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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노킴 Jul 19. 2016

지노 배낭여행기 - 아프리카편 4

희망찾아 희망봉으로

10/24/2015(토) 맑음


 희망찾아 희망봉으로


희망봉 옆 해안. 인도양과 대서양 짠물이 짬뽕되는 곳이다

케이프 타운을 찾은 이유중의 하나가 희망봉을 보기 위해서다. 희망이 가득한 봉우리에 많은 꿈이 담겨져 있는 것 같기도 한데 사실 뭍에 사는 사람들을 위한 희망이 아니고 대서양 험한 바닷길을 헤쳐온 뱃사람을 위한 안도의 상징으로 그렇게 이름이 붙여진 것이다.



바스코 다 가마의 1차 항해도

대항해시대인 1488년에 포르투칼인에 의해서 처음으로 발견된 이 곳은 원래 '폭풍의 곶'으로 불릴만큼 거센 풍랑으로 악명이 높은 곳으로 지금도 sailing 하는 사람들이 가장 힘들어 하는 물길중의 하나이다. 그러다가 우리가 잘 아는 유럽과 인도를 연결하는 항로를 처음으로 개척한 포르투갈인 바스코 다 가마가 1497년 리스본을 출발하여 인도로 가는 중 폭풍을 만나 거의 죽을뻔 하다가 여기에 상륙하여 목숨을 건진 이후로 '폭풍의 곶'에서 '희망봉'으로 산뜻하게 개명하게 된 것이다.


대서양 망망대해를 항해하여 아프리카 대륙 최남단인 이 곳을 통과하려면 남극해에서 불어오는 강한 바람과 조류가 인도양의 그것과 합쳐져서 소용돌이 치는 이 곳의 풍랑을 이겨내야 인도양으로 나아갈 수 있다. 그래서 케이프 타운이 그런 중간 보급기지로서의 역할로 마을이 형성된 것이다. 그런데 처음으로 발견하여 상륙한 포르투칼은 그 중요성을 간과하여 점유권을 주장하지 않았기에 여기에 관심을 가진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가 17세기부터 정착하여 이권을 누리다가 금광과 다이아몬드의 발견으로 여기에 군침을 흘린 영국에게 점차 세력을 잃어 현재의 남아공이 영국의 식민지로 전락하게 된 것이었다.



보어전쟁에 참전하여 목숨을 잃은 전사자를 기리는 추모탑으로 조국에 대한 애국심을 고취시키는 씰데없는 문구를 아래에 적어 놓았다.

네덜란드가 영국에게 지배권이 완전히 빼았긴 것이 앵글로-보어전쟁 또는 그냥 보어 전쟁이라고 부르는데 1902년에 끝났다. 희망봉으로 가는 길에 기차를 타려고 시빅센터 근처 광장을 지나가다가 당시 보어전쟁에서 목숨을 잃은 영국 군인들의 애국심을 고취시켜주는 케케묵은 동상을 발견하였다. 영국 제국주의의 지극히 단편적인 흔적을 아직도 보는 것 같아 맴이 찜찜하였다. 보어(boer)란 남아프리카에 정착한 네덜란드계 백인을 지칭하는 것으로 그들이 고안한 언어가 Africans로 현재도 이 곳 흑인들이 사용하고 있는 말이다. Dutch와 흑인 토착어를 서로 비빔밥처럼 섞어서 만들었다고 하는데 다양한 유럽어족의 뿌리를 찾아 볼 수 있다고 한다.





  희망봉으로 가는 기차에서 만난 사람들


관광회사를 통하지 않고 희망봉으로 가 보려고 사방팔방으로 물어 보니 답이 여러가지로 나왔다. 희망봉 가는 버스가 있다고도 하는 사람이 있고 없다고도 하는 사람도 있는데 모른다는 사람이 제일 많았다. 여기 현지인들은 그 곳에 가볼 이유가 전혀 없기 때문이다. 이구동성으로 일단 기차로 Simon's town까지 가서 알아보면 된다고 해서 기차를 타기로 했다. 케이프 타운에서 simon's town 까지 1시간 10분 걸리는데 1등과 3등이 있다하길래 무조건 3등으로 왕복을 끊었는데 요금은 20R(미화 1불 50전)으로 느릿하게 가면서 역마다 승객들이 내리고 탄다. 낙엽에 나오는 그 이름 시몬. '시몬옵, 니는 존나, 낙엽 떨어지는 소리가'  어쩐지 잘 생긴 동네 오빠같은 시몬을 만나러 기차타고 가본다.



