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가 맡은 그 훌륭한 것을 지키십시오.
그분께서는 또한 여러분을 끝까지 굳세게 하시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날에
흠잡을 데가 없게 해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성실하신 분이십니다.
(고전;1코린 1, 8)
그분께서 당신의 아드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와 친교를 맺도록
여러분을 불러 주셨습니다.
(고전;1코린 1, 9)
나는 내가 누구를 믿는지 잘 알고 있으며,
또 내가 맡은 것을 그분께서
그날까지 지켜 주실 수 있다고 확신합니다.
(딤후 1, 12)
우리 안에 머무르시는 성령의 도움으로,
그대가 맡은 그 훌륭한 것을 지키십시오.
(딤후 1, 13)
이는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전부터 바라던
그의 영광의 찬송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엡;에페 1, 12)
그 기도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영광의 아버지께서
여러분에게 지혜와 계시의 영을 주시어
여러분이 그분을 알게 되고,
여러분 마음의 눈을 밝혀 주시어,
그분의 부르심으로
여러분이 지니게 된 희망이 어떠한 것인지,
성도들 사이에서 받게 될 그분 상속의 영광이
얼마나 풍성한지
여러분이 알게 되기를 비는 것입니다.
또 우리 믿는 이들을 위한
그분의 힘이 얼마나 엄청나게 큰지를
그분의 강한 능력의 활동으로
알게 되기를 비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이 너희 때문에
다른 민족들 가운데에서 모독을 받는다.”
(로마서 2장 24절; 이사야 52장 5절)
오늘날에도 많은 이들이
그리스도인임을 자처하면서 악행을 일삼아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되고 있습니다.
그 때문인지 자유주의 신학자들은
“십자가에서 구원이 완성된 것이 아니라,
인간의 행위를 통해 완전한 성화에 이르러야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이는 이단 안식교의 핵심 교리이므로
미혹되지 않도록 유의 해야 합니다.
그들은 십자가에서 드러난
하나님의 사랑의 온전한 의미를 보지 못하고,
마치 장님이 코끼리의 한 부분만 만지며
“하나님은 너희의 행위에 따라 심판하신다.
너희는 아직 구원을 받은 것이 아니다.”라고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 결과, 신자들은
마치 입양된 아이가
“내가 잘못하면 언제든 파양당할 거야…”라며
매일 두려움과 불안 속에 살아가는 것과 같습니다.
그 두려움 때문에 부모의 사랑을
온전히 느끼지 못하고 괴로워하듯,
이들도 하나님께 담대히 나아가지 못한 채
늘 정죄감과 죄책감 속에 갇혀 살아갑니다.
종교개혁자 마르틴 루터 또한
죄책감에 눌려 매일 수차례 고해성사를 하던 중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얻는다”는
복음의 진리를 깨닫고
비로소 참된 자유를 누리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런 분이 아니십니다.
그분은 공의의 하나님이시기에
우리의 잘못을 징계하시지만,
동시에 자비로우신 하나님이시기에
우리를 용서하십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하나님 나라는 너희 가운데 있다”
(눅 17:21)는 말씀처럼,
하나님 나라는 마지막 심판 이후에만
임하는 나라가 아닙니다.
성령께서 우리 안에 임하심으로,
지금 이 땅에서도 하나님 나라의
평안과 자유를 누릴 수 있습니다.
따라서 “행위로 구원을
완성해야 한다”는 가르침은
복음의 본질을 왜곡하는
위험한 주장입니다.
우리의 구원은 오직 십자가의 은혜로
이미 완성되었습니다.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는 의미
조정민 목사 설교 중에서]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
빌립보 교회를 향하여 말한 바울의 이 표현은
구원을 얻으라고 말하지 않는다.
이미 받은 구원을 살아 내라는 것이다.
구원을 이루라고 하니 오해의 소지가 있다.
우리가 구원이 이루워지는 것을
목격하는 것을 보게 된다는 것이다.
