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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노킴 May 22. 2016

지노 배낭여행기 - 클래식 음악 산책 7

로시니 - 오페라 <윌리엄텔> 서곡

조아키노 로시니(Gioacchino Rossini)

Gioacchino Antonio Rossini(1792-1868)

이태리의 오페라 전성기를 가져오게 한 작곡가중의 한 명으로 우리가 잘 아는 오페라 <세비야의 이발사>도 작곡하였다.  오페라 <윌리엄텔>도 로시니의 잘 알려진 곡으로 윌리엄텔은 몰라도 사과를 머리에 얹고 나무밑에 세워둔 아들을 100보 떨어진 곳에서 활을 쏘아 사과를 맞춘 신궁이바구하면 아 그 양반하고 잘 안다고 할련지도 모르겠다. 실제 인물은 아니고 독일 극작가이자 시인인 쉴러의 시극을 바탕으로 만든 오페라로 스위스의 독립의식을 고취시킨 오페라로 인정받았다.


윌리엄텔 이야기를 그린 판화

오페라 줄거리를 요약하면 이렇다. 13세기 초, 오스트리아의 지배를 받고 있던 스위스 어느 마을에 독립을 꿈꾸는 혁명전사이자 신궁(神弓)인 윌리엄 텔이 주동이 되어 오만방자하게 통치하는 마을 총독에게 대항하여 스위스 독립 운동을 이끈다는 해피엔딩 스토리다. 다른 이야기보다 아들머리의 사과를 맞추게 된 경위는 마을 총독이 광장에 자기 모자를 막대기에 걸어 놓고 지나가는 스위스 사람들에게 인사를 하도록 공시하였는데 윌리엄 텔이 이를 어기자 사과맞추기 내기를 하여 벌을 면제해 주겠다고 총독이 제의를 해서 윌리엄텔이 그렇게 한 것이다.

오페라 전곡은 6시간이나 걸리는 방대한 곡으로 지금은 거의 공연되지 않고 12분짜리 서곡만 사랑받는다. 서곡(序曲)이란 오페라나 연극, 발레, 모음곡에서 처음에 연주되는 곡으로 전체의 분위기나 줄거리를 암시해 준다.(클래식 음악 산책 2에 올렸던 비제의 <카르멘>의 서곡도 그러하다). 이후 이런 짧은 서곡들이 사랑을 받기 시작하자 아예 연주회 연주용으로 작곡된 서곡들이 등장하기 시작하였다.




윌리엄텔 서곡(序曲)의 전개

약 12분의 서곡이 3분 간격으로 분위기를 변화시키는데

첫째는 첼로의 독주로 시작하여 조용하게 새벽을 여는 스위스의 아침을 묘사한다. 그러다가 두번째는 갑자기 현악기의 음이 불길하게 시작되며 폭풍이나 난리가 치는 것처럼 전악기가 요동치는데 아마 스위스군대의 독립전쟁을 암시하는 것 같다. 천둥소리같은 팀파니 소리가 점점 사라지고 전투가 끝났는지 조용한 플루트 독주로 다음 분위기로 넘어간다.  세번째는 마치 거대한 폭풍우가 지나가고 평화로운 아침이 찾아온듯 피리소리를 잉글리쉬 혼으로 독주하는데 이 선율에 맞추어 플루트가 화답하듯 연주되어 마침내 스위스에 찾아 온 평화를 표현하는 것 같다. 마지막 부분이 이 서곡의 하일라이트로 스위스에 독립을 가져다준 윌리엄텔같은 혁명전사들의 힘찬 행진과 민중들의 열렬한 환영 장면을 묘사하는 것처럼 트럼펫의 힘찬 울림을 시작으로 관악기들이 일제히 행진곡을 연주하다가 목관악기가 부드러운 음으로 아름다운 승리의 노래를 부르다가 다시 행진곡으로 돌아와 승리에 넘친 환희와 기쁨으로 마무리된다.



https://youtu.be/rfqJzCqHdjU

전곡중 마지막 Finale 부분만 올린다. 대한뉴스 시그날 뮤직이다.



