑 표면에는 성자

CHARLES BORROMEO의 일대기를 묘사하는 장면들을 조각해 놓았다.



슈테판성당:(STEPHANSDOM)

비엔나에서 제일 오래된 성당. 원래 건물은 13세기 초에 만들어졌지만 일부 몇 부분만 제외하고 나머지는 뒤에 14,15세기에 걸쳐 재건축한 건물이다. 비엔나 시에서는 대표적인 성당으로 소위 말하는 MUST TO SEE(꼭 봐야 할 리스트)에 올라 가 있다. 북쪽 TOWER 종이 있었는데 원래 이 종은 1683년 비엔나 교외까지 침공했다가 퇴각한 오토만 터어키 군대가 버리고 간 대포를 녹여서 만든 종이었는데  재수 옴 붙었는지 1945년 화재 시 떨어져 깨졌다. 그래서 깨진 종에다 쇠를 더 얹어 좀 더 크게 만든 종이 지금의 종이다. 아마 비엔나에서 관광객이 제일 많이 북적대는 장소가 여기일 거다.



Prater

원래는 왕실 전용 사냥터인데 이를 공원과 시민들 휴식처로 전환. 시 외곽에 위치. 가보니 슬랏 머신 카지고도 있고 애들 좋아하는 타는 것들도 많다. 이안에 테니스코트, 수영장, 골프코스, 바로 옆에 비엔나시 스타디움(여기 말로 stadion이라 하더라)도 있다.


프로이트 지그문트 박물관: 잘 알제. 꿈해몽 전문가. 안 가봤다.



국립극장(THE BURGTHEATER)

1888년에 개축한 극장으로 독일어권 지역에서는 제일 우아한 극장으로 꼽힌다.  2차 세계대전 때에는 본관은 폭격으로 파손되어 복구되었지만 양 사이드 부속 빌딩은 화를 면했다.  중앙 본관 건물 위에 손들고 있는 조각상은 제우스 아들인 아폴로 신인데 여기에 앉아있는 이유가 아폴로 신이 태양과 빛 외에도 음악과 시를 관장하는 신이기 때문이다.



시청사

1872-1883년에 준공된 시의회 건물. 중앙의 탑 높이가 100미터. 꼭대기에 깃발을 들고 있는 기사의 상이 3미터이다. 이 건물 안에는 7개의 COURTYATRD가 있는데 하계 콘서트가 여기에서 개최된다고 한다. 우리식으로 보면  CITY HALL이다.



THE CHRISTKINDLMARKT: 시청사 앞 MARKET으로 연말연시로 빌딩에 장식을 하여 눈길을 끄며 이를 찾는 관광객들로 북새통을 이룬다. 여러 다양한 점포들이 들어 있어 관광객들의 발길을 멈추게 한다.


크리스마스 트리로 장식한 시청사


비에 젖은 시청사 건물


 소시지 백화점. 소시지 관련 제품은 여기서 다 볼 수 있다.  



연말이라고 거리에는 형형색색 전구로 예쁘게 장식했다.


그 외 시 센 빌딩, 오페라하우스, 슈브룬궁전(비엔나시 교외에 위치. 아름답다 하는데 담에 가보지)등 볼게 많은데 다음에 가서 한번 더 봐야 할 것 같다. 절친이 여기 맛집에서 파는 음식을 꼭 먹어 보라고 했는데, 지금 위장이 더 이상 서양 음식에 견디기 힘들어 중국집 가서  뷔페 2 그릇 댕기고 나왔다. 비엔나 어느 거리에는 다섯 집 건너 중국집 하나씩  있다.-j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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