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홍콩 입성
이천십 년 시월이십육일,맑음, 화요일
여행 첫날부터 중국 야간 버스에서 밤을 새우고 뉴욕 맨해튼을 이른 아침에 도착했다. 배낭여행의 첫 발걸음을 맨해튼에 있는 차이나 타운에 떼고 지하철 타러 가는데 배낭의 무게가 등골부터 허리로 해서 아랫도리로 전해 내려오는데 장난이 아니다. 이렇게 갈 수 있을까. 어제저녁에 원래 가지고 갈 품목대로 꾸려 보았더니 배낭이 하도 무거워 다시 꾸렸다.
유격훈련 시 야영 안 간다 생각하고 침낭을 빼고
작년에 들고 갔던 소니 바이오 17인치가 조금 커 보여 가벼운 13인치 애플 맥 프로로 대신하고
선택의 여지도 없이 삭제 품목 우선 1위로 삼발이를 빼고
모자와 쓰리빠만 넣고 시집과 인터넷폰은 빼 버렸다.
비상식량 없어 굶어 죽지는 않겠지 생각하면서 몽땅 들어내고
무게의 주범이 책들이기에 위에서 선택한 4권의 여행 가이드도 빼 버렸다. 가서 볼만한 것들은 대부분 머릿속에 숙지되어 있고 모르는 것들은 현지에 가서 개긴다 생각하고………짐을 이렇게 명절날 백화점 바겐세일처럼 확 DC 해서 꾸려 보았는데도 배낭은 여전히 무겁다. 내가 배낭여행의 왕초짜임에 분명하고 이제 이만한 무게를 지고 갈 튼튼한 몸이 아니라는 말인가. 갑자기 집에 돌아가고 싶은 맴이 잠시 새털구름처럼 일어났다 사라진다. 뭔가 처음부터 잘못 시작되고 있다는 느낌이다. 배낭 여행자처럼 맨해튼의 차이나 타운을 걸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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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낭 여행자의 준수 수칙이 몇 가지 있는 것 같더라.
이건 내가 하도 인터넷 배낭 여행기를 많이 찾아봐서 그런 건지 그런 여행기에는 이런 암묵적인 신사협정 같은 것이 있다. 첫째, 이동하는 거리가 짧은 경우에는 무조건 걸어라. 둘째, 여행지에 도착해서 만나는 무수한 삐끼들(공항, 터미널의 택시 기사들, 숙박업소 안내자들, 현지 여행 가이드 주선업체)을 공산당 무찌르듯이 많이 쳐 부수고 초반에 넘어가지 말고 끝까지 물고 늘어져서 삐끼들이 스스로 졌다 하는 항복 사인이 있을 때까지 흥정을 유리하게 이끌고 가라. 셋째, 여행 경비 예산이 어떻든 간에 저렴한 게스트하우스나 민박집을 찾아가서 비용을 줄이고 많은 여행자를 만나 현지 정보를 입수하라. 넷째, 현지에서 받을 수 있는 투어 프로그램은 혼자서 NEGO하지 말고 여러 사람을 모아 담합하여 흥정하면 비용을 줄일 수 있다. 예를 들면, 이집트 여행자들이 많이 하는 사막투어도 현지에 가면 그런 업체가 많이 있어 사람 수를 가지고 가격을 깎아 보라는 말이다. 그러나, 이 말도 여러 상황이 맞아떨어져야 소기의 목적을 이룰 수 있다. 비수기에 가서 같은 배낭 여행자 못 만나면 혼자서라도 비싸게 투어 할 경우도 생길 수 있다. 다섯째, 어떤 경우라도 수브니어를 사지 마라. 배낭여행의 가장 힘든 점이 배낭 무게를 가볍게 해야 하는데 기념품을 가는 곳마다 사 가지고 어떻게 마지막까지 가지고 다닐 수 있을까. 이런 점에 비추어 볼 때 내가 저지른 실수는 카메라를 3대나 가지고 왔고 컴퓨터를 짊어지고 왔다는 것이다. 특파원 임무 멋지게 완수하려면 이 정도는 감수해야 할 것 같은데 아침에 배낭을 지고 걸어 보니 그게 아니었다.