구원 받기 위해 무엇을 하라는 것이 아니다.
우리도 구원받은 자가 되면
반드시 변화게 된다는 뜻이다.
순종은 구원의 조건이 아니라
구원을 받으면 순종하게 된다.
이 순서가 얼마나 중요한지 모른다.
순종할 수 있는 내 능력으로 구원 받는가?
그렇게 되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헛되히 돌아가신 것이다.
내가 착하게 마음 고쳐먹고
선행으로 구원에 이를 수 있다면
그것은 자력구원으로
십자가 구원이 왜 필요한가?
따라서 예수님에게 구원을 얻기 위해
종교생활을 해야한다면
우리는 다시 공로주의 율법주의 행위주의로
되돌아 가게 된다.
즉, 은혜로 시작했다가
율법으로 돌아가게 되는 것이다.
구원의 결과로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삶이
지극히 자연스럽게 기쁘고 자발적으로
일어나게 되는 것이 구원의 본질이다.
'두렵고 떨린다'는 표현으로 오해를 불러 일으킨다.
'내가 구원을 위해 뭐 해야하나?'
이런 오해를 한다. 그게 아니다.
구원을 얻기 위해 전전긍긍하라는 것이 아니다.
모든 인간이 착하게 살아서
구원을 이룰 수 있다면
십자가에 올 이유가 없다.
주님도 헛되이 돌아가신 것이고
매주 쓸데 없이 교회에 모이는 것이다.
그분이 우리를 변화시키고
이끌어 가시기 때문에
그분에게 전적으로 의지하여
순종이라는 삶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엡 2, 8-9)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
https://www.youtube.com/live/Ryo8rp6Gsgo?si=i9XssS4xFlDvAEp9
(빌 2:12-30)_베이직교회_조정민목사_20251207
이상구 의학박사 역시 한때
안식일 교회에 속해 있었으나,
죽음을 앞둔 신자와 면담에서
“구원의 확신이 없다”고 낙담하는 것을 보고
이 교리가 잘못되었음을 깨달았습니다.
그는 이후 미주일보에
“나로 인해 안식일 교회에 들어가
구원의 확신을 잃은 분들께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라는
공개 사과문을 게재하고
안식교를 떠났습니다.
엔돌핀 이상구 박사 간증 | 새롭게하소서 (24분 19초부터)
https://youtu.be/ylJo343owws?si=SeQHOgmZcdAALjJj
신분만 강조하는 것이 구원파입니다.
“구원받았으니 마음대로 산다”는 식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개신교인의
구원파식 삶을 비난합니다.
그러나 행위로 구원을 완성해야 한다는
안식교식 교리도 잘못입니다.
우리는 구원파처럼 살아서도 안 되고,
안식교인처럼 살아서도 안 됩니다.
그러나 자녀가 잘못했다고 해서
부모와의 관계가 취소되지 않는 것처럼,
하나님께서 주신 구원 또한
인간의 행위로 인해 취소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은사와 소명은
철회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롬 12, 29)
그대가 예수님은 주님이시라고
입으로 고백하고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일으키셨다고 마음으로 믿으면
구원을 받을 것입니다.
곧 마음으로 믿어 의로움을 얻고,
입으로 고백하여 구원을 얻습니다.
(롬 10, 9-10)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이라는
역사를 지우지 않는 한
우리의 운명은 취소될 수 없습니다.
(박영선 목사님 설교 중에서)
우리가 아직 죄인이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돌아가심으로써,
하나님께서는 우리에 대한
당신의 사랑을 증명해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그분의 피로 의롭게 된 우리가
그분을 통하여 하나님의 진노에서
구원을 받게 되리라는 것은
더욱 분명합니다.
(롬 5, 8)
그러면 그들 가운데 몇 사람이
불성실할 경우에는 어떻게 됩니까?
그들의 불성실함이 하나님의 성실하심을
무효로 만들어 버린다는 말입니까?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롬 3, 4)
그러면 내가 묻습니다.