대한뉴스의 시그날 음악으로

예전에는 영화관에서 영화보기 전에 일어서서 애국가를

들어야 하고(원칙은 불러야 하는데 서로 쪽팔려 부르지는 않고 서서 듣는다) 애국가가 끝나고 자리에 앉으면 위 사진과 같은 흑백 대한뉴스가 정부 홍보용으로 모든 영화관에서 상영되었다. 도대체 언제부터 언제까지 이런 대한뉴스가 의무적으로 상영되었는지 문헌을 찾아보니 1953년부터 시작하여 1994년말까지 시행되었다고 한다. 그 덕분에 많은 한국인들중 클래식 음악에 도통 관심이 없는 사람도 자기도 모르게 <윌리엄텔> 서곡중 마지막 부분 행진곡을 연주하는 트럼펫 연주를 귀에 귀딱지가 앉도록 들어야만 했었다. 왜냐하면 대한뉴스 시그널 뮤직으로 사용한 음악이 바로 서곡의 마지막 행진곡이었기 때문이었다. 오늘 다시 한번 서곡의 마지막 부분을 들으시면 그 옛날 영화관에서 보았던 대한뉴스 첫장면인 태극기가 바람에 펄럭이는 장면이 머리에 떠 오를 것이다. (이를 빨리 들어보고 싶은 사람은 곡을 8:24부터 플레이하시면 된다)




윌리엄텔 특급열차를 타고

스위스 관광청이 이렇게 세계적으로 잘 알려진 오페라이름을 이용하여 위 지도에서 보여주는 것처럼 루체른에서  로카르노와 루가노 열차선을 윌리엄텔(스위스 발음으로는 빌헬름텔) 익스프레스로 명명하여 관광객을 끌어 모으고 있다. 이 특급열차는 아름다운 호수의 선박 투어와 연계하여 호수의 환상적인 경치를 보여주면서 기차로는 여러 터널을 지나면서 스위스 남부지방의 멋진 산악 풍경을 감상하면서 종점이면서 또 다른 관광도시인 루체른으로

데려다 준다.




루체른의 명물 빈사의 사자상(瀕死의 獅子像)

루체른의 명물 빈사의 사자상

루체른도 스위스 관광도시중의 하나로 강과 호수가 있어 알프스 산맥과 루체른 호수의 멋진 경치를 볼 수 있어     5-10월 관광시즌에는 많은 사람들이 찾는 곳이다. 그 중에서도 위 사진의 사자상은 깊은 사연이 있는 조각상으로 유명하여 루체른에 가면 반드시 들러보는 곳이다.


로이스강이 흐르는 로체른. 2009년 겨울

스위스가 <윌리엄텔> 오페라 내용처럼 부단히 독립운동을 전개하여 드디어 1499년 신성로마제국 황제를 배출한 오스트리아로부터 독립하였다. 독립은 하였지만 지금은 관광대국과 정밀 기계산업과 금융허브로 이름을 날리지만 독립당시에는 험준한 산악지대의 가난한 농업국에 불과하여 일자리가 부족한 젊은이들이 인접국가로 돈벌러 나갔는데 대다수가 용병(Mercenary)으로 직업군인의 길을 택했다.




교황청의 보디가드로 부상

교황청 근위병 유니폼.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다자인했다고 전해진다

오스트리아의 압박에서 벗어난 스위스가 용병으로 해외 돈벌이하러 나간 곳이 인근 이태리와 프랑스였다. 당시 신성로마제국의 황제들이 오스트리아의 막강한 합스부르크왕가에 의하여 선출되었기에 오스트리아와 세력다툼을 벌이던 이태리와 프랑스쪽으로 흘러 들어가는 것이 당연한 현상이었다. 이러한 스위스 용병의 용맹성과 충성심을 보여준 사건들이 많았지만 대표적인 사건을 들어보면 다음과 같다.