친구도 오래간만에 보고
뉴저지로 건너가기 위해 지하철 타고 조지 워싱턴 브리지 근처에서 내렸다. 통상 여기 사는 한인들은 이 다리를 그냥 조다리라고 부른다. 그곳에서 택시 타고 다리를 건너가고픈 유혹을 물리치고 배낭 여행자답게 걸어서 버스 타는 곳까지 가서 버스 타고 다리를 건넜다. 버스 타고 지나가면서 허드슨강을 보니 뉴저지 쪽에는 단풍 색조가 제법 물들어 가을의 정취가 진하게 느껴진다. 뉴저지에서 CS와 빨간 바지(작년 유럽 여행기에도 등장하는 절친 중학교 동창과 그의 배우자)를 만나 점심 먹을 때까지 몇 시간 여유가 있어 뉴저지 찜질방에나 가서 시간을 죽일까 생각했는데 걷다가 보니 지난 금요일에 찍어서 사놓은 주식을 처분해야 할 것 같아 길 가다가 벤치가 있어 배낭 내리고 컴퓨터로 근처 공중을 날아다니는 WIFI 잡아 가지고 찜질방 대신 월스트리트 시장에서 잘 놀았다.
오래간만에 만난 친구가 내 여행 복장을 보더니 니 진짜 여행자 같은 폼 난다고 치켜세워준다. 세명이 점심 식사를 한식으로 때우면서 멀리 떠나는 나를 위해 많이 먹어 두라고 한 마디씩 한다. 그래 미국 땅에서 먹는 마지막 한국 음식인데 맛있게 잘 먹어야지. 2012년 네팔 안나푸르나 트레킹 대장 CS가 차로 뉴저지 공항까지 데려다 주어 배낭 여행자가 누릴 수 없는 호사를 한번 더 누렸다. 배낭 여행자라면 당근 버스를 타고 갔어야 했는데 말이야.
콘티넨탈로 오늘 첫 도착지 홍콩 가는데 오늘 오후 3시 15분에 출발해서 내일 저녁 7시에 도착하니 시차 빼고 약 15시간을 비행기 안에서 죽쳐야 한다. 배낭에서 부칠 수 없는 카메라와 컴퓨터를 빼고 짐을 달아보는데 35 파운드다. 줌렌즈는 옷가지로 둘둘 말아 배낭 깊숙이 넣어서 FRAGILE 마크를 배낭 앞뒤로 잔뜩 붙여서 보내 보는데 별 문제가 없을는지 조금 걱정이 된다. 그러면 손에 들고 가는 이 짐 무게가 15 파운드라 해도 전체가 50 파운드인데 그게 그렇게 무겁다는 말인가. 무게에 대한 감이 없다. 싱가포르 갈 때 전체 무게를 다시 한번 달아봐야지.
일찍 온 탓에 짐도 금방 부치고 보안 검색창구도 지나고 보딩 게이트 앞에 가니 우랄 알타이 몽고족들의 정겨운 얼굴들이 많이 보인다. 우리 눈에는 구분이 되는데 서양인들에게는 전혀 구분이 안된단다. 중국, 일본, 한국, 베트남, 필리핀은 나도 식별할 수 있다. 물론 태국, 버어마, 캄보디아, 라오스 같은 종족은 세부적으로 알아맞추기는 힘들어도 대강은 식별할 수 있다. 시간 되어 탑승하는데 홍콩 가는 비행기에는 틀린 점이 하나 있다. 일반적으로 보안검사는 들어올 때 짐 검사, 몸 검사해서 마치는데 홍콩 탑승 게이트에는 안에 들어 가보니 2차 보안 검색이 있는데 마약 탐지견까지 동원되어 있었다. 2차 검사는 검사 요원이 인위적으로 찍어서 소지품까지 검사하는데 난 찌질하게 보이는지 그대로 보내주었다. 잘은 몰라도 중남미 등지에서 미국으로 밀반입된 마약류가 미국에서 홍콩으로 흘러가는 모양이다. 비행기 안에서 한숨 자고 밥 묵고 또 한숨 자고 영화 보고 또 한숨 자고 오늘 일기를 적어 보고 해도 시간은 되지게 안 간다.
