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ndhoek 시내관광
10/29/2015(목) 맑음 그리고 한차례 소나기
어제 무리하게 그러나 잘 다녀왔기 때문에 오늘은 조금 여유가 생겼다. 돌아 다니는데도 에너지가 있어야 하기 때문에 밧데리처럼 완전히 방전되면 다시 충전되는데 오랜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장기 여행을 하려면 컨디션 조절을 잘해야 한다. 그래서 원래 오늘은 빈트후크에서 차로 3시간 걸리는 Swakopmund (스와콥문트)(대서양 연안에 있는 도시로 남회귀선< Tropic of Capricorn>이 지나가는 곳으로 휴양도시로 유명) 당일 치기로 갔다 올까 생각했었는데 그냥 여기 빈트후크에 있는 박물관과 갤러리나 구경하면서 휴식을 하기로 마음을 바꾸고 아침부터 느긋하게 시작했다.
- 시내 관광:
아침 잘 먹고 어제 갔다 온 기행문을 마무리하여 전송하고 나서 카매라 1대만 그리고 캠코드만 들고 몸을 가볍게 해서 느지막하게 시내로 향했다. 시내라 해봐야 진짜 코끼리 콧구멍만하다. 인디펜던스 Blvd에 모든 것이 다 모여있다. 나미브에 오는 관광객의 대부분은 사막투어나 사파리 투어를 가고 시내는 짜투리 시간이 나면 독립 박물관, 민속 박물관, 국립갤러리, 국립극장, 기차 박물관을 돌아보는 정도가 되겠다. 사막투어는 어제 내가 갔다온 Sossusvlei 가 최고이고, 사파리 투어는 에또사 국립공원을 손꼽아 준다. 시내 나간 김에 여행사에 들러서 에또사 사파리 요금을 알아보니 3박 4일짜리가 기본인데 호텔에서 재워주면 미화 550불이고 캠핑하면 300불이다. 싸게 사파리하려면 텐트 안에서 자야한다는 것이다. 사파리투어는 탄자니아가서 그 유명한 세렝게티투어를 생각하고 있어서 에또사 사파리는 그냥 접어 버렸다.
- 나미브의 역사:
오늘 여기에 있는 독일인이 세운 복음교회를 찾아 갔다가 교회에서 일하는 현지인(흑인)을 만나 몇가지 질문을 하니까 나미브 역사에 대해서 일장의 강의를 들었다. 아마 교회 관리인으로 근무하는 모양인데 관광객들, 특히 독일 할배 할매들이 찾는데 무료하게 근무하다가 호기심많은 국제학생을 한 명 만나는 바람에 교수님이 되어 개인 교습을 받아 나미비아 역사에 대해서는 학점을 이수한 셈이다.
나미브 영토가 외국 열강들에게 유린되기 시작하는 것도 19세기 아프리카 대륙이라는 맛있는 큰 피자 한 판이 조각 조각나서 유럽 열강들에게 먹힌 그 시기와 일치한다. 처음으로 나미브를 식민지로 거느린 나라는 독일이었다. 1884년부터 1915년까지 29년간 식민지로 통치하였다. 오늘 방문한 독일 복음교회도 1907년 그 때 식민지 시대에 만들어진 교회이다. 그 다음으로 나미브를 통치한 나라는 영국으로 당시 영국은 지금의 남아공을 식민지로 통치하고 있었기 때문에 남아프리카가 나미브를 통치하게하여 영국은 간접적으로 나미브를 지배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1915년부터 1945년까지 30년간 남아프리카의 지배를 받다가 1945년부터 1961년까지 16년동안 UN의 신탁통치를 받았으나 실제로는 뒤에서 영국의 조종을 받은 남아프리카에 의해서 불법적으로 지배를 받은 셈이다. 그러다가 1961년 현재의 남아공이 영국으로부터 독립을 하자 그 때부터는 남아공화국의 지배를 받다가 1990년 나미브가 독립을 쟁취할 때까지 무수한 나미브 독립운동 지사들이 마치 조선에서 독립운동가들이 그들의 목숨을 바쳐 독립을 원했던 것처럼 남아공을 상대로 독립 운동을 전개한 결과로 오늘에 있게된 것이다.
중국이 한족을 중심으로 50여개의 소수민족으로 구성되어 있듯이 나미비도 12개(혹자는 11개) 부족으로 이루어진 국가로 그들의 슬로건이 "The Unity of Diversity"로 다양한 여러 부족의 통합을 어떻게 이루어야 하는지에 골머리를 쓰고 있다.