그들은 걸려 비틀거리다가
끝내 쓰러지고 말았습니까?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롬 11:11, 25–26 참조)
그렇다면 우리가 믿음으로
율법을 무효가 되게 하는 것입니까?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율법을 굳게 세우자는 것입니다.
(롬 3, 31)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은,
우리가 의롭거나 마음이 올곧아서가 아닙니다.
주님께서 우리 조상 아브라함과 이사악과 야곱에게
맹세하신 약속을 이루시려는 것입니다.
(신명기 9, 5 참조)
조정민 목사님 설교에서 말씀하셨듯이(57분58초)
"만군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력으로 되지 아니하며
오직 나의 영(성령)으로 되느니라(슥 4, 6)"
"구원이 우리 힘으로 가능하면
주님께서 오시지 않았습니다."
"이 시대의 그리스도인의 소명은
주님께 모세처럼 기도로 부르짖는 것입니다."
[베이직교회_조정민 목사_20251019]
https://www.youtube.com/live/wPZEDbQa9EE?si=lyUK_zsV0g9-t4t5
형제 여러분,
내가 여러분에게 당부합니다.
여러분이 배운 가르침을 거슬러
분열을 일으키고 걸림돌이 되는 자들을
조심하십시오.
그들을 멀리하십시오. (롬 16, 17)
수많은 이단 교리가 양의 탈을 쓰고
우리를 미혹하는 이 시기를
바른 말씀 해석으로 헤쳐 나기기 위해
박영선 목사님의
구원과 은혜에 대한 영상을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남포교회 박영선 원로목사ㅣ잘잘법 106회
https://youtu.be/tO-MlL5_am0?si=zkKbDZDy42ddQMmT
일부 설교 발췌
처음에는 신분입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입니다.
이 신분은 절대 불변입니다.
없어질 수 없습니다.
혈연도 그렇지 않나요?
부모와 자식은 헤어질 수 있을지언정,
부모와 자식이라는 관계는 지워질 수 없습니다.
신분은 즉각적이고 영원합니다.
그런데 수준은 다른 문제입니다.
자기 자식을 기르지 않는 부모는 없습니다.
여기서 기른다는 것은
육체적으로만 돌보는 것이 아니라,
공부와 성장, 자람을 돕는 것을 의미합니다.
“너는 천국에 갈 확신이 있어?”
이 질문은 넌센스입니다.
그것은 우리가 믿느냐 마느냐를
넘어서 있는 문제입니다.
로마서 8장 38절 말씀처럼,
“그 무엇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우리를 끊을 수 없다.”
이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이라는
역사를 지우지 않는 한
우리의 운명은 취소될 수 없다는 뜻입니다.
역사는 되돌릴 수 없는 것이며,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를 되돌릴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운명과 신분은 영원합니다.
그렇다면 왜 때로 신앙 생활이 어려운 것일까요?
이는 수준에 관한 싸움입니다.
"믿었는데 하나님은 왜
내 기대만큼 역사하지 않으실까?"
"믿는데도 나는 왜 이런 상황일까?"
하는 질문입니다.
잘 믿는다는 것의 의미는
신분과 수준을 구분하는 데 있습니다.
신분만 강조하는 것이 구원파입니다.
예수를 믿고 구원을 받았으면
모든 일이 형통할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이
구원파입니다.
그러나 히브리서 6장 1~6절 말씀은
예수를 믿었으면
앞으로 더 나아가라는 뜻입니다.