Simon's Town 가는 완행기차


플랫폼 5의 11:20분발 Town via Wynberg


첫번째 만난 노르웨이 관광객: 케이프타운 시내에 있는 역 플랫폼5에 정차하고있는 기차를 타기 전 먼저 안에 타고 있던 사람에게 Simon's Town에 가냐고 물어보니 안쪽에 앉아있던 백인이 그렇다고 쾌활하게 알려준다. 노르웨이에서 온 관광객으로 휴가 5주를 전부 케이프 타운에 몰빵하고 있다고 한다. 장발의 블론디에 양쪽 팔에 멋진 문신을 하고 의자 밑에 롱보드(스케이트보드)가 있는걸로 보아 제법 타는 모양이다. 직업은 파일롯이고 나이는 방년 50세로 나이에 비해 상당히 젊게 사는 놈인 것 같다.

Simon's Town에서 좀 떨어진 Muizenberg 라는곳에서 집을 렌트해서 휴가를 보내고 있는 모양이다. 여기가 뭐가 좋냐고 물어보니 기후가 좋고 생활비가 싼게 마음에 든단다. 나미비아 가봤냐고 물어보니 못간건지 안간건지 별로 흥미가 없다고 한다. 많은 희망을 가지고 사는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그런 쪼매(조금) 신비스러운 녀석이다.



Go Pro로 차장 밖 풍경 사진 촬영에 열중중인 노르웨이 블론디


두번째 만난 조직 구걸단: 조금 후 다음 역에서 조그마한 애를 3명이나 데리고 탄 가족들이 뒤에 앉자 붙임성좋은 블론디와 곧 친해져서 수다를 떠는데 그 중 애 한 명이 음료수 사먹게 돈달라고 하자 블론디가 지갑을 꺼내며 단과자 사먹으면 이빨 썩어 안되요하면서 칫과의사같은 소리 한번 하고 도량이 큰 기부자처럼 잔돈을 지갑에서 찾는데 20R과 50R 밖에 없어 꺼내지 못하고 주삣거리다가 나에게 구원을 요청한다. 10R 짜리 있냐고 묻길래 그 꼴이 보기 싫어 있는데도 없다고 넘겨버렸다. 애들 데리고 온 부모는 직접 구걸에 나서지 않고 애들만 풀어 놓고 미인계가 아닌 아동계로 생계를 준비하는 모양이다.


세번째로 만난 철없는 가장: 여자는 알라(애기)를 데리고 내 옆에 앉고 마주보고 호리호리하게 생긴 젊은이가 앉길래 가족같은 느낌이 들었다. 남자에 비해 몸집이 퉁퉁한 애기 엄마는 별말이 없이 이야기를 듣는 편이고 애기 아빠는 쉴새없이 나에게 질문을 해댄다. 남자는 25살, 여자는 23살로 아직 결혼식을 못하고 동거하는 부부로 남자 아버지 집에서 얹혀 산다는데 여자가 나가서 일하고 애 아빠는 실업률 통계 지수에 올라가는 미래 노동가능한 인구에 포함되는 현재 미취업자이다. 아침에 버스를 기다리면서 현지 흑인 여자와 몇마디 나눴는데 여기 실업율이 50%에 육박한다고 하는데 바로 그 50%에 해당하는 임자를 만난 셈이다. 1살백이 계집애같이 잘 생긴 아들이 이 집의 진정한 알라(애기)이고 동시에 전능하신 알라(신)가 되는 것 같았다. 하여간 알라(애기)가 있어서 힘든 하루를 이겨낸다고 하니 머시나든 가시나든 하나만 놓아 잘 기르자. 애기 아빠가 나랑 같이 미국가고 싶다고해서 내가 미국 이민국 직원도 아닌데 오지마라고 할 이유도 없다 싶어서 그냥 말로만 같이 가자고 했다.