- 나미브의 부족 종류:(이건 여행가이드에도 없고 교회관리인 노트)
1) 오쉬왐보: 49% 로 거의 과반수를 차지하는 부족으로 만나는 사람마다 물어봐도 2명중에 한명 꼴로 제일 많다
2) 까방고: 12%로 두번째로 높다. 나중에 이바구할 옹기 팔러 댕기는 그 아지매들이 이 부족 출신이다.
3) 헤레로: 10%로 전통의상이 특이하여 한번 보면 금방 기억이 된다. 거리에서 N$10주고 찍은 사진의 주인공이 입고 있는 의상
4) 나마: 9%
5) 츠와나:소수
6) 산족(부시맨):
7) 기타
특이하게도 이 부족들이 각자의 언어를 아직도 고수하고 있어 정부에서는 영어를 배우게 하여 언어의 통합을 시도하고 있지만 쉽지는 않은 모양이다. 지금은 국회가 있어 선거로 대표를 선출하니까 오쉬왐보같이 과반수를 차지하는 부족이 당연히 유리한 모양이다.
칼부림 난무하는 중원의 무림에 고수가 등장하여 무림계의 패자가 되듯이 배낭여행에도 하수들이 우러러보는 고수가 엄연히 존재한다. 그들이 바로 장기 배낭여행족들이다.
< 내가 만난 고수 1 >
34세 다이찌로 일본 요코하마 출신으로 1년 방랑 목표로 현재 6개월쯤 돌아다니다가 내가 나미브로 날아 오는 날 , 지는 나미브에서 2주 개기고 난후 이란 테헤란으로 날아가기위해 케이프타운 공항가는 버스안에서 만나서 초식을 몇 수씩 주고 받았다. 무협지를 많이 접한 이상탁 치과의사(중학교동창) 같으면 초식이 무슨 말인지 금방 이해가 되겠지만 그렇지못했던 사람에게는 생소한 단어라 이해를 돕는다. 무공의 높고 낮음을 가늠하기 위하여 자기가 그간 연마한 공격과 수비의 기술을 한 수씩 테스트 해 보는 것이다.
부동산회사 다니다가 때려 치우고 1년 예산 미화 만오천불 정도로 (이것도 내가 물어봐서 알아낸거다) 현재 절약하며 돌아다니는데 이 친구는 배낭이 아니고 끌낭으로 다닌다. 장기여행자임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머리가 길어 초라하고 볼품은 없어도 눈알에는 생기가 팍팍 돈다. 본인은 매우 만족하고 하루하루가 재미가 있어 하는 것 같았다. 장기 여행자의 심리 상태가 대부분 이런 자기 만족에 살아간다. 이란에서 다음 행선지가 없다고 해서 하수인 내가 한 수 가르쳐 주었다. 뱅기로 가지말고 버스로 이란에서 터키로 넘어가서 횡단을 하던지 해서 이집트로 가는게 좋을듯 하다고. 내가 다니면서 만난 일본 젊은이들의 세계여행 코스가 거의 정해져 있다. 일단 아시아로 들어가서 경비가 싼 태국, 라오스, 베트남, 미얀마, 캄보디아,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에서 두서너달 개기다가 이집트, 이란, 터어키, 시리아(지금은 내전으로 힘들지만 예전에는 필수코스) 요르단찍고 여행경비가 넉넉하면 유럽 몇군데 드르고 안되면 바로 남미로 날아가서 돈 떨어질 때까지 싸게 여행하는게 그들의 코스였다. 내 나이가 지 엄마나이랑 갑장(동갑)이라며 결혼을 꼭 해야하는지 조언을 구하는데 말문이 막히는 질문이라 그냥 교과서에 나와있는데로 대답해 주었다. "해도 후회하고 안해도 후회하는데 부모님 원대로 결혼이나 해보고 후회하거래이,"
< 내가 만난 고수 2 >
시내에서 독일 복음교회 쪽으로 혼자 걸어가다가 일행 4명을 만났는데 중국 젊은이들 3명하고 고수 한 명으로 조선사람이다. 이름은 모르는데 (물어보지 않았다) 하여간 나랑 같은 부산 해운대 출신으로 지금 3년 장기여행계획으로 혼자 돌아 다니고 있는 중이란다. 말하는 폼하니 보니까 장기 여행이 이번만이 아닌 것 같다. 이번이 나미브 세번째 방문이란다. 이 고수하는 말이 이래 돌아다니는 것이 한국서 지내는 것보다 돈이 훨씬 적게 들어요라고 하는데 글씨 생활비 적게 쓸려고 세계여행을 장기로 하는 것은 아닌데 말이야. 이런 고수를 만나면 주로 그의 무공담을 들어 주어야 하는데 나같은 하수(이런 고수에 비하면)가 이런 고수한테 폼잡을 수 있는 것은 내 캐논 1Ds mk lll 와 5D 바디 그리고 대포알같은 70-200mm 렌즈와 16-35mm 와이드렌즈 뿐이다. 왜냐하면 이런 장기 여행자들은 십중팔구 작은 똑딱이를 가지고 다니기 때문이다. 고수는 내일 보츠와나로 들어가서 구경하고 다음 주말까지 요한네스버그로 내려가서 마다가스카르로 비행기타고 들어간다고 자랑한다. 그 곳도 가볼만 한데 지금 나같은 4주 일정으론 엄두도 못내는 코스이다. 나도 다음 장기 배낭여행갈 때 한번 가 볼 여행지로 남겨 두어야겠다.
