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께서 아이의 목소리를 들으셨다. 두려워하지 마라.
살다 보면, 아이가
마음 아픈 일로 무너질 때가 있습니다.
그때 엄마의 마음도 함께 주저앉곤 합니다.
그런 순간에 하나님께서는
세미한 음성으로 말씀하십니다.
“두려워하지 마라.
하나님께서 저기에 있는
아이의 목소리를 들으셨다.
일어나 가서 아이를 들어 올려
네 손으로 꼭 붙들어라.”
(창세기 21:17-18)
이처럼 하나님의 음성은 부드럽고 조용한 음성으로
우리 마음 깊은 곳을 울립니다.
엘리야가 로뎀나무 아래에서 절망할 때,
큰 바람 속에서도, 지진과 불길 속에서도 아니하고,
조용하고 부드러운 소리;세미한 음성으로
(a light silent sound, NAB, 1 Kings 19:11-12)
죽고 싶다던 그를 일으켜 세우셨던 것처럼요.
그때 하나님은 말씀만 하신 것이 아니라,
천사를 보내어 엘리야를 재우시고, 먹이시며,
아무 말 없이 곁에 머물게 하셨습니다.
지쳐 쓰러진 엘리야 곁을 그렇게 지켜 주셨듯,
하나님은 지금도 아이 곁에
‘엄마’라는 천사를 두십니다.
아이의 마음이 무너질 때,
우리가 할 일은 정답을 찾기보다
그저 곁에 머물며 들어주고, 재우고, 먹이는 것
그리고 주님이 들려주시는
세미한 음성에 귀 기울이는 것입니다.
우리도 하갈처럼 절망적인 상황에서
두려움에 휩쓸려 우왕좌왕하기보다,
엄마인 우리가 먼저 벌떡 일어나
주님이 주시는 말씀으로 아이의 마음을 들어 올리고
손으로 꼭 붙들어 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아이를 살리는 기도문]
하나님 아버지,
오늘, 주님께서 들려주시는
세미한 음성에 귀 기울이게 하소서.
제 눈을 열어 주셔서 울고 있는 아이를 위해
생명의 우물을 찾아주고,
그 물로 아이의 마음을 채울 수 있게 하소서.
주님이 주시는 희망이
아이의 마음 속에 흘러 넘치게 하시고,
그 은혜가 아이의 삶 속에
늘 함께 하기를 기도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갈와 이스마엘]
(창세 21, 8-21)
이사악이 젖을 떼던 날
아브라함은 큰 잔치를 베풀었다.
그런데 사라는 이집트 여자 하가르가
아브라함에게 낳아 준 아들이
자기 아들 이사악을 놀리는 것
(מְצַחֵק 히브리 원문,
mocking NIV, 조롱하다.)을 보고,
아브라함에게 말하였다.
“저 여종과 그 아들을 내쫓으세요.
저 여종의 아들이 내 아들 이사악과 함께
상속을 받을 수는 없어요.”
그 아들도 자기 아들이므로
아브라함에게는 이 일이 무척이나 언짢았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셨다.
“그 아이와 네 여종 때문에 언짢아하지 마라.
사라가 너에게 말하는 대로 다 들어 주어라.
이사악을 통하여 후손들이
너의 이름을 물려받을 것이다.
그러나 그 여종의 아들도 네 자식이니,
내가 그도 한 민족이 되게 하겠다.”
아브라함은 아침 일찍 일어나
빵과 물 한 가죽 부대를 가져다
하가르에게 주어 어깨에 메게 하고는,
그를 아기와 함께 내보냈다.
길을 나선 하가르는
브에르 세바 광야에서 헤매게 되었다.
가죽 부대의 물이 떨어지자
그 여자는 아기를 덤불 밑으로 내던져 버리고는,
활 한 바탕 거리만큼 걸어가서
아기를 마주하고 주저앉았다.
‘아기가 죽어 가는 꼴을 어찌 보랴!’ 하고
생각하였던 것이다.
이렇게 그는 아기를 마주하고
주저앉아 목 놓아 울었다.
하나님께서 아이의 목소리를 들으셨다.
그래서 하나님의 천사가 하늘에서
하가르를 부르며 말하였다.
“하가르야, 어찌 된 일이냐?
두려워하지 마라.
하나님께서 저기에 있는 아이의 목소리를 들으셨다.
일어나 가서 아이를 들어 올려
네 손으로 꼭 붙들어라.
내가 그를 큰 민족으로 만들어 주겠다.”
그런 다음 하나님께서 하가르의 눈을 열어 주시니,
그가 우물을 보게 되었다.
그는 가서 가죽 부대에 물을 채우고
아이에게 물을 먹였다.
하나님께서는 그 아이와 함께 계셨다.
[엘리야가 호렙 산으로 가다]
(열왕기상 19, 4-8)
그는 싸리나무;로뎀나무 아래로 들어가 앉아서,
죽기를 간청하며 이렇게 말하였다.
“주님, 이것으로 충분하니
저의 목숨을 거두어 주십시오.
저는 제 조상들보다 나을 것이 없습니다.”
그러고 나서 엘리야는
싸리나무 아래에 누워 잠이 들었다.
그때에 천사가 나타나 그를 흔들면서,
“일어나 먹어라.” 하고 말하였다.