교황청 공격에 끝까지 교황 보호

카를 5세의 로마 약탈

1527년 당시 스페인 국왕이자 신성로마제국의 황제이기도한 카를5세가 교황청이 있는 로마를 포위 공격하였다. 프랑스를 주축으로한 연합국이 이를 막아 보았지만 역부족이었다. 그 와중에 연합국의 다른 나라 군대는 스페인 군대에 항복하였지만 당시 교황청 근위병으로 근무한 스위스 용병 189명은 목숨을 걸고 교황 클레멘스 7세를 스페인 군대로부터 보호하여 결국 포위망을 뚫고 교황을 탈출시켰다. 이 탈출 작전으로 147명의 스위스 근위병이 목숨을 잃었다. 이후로 바디칸 교황청의 근위병은 오로지 스위스 용병으로만 유지하는 전통을 지금까지 이어가게 되었다.




프랑스 시민혁명에서 전원 장렬한 전사

유럽역사에 크다란 전환기를 맞이한 프랑스 시민혁명이

1792년 8월 발발하였다. 당시 루이16세를 경호하던 왕궁 프랑스군 경비병마저도 전부 줄행랑치고 오로지 스위스 출신 용병만 남았다. 왕궁으로 밀려오는 시민 혁명군에 대항하여 786명의 스위스 용병은 단 한명도 도망치지 않고 고용주를 경호하였다. 역사적인 관점에서 좋은 놈 나쁜 놈을 따져보자면 루이 16세와 그 경호원들이 Bad Boys이고 혁명을 일으킨 시민들의 혁명세력이 당근 Good People이겠지만 고용주(루이 16세)에 대한 충성심에서는 그 어느 다른 나라의 용병보다도 고용관계를 충실하게 이행한 집단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일화에 의하면 너무나 거국적인 시민봉기에 대하여 루이 16세도 진압 의욕을 잃고 스위스 용병 경비병들에게 스위스로 돌아 갈 것을 권고하였으나  모두들 이를 거부하고 "신의는 목숨으로 지킨다"는 뼈있는 한마디를 남기고 용병의 의무를 다 하였던 것이다. 결국 이런 계약이행의 정신이 그 후손들에게 용병으로서 해외취업의 길을 탄탄하게 다지게 되어 지금과 같은 경제대국의 기틀을 마련한 것으로 여겨진다.


이를 기려 1824년에 세운 이 사자상은 프랑스 혁명에서

왕궁을 사수하다 산화한 786명의 용병의 충성심과 용맹성을 기리기위하여 세운 것이다. 등에 부러진 창이 꽂힌채로 괴로운 표정으로 사자의 앞발로 감싸고 있는 것은 백합문양이 들어있는 프랑스 부르봉 왕조의 방패로 왕실에 대한 충성스러운 용병들의 모습을 찬양하는 것이라고 한다.



돌이켜보면 대한민국도 과거 가난에 허덕이던 1960년대 월남전 파병으로 젊은 병사의 목숨으로 바꾼 외화를 벌어 들였고, 1970년대 독일 탄광에서 취업한 광부들의 그리고 병원에서 일한 파독 간호원들의 외화벌이가 본국으로 들어왔고, 1980년대 중동 건설붐으로 많은 근로자들이 열사의 땅에서 흘린 땀으로 벌어들인 오일달러가 그들의 가족들에게 송금되어 이 모든 것들이 우리 경제에 윤활유가 되어 지금의 대한민국이 있지 않았나하고 생각해 본다. 어찌보면 1986년 미국으로 청운의 꿈을 품고 건너 온 지노도 달러벌이에 일조한 공로가 있어 그간 타향에서 지내온 30년의 세월이 루체른의 힘들어 하는 사자상이 스위스 젊은이들의 마음에 영원히 기억되듯이 나의 아들 딸들에게도 오래오래 가슴에 남아 있기를 감히 희망해본다.-JH-


겨울스키로 유명한 스위스 St. Moritz 의 2009년 겨울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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