시내를 그냥 걸어서 올라 가는데 아지매 3명이 큰 화분같이 생긴 도자기를 머리에 이고 나보다 앞서 가는데 도자기가 눈에 띄어서 뒤에서 사진을 한 장 찍었다. 아지매들이 신호등에 걸려 곧 내가 따라 잡아서 어디에 써냐고 용도를 물어보니 장식용으로 쓰는 토기라 한다. 진흙으로 빚은 토기인데 겉에는 자주색으로 마무리를 하여 언뜻 보면 청동이나 쇠로 만든 것 같다. 가격을 물어보니 170불이라고 하니 미화 14불정도로 가지고 갈 수만 있다면 살만한 물건이었는데 그럴 수는 없고해서 많이 팔아라고 하고 헤어졌다. 박물관과 다른 몇 곳을 보고 내일 빅토리아 폭포로 가는 버스표를 사기위해 Food Mart인 Shopright(아프리카에서는 이런 곳에서도 장거리 버스표나 비행기표도 판다)로 들어 가는데 아까 본 그 아지매 3명이 가게 앞에서 퍼질고 앉아서 과일을 까먹고 있었다. 다시 만난 반가운 마음에 다 팔았냐고 물어보니 싱글벙글한 얼굴로 그렇다고 한다. 나도 그냥 그 옆에 퍼질고 앉아서 본격 취재로 들어갔다.
"하루에 한명이 몇개나 팝니까?" 첫질문은 간단하게 했다.
"인당 2개야. 하루 목표치가." 그중에서 제일 연장자같은 아지매가 그리 유창하지 않은 영어로 짧게 대답한다. 아마 오후에 내가 본 그때는 2개를 들고나와서 각자 1개씩 팔고 하나만 머리에 이고 다녔던 것 같았다.
"하나는 들고 하나는 머리에 이고 다니면 힘들지 않아요?" 다소 동정적으로 물어 보았다.
"아이고, 머리가 뽀개질라카지. 하루종일 돌아 댕기면 너무 힘들어." 매우 힘든 직업이구나 싶어서
"하루 보통 몇 시간걸려서 2개를 팔아요?" 다시 물었다.
"아침 10시경 나와서 팔러 돌아 댕기다 보면 오후 4시나 5시가 되야 겨우 팔 수 있지." 그렇게 이런 저런 질문을 하다가 진짜 궁금한게 과연 원가가 얼마고 하나 팔면 얼마가 남는지 궁금해서 알아보니 원가가 140불로 하나 팔면 30불 남아 한명이 2개 팔아 하루에 60불 번다고 하니 진짜 남는 장사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서 너무 싸게 파는 것 같으니 내일부터 200불에 팔아 보라고 하였다. 그랬더니 모두들 그게 좋겠다고 내일부터 200불로 불러서 팔거라고 했는데 과연 가격이 올라도 잘 팔릴건지 모르겠다. 하루에 60불이면 미화 5불(한화 6천원) 수준인데 그걸 벌려고 저렇게 하루 종일 일을 하는 민초들이 나미브에는 흔하다. 일자리가 많지 않다보니 무슨 일이라도해서 먹고 살아가려고 하는 서민들의 애환을 보니 가슴이 먹먹해지는 것 같았다. "인생이란 그저 낡은 잡지의 표지처럼 통속하다"는 박인환의 시 한구절이 오랫동안 머리 속에서 빙빙 돌아다녔다.-J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