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아몬드>, 그리고 영화 <피부색깔=꿀색>
#1
엄마는 종종 말한다. '사랑은 받아 본 사람이 줄 수 있는 거야.' 그래서일까? 엄마는 나에게 우주보다 큰 사랑을 주었고, 지금도 주고 있다. 엄마의 어떤 경험들이 쌓여 저 결론에 이르렀는지 알지 못하지만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다. 할머니에게 엄마도 많은 사랑을 받았다는 것을.
#2
소설 <아몬드> 속 주인공 윤재는 '알렉시티미아(=감정 표현 불능증)'이라는 정서적 장애를 갖고 있다. 선천적으로 편도체 크기가 작은 데다 뇌 변연계와 전두엽 사이의 접촉이 원활하지 못하다. 감정을 잘 느끼지 못하고, 사람들의 감정을 잘 읽지 못하고, 감정의 이름들을 헷갈린다. 그런 윤재를 유일하게 사랑하는 엄마와 할머니를 윤재는 눈앞에서 잃는다.
또 다른 주인공 곤이는 어릴 적, 놀이공원에서 부모님을 잃어버린다. 이후, 대림동 쪽방촌에서 중국인 노부부와 함께 살았다. 그러다 아동 보호 시설로, 입양을 통해 어떤 집으로, 소년원으로, 그렇게 청소년이 되었다. '곤이'라는 이름은 스스로 지은 것이었다.
끝내 곤이를 찾은 아빠는 이렇게 자란 곤이가 탐탁지 않다. 아빠는 어린 곤이와 닮고, 감정을 느끼지 못해 자신의 말을 잘 들어줄 윤재를 아들로 내세워 병든 아내에게 간다. 그렇게 윤재는 아들을 보고 싶은 곤이 엄마의 죽기 전 소원을 이뤄준다.
#3
그렇게 윤재와 곤이의 인연은 시작된다. 곤이는 감정을 읽지 못하는 윤재가 오히려 본인을 선입견 없이 바라본다는 것에 이끌려 계속 윤재를 찾아간다. 윤재도 서서히 곤이를 친구라고 자각한다.
우린 서로를 닮을 수는 없었다. 나는 너무 무뎠고, 곤이는 제가 약한 아이라는 걸 인정하지 않고 센 척만 했다. 사람들은 곤이가 대체 어떤 앤지 모르겠다고 했지만, 나는 그 말에 동의하지 않았다. 단지 아무도 곤이를 들여다보려고 하지 않았을 뿐이다
#4
일련의 사건으로 둘은 멀어지고, 윤재는 곤이를 찾으러 떠난다. 둘은 위험을 겪으며 서로의 우정을 확인한다.
새벽녘이 되도록 의식이 또렷했다. 곤이한테 해야 할 말이 있었다. 미안하다는 말을 해야 했다. 네 엄마 앞에서 아들인 척해서. 내게 다른 친구가 생긴 걸 말하지 않아서. 그리고 마지막으로, 너는 안 그랬을 거라고, 나는 너를 믿는다고 말해 주지 못해서 미안하다고.
#5
윤재는 엄마와 할머니에게 사랑을 받으며 자랐다. 비록 감정으로 느낄 수 없었지만, 밖을 나갈 때마다 양손을 맞잡은 두 손의 온기 덕에 알 수 있었다. 곤이는 정서적 장애를 가진 윤재에게 사랑을 찾았다. 자기 자신을 곧이곧대로 봐주는 유일한 사람이었다. 그렇게 두 아이는 서로를 의지하며 또 누군가에게 사랑을 주는 어른이 된다.
갑자기 뺨이 뜨겁다. 엄마가 뭔가를 닦아 준다. 눈물이다. 어느새 내 눈에서 눈물이 흐르고 있다. 내가 운다. 그런데 또 웃는다. 엄마도 마찬가지다.
#6
전쟁고아인 융(=전정식)은 5살 때, 어느 평범한 벨기에 가정으로 입양된다. 영화를 만든 감독 이름도 융이다. 자전적 이야기를 담담하게 풀어냈다. 융은 자신의 정체성을 찾는 과정에서 혼란을 겪는다. 친부모는 나를 왜 버렸는지, 양부모는 정말 날 사랑하는지 되물으며 자신을 괴롭힌다. 때론 말썽과 반항을 부리고, 혼자 그림을 그리며 혼란에서 벗어나고자 한다.
있잖아, 코랄리. 너는 나를 친오빠라고 생각해?
#7
영화 끝에 융은 벨기에 가족이 자신을 진심으로 사랑한다는 것을 깨닫는다. 결국 융은 자신의 정체성을 찾는다. 내 피부색은 꿀색이라며. 혹시 영화를 볼수도 있는 친부모에게 원망하지 않는다는 독백을 남긴다.
백인도 흑인도 아닌 내 피부색은 꿀색입니다.
#8
영화 <피부색깔=꿀색> 엔드 크레디트
#9
난 무심한 편이다. 가족에게도, 연인에게도, 친구에게도 무심하다. 그래서 서운함을 주기도 한다. 원래 표현을 잘하지 못한다는, 꼭 표현해야 알 수 있냐는 변명이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안 이후로는 나아지려고 노력한다. 여전히 부족하지만, 그런데도 나를 좋아해 주고 사랑해주는 모두에게 감사함을 전한다.
#10
결국 윤재가 눈물을 흘리게 된 것도, 곤이가 치유할 수 있던 것도, 융이 자신의 정체성을 찾은 것도 모두 사랑에서 왔다. 우리는 모두 사랑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