비행 경로를 보니 뉴저지에서 출발해서 캐나다 상공을 통과해서 캄차카 반도를 지나는 것은 한국 가는 것과 동일한데 홍콩은 러시아로 들어와서 중국 자국 상공을 통과하여 들어오고 , 한국은 일본 홋카이도 북부를 통과해서 동해 쪽으로 들어온다.
내가 홍콩 가서 보고 한번 풀어 볼 숙제가 있는데 이런 거다. 우리말에 “홍콩 가게 해줄게.” “ 이거 먹으면 홍콩 간다.”등등 홍콩과 관련된 말들이 많은데 과연 어떻게 해서 이런 말들이 생성되었을까 하는 것이다. 영어로 표현하면 심플하게 GET HIGH 또는 BE IN THE 7TH AVE 정도인데 왜 이런 말이 홍콩하고 연관이 되는지. 혹시 이게 홍콩의 대표적 마피아 조직인 삼합회하고 관계있는 말인지….. 취재수첩의 한 목록이다.
아무리 용을 써도 시간은 제자리걸음이다. 아직도 5시간을 더 가야 된다 하니 지겨워 죽을 지경이다. 미국 현지 시간이 새벽 2시 반이다. 연이틀 새우잠으로 때우고 깨어 있다. 성경 말씀에도 깨어있어라 하여 그리 해 보는데 계속 깨어있다가 내 몸에 문제 생기면 누가 책임 줘주나. 오늘 종일 배낭 메고 걸어 본 후유증으로 어깨, 허리, 팔, 다리가 찌근하게 저려온다.
드디어 홍콩에 착륙했다. 국제도시만큼 깨끗하게 잘 정돈되어 있다. 공항 안도 깨끗하고 오목조목 잘 꾸며 놓았다. 그런데 입국 심사하는 곳이 다른 공항 하고는 틀리게 여러 개로 구분되어 있다. 홍콩 주민 전용 심사대, 섬으로 가는 ferry boat 전용 심사대, foreign domestic helper 심사대- 이게 좀 이상해서 사진 한방 눌렸더니 이민국 직원이 와서 방금 찍은 사진을 지워달란다. 보니까 동남아시아 출신 여성 근로자 같은데 말 그대로 홍콩 안에서 일할 수 있는 근로자 모양이다. 그리고, 나 같은 여행자들을 심사하는 일반 홍콩 입국 관광객 전용 심사대가 있다.
별문제 없이 통과해서 배낭 찾아 가지고 공항버스 타러 가는데 위와 같이 노란 색등으로 장식한 공항 벽면이 돋보인다.
공항 밖으로 나가면 공항버스 정류장이 있는데 한인 숙박업소 주인장이 알려준 대로 A21 버스 정류소를 쉽게 찾을 수 있다. 요금은 33 홍콩달러이니까 미국 돈 5불이 채 안된다. 배낭 여행자답게 버스를 타고 숙박지까지 이동한다. 주의할 점은 잔돈을 안 주니까 정확하게 잔돈을 준비해서 타는 게 현명하다.
침사초이(TSIM SHA TSUI)가 홍콩의 시내다. 한인이 경영하는 MOTEL을 가기 전에 미국에서 예약했다. 좋은 점은 침사초이 시내에 위치해 있고 아무래도 관광정보가 좋을 것 같아 했는데 혼자 쓰기에 별 불편 없는 모텔이다. 하룻밤에 350 홍콩달러니까 미화 50불이다. 유럽에 비하면 무지하게 싼 가격이다.