한번 믿고 타락하면 끝장이라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에 관한 초보적인 교리를 놓아두고 성숙한 경지로 나아갑시다. 다시 기초를 닦을 필요는 없습니다. 그 기초는 곧 죽음의 행실에서 돌아서는 회개와 하나님에 대한 믿음, 세례에 관한 가르침과 안수, 죽은 이들의 부활과 영원한 심판입니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면 우리는 성숙한 경지로 나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한 번 빛을 받아 하늘의 선물을 맛보고 성령을 나누어 받은 사람들이, 또 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앞으로 올 세상의 힘을 맛본 사람들이 떨어져 나가면, 그들을 다시 새롭게 회개하도록 만들 수가 없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스스로 하나님의 아드님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고 욕을 보이는 것입니다. (히 6, 1-6)
이는,
애굽을 나온 백성이 홍해를 되돌아갈 수 없듯이,
신앙의 과정에서 실패와 좌절이 있더라도
구원은 확실하며,
그 실패 속에서도
선을 이루게 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로마서 8장: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
대표적인 사례가 베드로입니다.
예수를 세 번 부인하고
사탄아 물러가라는 꾸중을 들었지만,
결국 최고의 사도가 되었습니다.
자유와 권리, 책임을
모두 아울러 가르치시는 하나님은,
“내가 다 했으니 이제부터 네 책임이다”라고
말씀하시지 않습니다.
실패와 좌절, 자책의 과정이 있을 수 있으나,
그것이 끝장이 아닙니다.
성경에는 이런 사례가 많습니다. (중략)
이삭을 칼로 바치려는 아브라함
얍복나루에서 하나님과 씨름하는 야곱
골고다에서 돌아가신 예수님
이처럼 우리가 최악이라고 생각한 자리에서
더 큰 반전과 하나님의 일하심이 나타납니다.
하나님은 성실하시고 변치 않으며,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사랑이란 바로 그런 것입니다.
(중략)
신앙 생활에서 늘 부족하고
불만이 있는 것은 정상입니다.
우리가 어디까지 왔는지 보고,
한 걸음만 더 나아가야 합니다.
못했다, 잘했다 하는 과정이 신앙의 성장입니다.
공동체에서 바른 말을 하고
더 잘하자는 노력 자체가 의미 있으며,
무서워지게 만드는 공동체는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성령의 열매는 성령을 잘 따르고 있다는 표지입니다
그 열매가 완성되었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성령 충만은 순간적으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시간이 흐르고 상황을 통과하면서
점차 쌓이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욕조에 물을 받는 것을 생각해보세요.
물이 다 찼다고 생각하고 확인해보면
아직 다 차지 않았습니다.
수도꼭지에서 바닥까지 물이 닿아 있고
물기둥이 서 있는 것처럼,
성령 충만도 한 번에 완전히 차오르는 것이 아니라,
시간과 경우를 통해
점차 충만해지는 것입니다.
(엡 5, 18 성령으로 충만해지십시오.)
하나님이 시작에서 완성까지
시간을 두시는 이유는,
우리가 정답을 얻도록 하기 위함이 아니라,
하나님이 바라시는 수준의 신앙인으로
성장하기를 바라시기 때문입니다.
일상 속에서
실수와 놓친 것을 깨닫는 것은 정상이며,
신앙 생활에서 가장 무서운 것은
체념과 무관심입니다.
하나님은 어떤 현실에서도 성실히 일하시며,
우리에게 하나님이시길 멈추신 적이 없습니다.
우리가 현실에서 겪는 삶은 성육신의 연장입니다.
예수님께서 오셨고,
하나님이 누구시고
우리가 그분의 자녀임을 보여주셨습니다.
하루하루 하나님이 성실히 일하시는 것에
답하며 살아가시길 바랍니다.
결론적으로,
우리의 신분과 존재 자체는
하나님의 영광의 찬송입니다.
(엡;에페 1, 12)
이는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전부터 바라던
그의 영광의 찬송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so that we might exist for the praise of his glory, we who first hoped in Christ. (NAB)
in order that we, who were the first to put our hope in Christ, might be for the praise of his glory. (NIV)
εἰς τὸ εἶναι ἡμᾶς εἰς ἔπαινον δόξης αὐτοῦ τοὺς προηλπικότας ἐν τῷ Χριστῷ·
(헬라어 원문)
"…우리로 하여금 그리스도 안에서 먼저 희망을 둔 자들이 그분의 영광의 찬양 되게 하려 함이라."