나를 따라 미쿡가고 싶다고 칭얼대는 철부지 아빠의 부양가족들


네번째 중학생같은 알라 엄마: 교복같은 유니폼을 입은 조그마한 여자애가 내 옆에 앉기 시작부터 열라 문자만 해대고 있어 한번 슬쩍 눈여겨 보면서 뭐하니하고 물었더니 페이스북하고 있다길래 아 페북하는구나 했더니 페북이 뭐냐고 묻길래 한국에서는 줄여서 그렇게 부른다고 했더니 한참 생각하다가 수긍이 되는 모양이더라. 한 달에 셀폰으로 얼마내니하고 물었더니 500랜드라 하길래 부모님이 대납해주니 했더니 계집애가 눈이 동그래지면서 제가 벌어서 내요하면서 큰 돈이 아닌 것 같이 애기하였다. 너가 알바해서 내는구나 했더니 알바가 아니고 나이가 25살이라면서 하루에 12시간 일하며 5살짜리 알라가 있는 미혼모란다. 너가 중학생같이 보인다고 했더니 계집애가 바람에 떨어지는 꽃잎처럼 시무룩해지더라고... 얼마나 버는지는 몰라도 적지 않은 돈들을 내면서 셀폰을 가지려는 열풍은 현재 전세계적인 추세인 것 같다.



다섯번째로 가장 희망적인 경찰관: 돌아 올 때 같은 기차를 타고 같이 앉아 왔다. 아까 블론디가 내리면서 내 큰 카메라를 보고는 돌아갈 때 꼭 사람들이 많이 있는 객차에 타고 가라고 언질을 주어 경찰이 있는 객차에 타서 아예 경찰 자리 앞에 앉았다. 일단 서로 영어가 되니까 신문기자처럼 취재하기는 좋다. 퉁퉁하게 생긴 28살 경찰 아저씨는 2살, 5살짜리 아들을 둔 가장인데 부인이 Navy 군인으로 잠수함에서 근무한다고 대견스럽게 이바구하면서 셀폰을 꺼내 화사하게 웃으며 하얀 제복을 입고 포즈를 취한 마누라 사진을 보여 준다.(아내자랑하는 팔불출같지만 그래도 무척이나 Proud of Her 하는 것 같다) 경찰 박봉은 한국이나 미국이나 남아공이나 같을 것 같아 묻지 않았다. 그래도 맞벌이 부부이니까 좋은 동네 Simon's Town에 집도 있고 열심히 살아가는 무척이나 희망적인 남아공 국민을 보았다.



여섯번째 기차표 매표 직원: Simon' Town 까지 왕복표를 끊어 준 젊은 직원으로 표 사면서 농반 진반으로 물었다. 내가 여기가 좋아 여기에 살려고 직업을 구하려고 하는데 너같은 직업을 구하면 한 달에 얼마를 벌 수 있겠니하고. 얼마나 교묘한 질문이냐. 걍 한 달에 너 얼마나 벌어보다 훨씬 부드럽고 코너로 몰아붙이는 질문이다. 한참이나 생각하고 있는 폼이 내가 마치 자기 자리를 노리는 구직자처럼 보였는지 (그리고 조금은 그런 점을 고려했는지) 약 미화 천불로 최종적인 offer를 제시하는 것처럼 말하였다. 그런 점을 고려했다는 말은 두 가지로 추측할 수 있다. 첫째, 천불보다 훨씬 낮지만 본인 가오(체면)를 조금 세우는 수준에서 그렇게 말할 수 있고 둘째로, 천불보다 훨씬 높은데 사실대로 알려주면 나같은 외국 근로자가 치고 들어 올 수도 있겠다는 순진한 생각에서는 낮게 말할 수도 있다는 것인데 내 생각엔 전자가 맞을듯 싶다. (사족:여기서 만난 6명중 블론디만 제외하고는 전부 현지 흑인 남녀이다)


여행의 재미는 꼭 현지의 이름난 풍경만 보려고 가는건 아니다. 그것만 보려면 집에서 띵띵한 뱃가죽을 압박하지 않는 헐렁한 반쓰를 걸치고 가죽이나 천소파에 드러누워 쥐포나 씹으면서 세계테마기행이나 시청하면되지 이처럼 이틀간 뱅기타고 고생하며 다닐 이유가 없다. 그곳에서 사는 현지인들의 세상사는 이바구 - 힘들고도 어렵지만 일상이라는 틀에 박혀사는 일반 사람들의 진솔한 이야기- 를 듣고 보는 것도 내가 돌아 다니면서 혼자 느끼는 여행의 묘미이자 내가 선호하는 여행의 기술이다.





