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김용균씨를 추모하며
2018년 12월 11일, 충남 태안화력발전소 석탄운송설비 컨베이터벨트에서 전기기술자를 꿈꾸던 한 청년이 세상을 떠났다. 고 김용균씨는 올해로 24살인 청년이었다. 무엇이 그를 죽음으로 내몰았을까? 이런 참담한 죽음은 계속 이어져왔다. 2016년 5월 28일, 구의역에서는 기관장을 꿈꾸던 19살 김군이 세상을 떠났고, 2016년 9월 3일, 서울 지하철 2호선 용답역 인근 장안철교에서 교량 보강 공사를 하던 20대 일용직 노동자 박씨가 추락해 숨졌다. 2017년 5월 1일, 경남 거제 삼성중공업에서 크레인 사고가 나서 6명이 사망하고 25명이 다쳤다. 그들은 모두 비정규직이었다.
<하청사회> 저자 양정호씨는 본문에서 21세기 대한민국처럼 근로자의 절대 다수가 열악한 '을'의 처지에 놓여서 우월한 위치를 차지한 소수의'갑'이 저지르는 온갖 '갑질'을 감내해야 하는 이러한 형태의 하청사회가 등장한 적이 없었다고 말한다.
한국 사회에서 재벌과 대기업 중심의 경제정책 기조는 1960년대 이후로 변함없었다. 그러다가 1997년 IMF 외환위기 이후에는 노동시장이 급변하면서 을은 더욱 취약해진 반면 갑을 갈수록 막강해져서 마침내 '슈퍼 갑'으로 거듭났다.
양극화가 심화된 하청사회는 극소수의 갑만 더 많은 이익을 챙기고 대다수의 을은 더 많은 희생을 당하게끔 정교하게 설계되어 있다. 책에서는 그 설계의 두 가지 핵심 장치로 '지대추구행위'와 '외주화'를 언급한다.
1) 지대추구행위(Rent-Seeking Behavior)
'지대'란 토지 사용료에서 유래된 개념이며, 경제학에서는 토지와 유사한 성격의 재화나 서비스까지 아우르는 개념으로 확장되었다. 지대추구행위 개념은 근본적으로 지대에 근거한다. 재화나 서비스를 생산하지 않고서 비생산적 방식으로 이익을 얻으려는 노력이 지대추구행위이며, 더 넓게 보면 기득권을 통해 경쟁을 회피하면서 얻는 초과 이익을 가리킨다.
구의역 김군 스크린도어 사고에도 서울메트로 공무원들의 '지대추구행위'가 숨겨져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서울메트로는 비용 절감 등의 이유로 구조조정을 하며 특정 업무들을 외주화했다. 이 과정에서 서울메트로는 내보내는 퇴직자들을 협력업체, 보다 정확히 말해서 하청업체에 무조건 고용되도록 보장해주었다. 뿐만 아니라 서울메트로에서 수령하던 임금의 최소 60퍼센트에서 80퍼센트 수준을 확보해주었다. 서울메트로의 퇴직자가 하청업체의 임직원으로 들어가서 받는 연봉은 서울메트로 정규직보다는 적었지만, 그럼에도 하청업체 근로자의 두세 배에 해당하는 상당한 액수였다.
서울메트로 출신 임직원이 약 434만 원을 받는 동안에, 목숨을 걸고 정비 업무를 수행하는 김군 같은 비정규직은 겨우 월급 144만 원을 받았으며, 김군과 동일한 업무를 하는 정규직은 180~220만 원을 받았다. 이처럼 가장 큰 문제는, 임직원의 급여를 우선적으로 보장하는 반면 최저입찰가로 이루어지는 세울메트로의 용역을 따내려고 하청업체 직원의 인건비를 최소한으로 책정했다는 점이다.
스크린도어 정비술 업무능력도 없이, 그저 서울메트로의 직원이었다는 전력 하나로 고용과 고액 연봉이 이전되었다는 측면에서 보면, 서울메트로 출신 은성PSD 임직원은 서울메트로라는 '지대'의 보호를 받은 셈이다.
2) 외주화(Outsourcing)
하청 또는 외주는 갑과 을을 제도적으로 연결하는 끈이다. 원청업체는 하청업체에 재화와 서비스의 일부 혹은 전부를 의뢰하고 을은 이를 공급한다. 원칙적으로 원청과 하청은 위아래가 없는 상호 협력 관계다. 하지만 실제적으로 갑과 을 사이에는 수직적 위계 관계가 형성된다. 발주하는 원청업체는 적은 데 반해 수주를 두고 경쟁하는 하청업체가 매우 많기 때문에 원청업체는 독점적 지대를 향유하며 갑이라는 압도적 우위에 서게 된다.
갑이 우월한 지위를 이용하거나 남용하여 손해나 위험을 회피하고 이를 을에게 떠넘기는 행태를 총체적으로 '불공정 하도그버래'라고 일컫는다. 갑은 법의 테두리 안에서 혹은 법의 허점을 이용하여 숨거나 솜방망이 처벌을 감수하면서 불공정 거래를 맺는다. 그러므로 갑의 불공정성을 따질 법률을 제정하는 일이 사후적인 조치에 불과한 사례가 빈번한다. 그러나 그조차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다.
http://www.hani.co.kr/arti/society/labor/749774.html
기사에 따르면 제조업 강국인 독일의 산재율은 2.65%(2011년 기준)다. 우리나라는 같은 해 0.65%였다. 독일보다 노동환경이 더 안전한 셈이다. 산재로 인한 사망률을 보면 독일은 10만명당 1.7명(사망만인율 0.17)이었다. 우리나라는 10만명당 7.9명이었다. 일하다가 다치거나 아픈 노동자는 독일의 4분의 1 수준인데, 죽는 노동자는 4배가 더 많은 것이다. OECD 평균과 비교해봐도 2013년 기준 우리나라 산재율은 0.59%로 전체 평균(2.7%)에 한참 못 미치지만, 산재사망률은 10만명당 6.8명으로 압도적 1위다. 우리나라 노동자들은 다치거나 병에 걸리는 과정 없이 갑자기 죽는다는 의미일까? 이 격차의 ‘비밀’은 바로 산재의 은폐다. 더 이상 숨길 수 없는 사망에 이르기 전, 다른 산재는 산재라 부르지 못하는 것이다.
위험의 외주화는 661만 명의 비정규직 노동자를 죽음의 위기 속에 내몬다. 그 중에 20대 비정규직 노동자는 150만 명이다.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지난 12월 27일, '김용균법'이라는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이 본회의에서 통과됐다. 앞으로 나아질까? 잘 모르겠다. '자본'이 우선시되는 사회에서 비정규직은 필연의 존재가 아닐까. 고 김용균씨를 추모하는 집회에 수많은 김용균이 참가했다. 고인의 어머니는 절규했다. 모두 같이 슬퍼하고, 분노했다. '사람'이 우선시되는 사회는 정말 불가능한 것일까.
ttp://www.hani.co.kr/arti/politics/polibar/876287.html
우리는 모두 김용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