우리의 존재가 …
존재 자체로 찬송이며,
하나님은 우리에게 뜻과 목적,
전심을 두고 계십니다.
(신명기 9, 24-29)
내가 너희를 알게 된 날부터 너희는 줄곧 주님을 거역해 왔다. 주님께서 너희를 멸망시키겠다고 하셨기 때문에, 나는 밤낮으로 사십 일을 주님 앞에 엎드려 있었다. 그러면서 나는 주님께 이렇게 기도하였다. ‘주 하나님, 당신의 그 큰 능력으로 구해 내시고, 강한 손으로 이집트에서 이끌어 내오신, 당신의 소유, 이 백성을 파멸시키지 말아 주십시오. 당신의 종 아브라함과 이사악과 야곱을 기억하셔서, 이 백성의 완고함과 악과 죄를 보지 말아 주십시오. 당신께서 저희를 이끌어 내오신 그 땅에 사는 사람들이, ′주님은 그들에게 약속한 땅으로 그들을 데리고 갈 능력이 없구나. 그가 그들을 미워하여 광야에서 죽게 하려고 그들을 이끌어 내었구나.′ 하고 말하지 못하게 해 주십시오. 그들은 당신께서 당신의 큰 힘과 당신의 뻗은 팔로 이끌어 내오신 당신 백성, 당신의 소유입니다.'
(민수기 14, 13-19)(용서와 벌)
모세가 주님께 아뢰었다. “당신께서 이 백성을 당신의 힘으로 이집트 한가운데에서 데리고 올라오셨는데, 이집트인들이 이 일을 듣게 되면, 그들은 그것을 저 땅의 주민들에게 말할 것입니다. 주님, 당신께서 이 백성 한가운데에 계시다는 말을 그들은 들었습니다. 그리고 주님, 당신께서는 눈과 눈을 마주하여 이 백성에게 나타나 보여 주시고, 당신의 구름이 그들 위에 머무르며, 낮에는 구름 기둥 속에서, 밤에는 불기둥 속에서 몸소 그들 앞에 서서 가신다는 말을 그들은 들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당신께서 이 백성을 사람 하나 죽이듯 죽여 버리시면, 당신에 대한 소문을 들은 민족들은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주님은 저 백성에게 맹세한 땅으로 그들을 데리고 갈 능력이 없어서, 그들을 광야에서 몰살시켜 버렸다.’ 그러니 주님, 당신께서 말씀하신 대로, 제발 당신의 힘을 크게 펼치시기 바랍니다. ‘주님은 분노에 더디고 자애가 충만하며 죄악과 악행을 용서한다. 그러나 벌하지 않은 채 내버려 두지 않고 조상들의 죄악을 아들을 거쳐 삼 대 사 대까지 벌한다.’ 하셨으니, 이집트에서 여기에 올 때까지 이 백성을 용서하셨듯이, 이제 당신의 그 크신 자애에 따라 이 백성의 죄악을 용서하여 주십시오.”
디모데후서 1:12에 근거한 찬송가 310장
아 하나님의 은혜로
내 평생에 가는 길 + 아 하나님의 은혜로
(찬송가 413장 & 310장/피아버전) - 피아워십
https://youtu.be/yS6UOVelAsg?si=5u6jlab3QBWpU8GF
아 하나님의 은혜로 이 쓸데 없는 자
왜 구속하여 주는지 난 알 수 없도다
왜 내게 굳센 믿음과 또 복음 주셔서
내맘이 항상 편한지 난 알 수 없도다
왜 내게 성령 주셔서 내 맘을 감동해
주 예수 믿게 하는지 난 알 수 없도다
주 언제 강림하실지 혹 밤에 혹 낮에
또 주님 만날 그곳도 난 알 수 없도다
내가 믿고 또 의지함은
내 모든 형편 잘아는 주님
늘 돌보아 주실 것을
나는 확실히 아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