  Simon's Town으로


천천히 달리면서 역이란 역은 다 쉬어가면서 기차는 한시간 넘게 달려 Simon 오빠 동네에 도착하기 전 역인 Fish Hoek에 도착했다. Simon' Town역의 선로 보수공사때문에 Fish Hoek까지만 운행하고 여기서 Simon's Town 까지는 무료버스로 실어다 준다. Fish Hoek은 관광 안내서에도 소개될 정도로 해변의 비치가 아름답다. 기차길도

해변을 따라 되어있어 청정한 해변을 볼 수 있었다.



노란색이 강렬한 역 표지판

Fish Hoek 기차역. 강렬한 노란색 표지판과 기차의 도색이 인상적이었다. Fish Hoek의 비치가 유명하여 많은 현지인들이 주말에 비치에서 하루를 보내는 곳이라고 한다.



피사후크 해변에서 즐기는 사람들

Fish Hoek 해변. 많은 현지인과 관광객들이 찾는 곳이다.

걍 기차안에서 훔쳐 보아도 많은 현지인들이 해변에서 물놀이를 즐기고 있었다.


기차 차창 밖으로 보이는 수려한 해변 경치

Simon' Town까지 가는 기차선로가 해변을 따라 놓여있다. 기차안 풍경과는 달리 기차밖의 경치는 한마디로 끝내준다. 희망봉은 중앙에 보이는 작은 산의 왼쪽 끄트머리를

돌아서 가야한다. 기차선로가 해변을 따라 놓여있어 줄곧 시원한 바다 풍경을 보면서 갈 수 있다.



Simon's Town 해변


시몬 마을의 포구

Fish Hoek에서 내려 버스를 타고 도착한 Simon옵의 마을로 아늑한 포구 마을이다. 관광안내도를 보니 여기가 겨울에 폭풍으로 사나운 희망봉 근처의 물살을 피하기 위하여 네덜란드 동인도회사가 1743년에 건설한 겨울 피난항으로 출발하였다가 그 뒤 영국 식민지하에서는 대영제국

Royal Navy의 남대서양 해군기지로 이용되었고 지금은

남아공 해군기지가 있는 곳이다.



Simon' Town 마을 약도. 여기가 펭귄 서식지로 유명해서 매년 펭귄              페스티발이 열리는데 2주전에 했다고 한다.

군사시설이 있는 곳이지만 전혀 그런 느낌은 없다. 그저 조용하고 청정한 바다가 있는 해변마을이다. 정오쯤에 하늘에서 내리는 따끈한 햇빛을 맞으며 마을을 천천히 걸어가면서 여기서 희망봉까지 가는 교통편이 있는지 수소문하였다. 이구동성으로 대중교통편은 없다고 한다. 걸어가도 되냐고 물었더니 왕복 60km로 걸을 수 있다고 하길래 더 이상 물어보지 않았다. 그제서야 읽은 기행문이 생각나는데 희망봉가려면 관광회사를 이용하던지 아니면 차를 렌트해야 한다고 했다. 걸어가도 되는데 계속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택시를 탔다.



Simon's Town 포구


Simon's Town  해변




  테이블마운틴 국립공원으로


희망봉이 있는 테이블마운틴 국립공원 톨게이트

희망봉 들어가는 입구로 테이블마운틴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어 인당 110R 징수한다. 택시 기사가 처음인지 자기도 내야 하는지 어리숙하길래 내지 않아도 될 것같다고 물어보라 했드니 운전기사는 면제받고 진짜로 내만 돈내고 들어갔다. 사진처럼 거의 렌트카나 자기차로 들어온다.