엘리야가 깨어 보니,
뜨겁게 달군 돌에다 구운 빵과 물 한 병이
머리맡에 놓여 있었다.
그는 먹고 마신 뒤에 다시 누웠다.
주님의 천사가 다시 그를 흔들면서,
“일어나 먹어라. 갈 길이 멀다.” 하고 말하였다.
엘리야는 일어나서 먹고 마셨다.
그 음식으로 힘을 얻은 그는
밤낮으로 사십 일을 걸어,
하나님의 산 호렙에 이르렀다.
[엘리야가 하느님을 만나다]
(열왕기상 19, 11-14)
그분께서 말씀하셨다.
“나와서 산 위, 주님 앞에 서라.”
바로 그때에 주님께서 지나가시는데,
크고 강한 바람이 산을 할퀴고
주님 앞에 있는 바위를 부수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바람 가운데에 계시지 않았다.
바람이 지나간 뒤에 지진이 일어났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지진 가운데에도 계시지 않았다.
지진이 지나간 뒤에 불이 일어났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불 속에도 계시지 않았다.
불이 지나간 뒤에
조용하고 부드러운 소리가 들려왔다.
엘리야는 그 소리를 듣고
겉옷 자락으로 얼굴을 가린 채,
동굴 어귀로 나와 섰다.
그러자 그에게 한 소리가 들려왔다.
“엘리야야, 여기에서 무엇을 하고 있느냐?”
엘리야가 대답하였다.
“저는 주 만군의 하나님을 위하여
열정을 다해 일해 왔습니다.
[종의 자녀가 아닌, 자유부인의 자녀로]
사라가 하갈과 이스마엘을 내쫓은 사건은
단순히 “질투 많고 마음이 좁은 여인 사라”의
이야기로 보이기 쉽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이 사건을
구속사적 상징로 재해석합니다.
그 핵심 근거는
갈라디아서 4장 21–31절에 있습니다.
바울에 따르면,
율법적 행위나 규칙으로
의롭다 함을 얻으려는 신앙은
하갈의 후손의 길이며,
하나님의 약속을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신앙은
사라의 자녀의 길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십자가로
율법의 멍에를 끊으셨기 때문에,
신자는 더 이상 종의 자녀
(율법 아래 있는 자, 하갈의 자녀) 가 아니라
자유부인의 자녀(사라의 자녀),
곧 하나님의 약속으로 태어난 자입니다.
따라서 바울은
“사라가 하갈을 내쫓은 사건”을
은혜(약속의 언약)이 율법(종의 언약)을
물리치는 상징적 사건으로 해석합니다.
인간의 힘과 행위로 얻은 구원은 사라지고,
오직 하나님의 약속으로 주어진 은혜만이
참된 상속권을 가진다는 뜻입니다.
[하가르와 사라: 옛 계약과 새 계약]
(갈라디아서 4:21–31)
아브라함에게 두 아들이 있었는데
하나는 여종에게서 났고
하나는 자유의 몸인 부인에게서 났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여종에게서 난 아들은
육에 따라 태어났고,
자유의 몸인 부인에게서 난 아들은
약속의 결과로 태어났습니다.
여기에는 우의적인 뜻이 있습니다.
이 여자들은 두 계약을 가리킵니다.
하나는 시나이 산에서 나온 여자로
종살이할 자식을 낳는데,
바로 하갈입니다.
하가르는 아라비아에 있는
시나이 산을 가리키는데,
지금의 예루살렘에 해당합니다.
지금의 예루살렘이 그 자녀들과 함께
종살이를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늘에 있는 예루살렘은
자유의 몸으로서 우리의 어머니입니다.
성경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즐거워하여라, 아이를 낳지 못하는 여인아!
기뻐 소리쳐라, 환성을 올려라,
산고를 겪어 보지 못한 여인아!
버림받은 여인의 자녀가
남편 가진 여인의 자녀보다 더 많기 때문이다.
(이사야 54장 1절 인용)”
형제 여러분,
여러분은 이사악과 같이 약속의 자녀입니다.
그러나 그때에 육에 따라 태어난 아들이
성령에 따라 태어난 아들을 박해
(ediōken 헬라어 원문,
persecuted; NIV, NAB)한 것처럼,
지금도 그렇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무엇이라고 말합니까?
“여종과 그 아들을 내쫓아라.
여종의 자식이 자유의 몸인 부인의 아들과
함께 상속을 받을 수는 없다.”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형제 여러분,
우리는 여종의 자녀가 아니라
자유의 몸인 부인의 자녀입니다.
[함께 부르면 좋은 찬양]
7:18 실로암, 우미쉘 찬양
"장님 같던 나의 눈을열어 주시어
생명수를 찾게 하신 예수님, 감사합니다."
https://youtu.be/_EVc3T4eOPY?si=aG76GSQk7KKJkFj7
어두운 밤에 캄캄한 밤에
새벽을 찾아 떠난다
종이 울리고 닭이 울어도
내 눈에는 오직 밤이었소
우리가 처음 만난 그때는
차가운 새벽이었소
당신 눈 속에 여명 있음을
나는 느낄 수가 있었소
오 주여 당신께 감사하리라
실로암 내게 주심을
나에게 영원한 이 꿈속에서
깨이지 않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