내 방에 들어와서 짐을 마음껏 풀어헤쳐 놓고 한판 찍었다. 별 가져온 물건도 없는데 왜 저리도 배낭이 무거운지. 에고 허리, 팔다리야. 그리고 모텔이 방마다 샤워 시설이
되어있어 이용하기에는 아무 불편도 없다.
짐을 대충 풀어놓고 홍콩 밤거리로 나가봤다. 역시 쇼핑의 도시답게 화려한 명품 매점이 많다. 특히 명품 로렉스 시계 매장이 블락마다 있다. 전자제품 상점도 한집 건너 백팩 하다. 영업시간도 대부분 상점이 아침 10시부터 저녁 11:50분까지다. 옷가게, 향수를 포함한 화장품 가게, 거리를 가득 메운 홍콩 주민들로 밤 11시에 거리에 나서도 불야성을 이룬다. 유난히 흑인이 많다. 길 물어보면서 흑인들과 이야기해봤는데 대부분 남아공에서 들어온 흑인들로 영국 식민지와 관계있는 모양이다.
유난히도 많은 홍콩의 보석 상중에 오복도 아니고 거기에 하나 더 보태 육복보석상이다. 이 집은 일찍 문 닫았는데 내일 함 가 봐야겠다. 내가 보기에 여기서 제일 큰 보석상 같다.
중국 냄새가 물씬 풍기는 사진을 찾았다. 보니까 재물신으로 풍성한 재물을 기원하는 부적 같다. 화기 생재. 일본만리는 말 그대로 복을 주어 재산 좀 불어나게 해 주세요.
이것 가지고 주식하면 잘 될는지. 일단 여러분들한테 보여준다.
시내 곳곳에 이런 광고의 일본 식당이 엄치 많다. 그 말은 일본 관광객들이 쇼핑하러 홍콩에 많이 온다는 말인 것 같다. 마찬가지로 한국 식당도 몇 개 눈에 보인다. 내일 저녁부터는 밥 걱정은 없을 것 같다.
길가다가 깜짝 놀랐다. 여기가 대구 달성공원인가 싶어서……. 보니까 화장품 파는 체인점 같다.
구경하다가 또 하나 찾았다. 우리가 잘 아는 세계적인 프로 골퍼 선수들인데 재밌는 게 가들 이름을 한자로 써놓은 것이다. 아마도 발음대로 표기한 것 같은데 어릴 때 서당도
못 다녔고 문교부 한자교육 정책을 제대로 혜택보지 못한 나에게 한자가 어렵다. 필 미켈슨은 비련 미극림(발음 비슷하나?) 이안 폴터를 이은 보투 특….. 재밌네. 타이거 우드는 좀 이상하다. 태격 활사?
이것과 비슷하게 세계적인 음료회사인 Coca Cola를 한자어로 표시하면 가구 가락(可口可樂)이라 하고 경쟁사인
펩시콜라는 백사 가락(百事可樂)으로 표기한다.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켄터키 치킨(KFC)을 긍덕기(肯德基)로 표기하고 컨더지로 읽는다. 또 다른 세계적인 프랜차이즈인
맥도널드는 맥당노(麥當勞')라고 표기하고 읽기는 마이당라오. 생소하지만 재미있는 표현들이다.
침사초이 뒷골목 한 장면이다. 밤늦게 싸질고 다니는 관광객 + 본토 아들이다. 시내답게 젊은이들이 주류를 이룬다. 명동에도 우리의 젊은이들이 활기차듯이. 젊음이 그렇게도 도도하고 늦게 다니도 되는 건지. 아! 옛날이여.
참 여기는 별천지다. 세븐일레븐이 한 블락마다 있다. 여기서는 미국처럼 맥주만 파는 게 아니고 위와 같은 코냑이나 위스키도 판다. 미국은 따로 ABC STORE에서만 하드 리쿼를 판다. 객포를 달래려고 들어 올 때 헤네시 작은 병 하나 사 가지고(홍달 285달러) 와서 반 병 먹으니 그 흔한 말대로 내가 지금 홍콩에서 홍콩 가고 있다. -j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