멀리서 보이는 희망봉 등대

들어오는 입구부터 희망봉 자연보호지(Cape of Good

Hope Nature Reserve)로 지정되어 광활한 지역이 키가 낮은 관목으로 덮여있다. 저멀리 보이는 등대까지 가야 희망봉이 보인다고 하니까 갑자기 희망이 솟아나기 시작하였다. 큰 구릉으로 난 도로를 한 두번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면서 등대밑 파킹장에 도착하였다.



밑에서 올려다 본 등대

케이프 포인트 등대로 1860-1919까지 일하다가 현재는 은퇴하였다. 당시 2,000 candlepower로 약 67km 전방까지 빛을 밝혔다고 한다. 봉우리 높이가 249 미터로 그냥 올라가기에 만만하지는 않다. 세상살이에 만만한게 없는 것처럼 구경다니는 것도 쉽게쉽게 되는 것도 아니다. 그래도 이 능선을 오르는 Funicular(쇠밧줄로 끌어올리는 철도)가 몇푼내면 발품을 들어준다. 등대로 가는 길에 중국인 단체 관광객들이 제일 많이 눈에 띄였다. 젊은층이 아니고 이제 곧 뒷선으로 물러앉을 사람이거나 이미 물러앉은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등대 전망대에서 내려다 본 해변 경치

일단 등대에 올라서니 발아래 펼쳐지는 풍경을 파노라마처럼 해변과 함께 조망할 수 있다. 절벽밑으로 내려가지 않도록 담장으로 쳐서 길을 막아 놓았다. 그곳에서 일단 대서양과 인도양을 동시에 바라볼 수 있으니까 희망봉 가까이 온 셈이다. 망망대해를 눈앞에 두고 허파에 희망봉 공기를 힘껏 불어 넣었드니 어느새 Hope(희망)이란 풍선이 하늘높이 날아가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Hope이란걸 별로 생각하면서 살지도 않았고 그것이 어디쯤에는 막연하게 있을 것이라고 느껴지기는 하는데 그렇다고 꼭 잡아야 하는 것은 아니라고 믿기에 구름잡는 것이나 Hope 잡는 것이나 같은 것이라고 항상 여겨져서 뚜렷한 글씨로 씌여진 Hope이 없다.



인도양과 대서양이 만나는 바다

저 위쪽의 완만한 해안이 폭풍에 침몰직전의 선박들이 배를 댄 곳으로 해안선이 평평하다. 그쪽으로 차길이 나있어 차로 내려갈 수 있는데 난 가보지 않았다.



희망봉 부근의 약도

여행안내서의 약도. 기차로 온 Fish Hoek이 보이고 버스로 간 종착역인 Simon's Town도 보인다. 4번이 지금있는

Cape Point이다.



희망봉 지도

위 약도와 같은 희망봉을 보여주는 지도이다. 밑쪽으로

1087m의 테이블마운틴이 보이고 그 오른쪽으로 Lion's

Head(669m)가 보이고 뒤쪽으로 최고의 휴양지 Camps

Bay가 앉아있다. 둘 다 같은 지도인데 남북 방향만 틀린다



안개에 싸인 해안 경치

등대에서 바라본 앞산의 풍경으로 섬이 아니고 왼쪽으로

해안선이 쭉 이어져 있어 서로 붙어 있는 것이다. 하도 넓게 퍼져 있어서 떨어저 있는 섬처럼 보였다.



등대에서 바라본 북쪽 해안선으로 겹겹이 돌아 가고 있다



희망봉 근처의 해변

별 희망도 없는 나같은 여행자가 먼 아프리카 남단에 있는 희망봉에 갔다 왔다고해서 그간 없던 희망이 새삼 생길리는 만무하다. 물에 술탄듯 술에 물탄듯 그렇게 밋밋하게 살아가는 것이 일상(日常)이라고 하니 어찌보면 구체적인 희망이 없다는 말도 괜히 폼잡고 멋부리고자 하는 말은 아닌성 싶다. 진짜로 아무 희망이 없어서 희망봉이나 보러 머나먼 아프리카로 날아 갔다고 애기하면 희망이 엄치 많은데 아직 희망봉에 못가 본 독자들에게 민폐끼치는 소리라고 쿠사리나 먹을랑가?-J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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