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꿈치를 치켜들며 저에게 대듭니다.
반 배정 결과가 나온 종업식 날,
아이는 침울한 표정으로
집에 돌아왔습니다.
가장 친한 친구라고 믿었던 J와
같은 반이 되었다는 사실에
뛸 듯이 기뻐했던 아이와는 달리,
J는 저희 아이와 일면식이 없는
K라는 인기 있는 친구와
같은 반이 된 것을 더 기뻐하며,
“나는 올해 K랑 다니기로 했어.”라고
선을 그었다는 것입니다.
아이의 마음에는
배신감과 깊은 서운함이 남았습니다.
"J가 K를 네게 소개해 주고
셋이 함께 친하게 지내면 안 되는 걸까?"
라고 저는 아이에게 되물었지만,
어른은 이해하기 힘든
인기와 서열,
무리 짓고 배제하는
사춘기 여중생의
원초적이고 짐승 같은
관계의 질서가 있었습니다.
여러 번 우리 집에 놀러 와
함께 밥을 먹던 J였기에
저 역시 배신감과 서운함이 밀려왔고
이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제가 믿어 온 친한 벗마저,
제 빵을 먹던 그마저
발꿈치를 치켜들며 저에게 대듭니다."
(시편 41편 9절)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유다의 배신을 앞두고
다윗의 시편을 인용하신 구절입니다.
다윗 역시 가장 가까운 친구의 배신으로
깊은 상처를 입고
이 시편을 기록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나는 너희를 친구라고 불렀다."
(요한 15, 15)
고 말씀하실 만큼
제자들을 친구로 여기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따르던 무리 가운데
가장 가까웠던
열두 제자 가운데 한 사람 유다가
예수님께 가장 큰 상처를 주는
배신을 하게 됩니다.
'예수님도, 다윗도 겪은 고통이라면
나라고, 내 아이라고
어찌 그런 아픔이 없기를 바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인간의 몸으로 오시어
배신의 고통마저 친히 겪으셨기에,
우리 아이의 마음을
더 깊이 헤아리실 것이라는 생각에
큰 위로가 되었습니다.
주님께서는
마음이 부서진 이들을 고치시고
그들의 상처를 싸매 주시는 분임을
믿기 때문입니다.
(시편 147, 3)
J배신으로 생긴 빈자리를
새로운 친구로 채워 달라고 기도하던 중
유다의 자리를 대신해
마띠아가 세워졌던 장면이 떠올랐습니다
(사도행전 1장 21–26절).
사도들은 유다의 빈자리를
새사람으로 급히 채우지 않았습니다.
예수님께서 공생애 동안
줄곧 함께 동행하던 이들 가운데에서
한 사람이 그 사도직을 이어받게 해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가만히 돌아보니,
제 아이 곁에
이미 그런 친구가 있었습니다.
눈에 띄지 않고, 재미있지 않고,
조용하지만, 말없이 성실하게
아이 곁을 지켜왔던 친구 H가
올해도 같은 반이 된 것입니다.
그 자리에 있었지만,
상처와 실망에 가려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사도 마띠아' 같은 친구였습니다.
그 순간,
저희의 슬픔과 탄식은
기쁨으로 바뀌었습니다.
(시편 30, 11)
J의 배신은
저희 아이를 무너뜨리지 못했고,
하나님께서 이미 준비해 두신
마티아 같은 친구로
그 빈자리가 이미 채워져 있음을
보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오늘도 저는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장님 같던 저희의 눈을 열어 주시고,
우리가 미처 보지 못했던 은혜를
보게 하시는
참 좋으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함께 부르면 좋은 찬양]
그 사랑, 우미쉘 찬양
https://youtu.be/XCZ8kUJmnM8?si=RtMKd3iQHzKuRmUh
아버지 사랑 내가 노래해
아버지 은혜 내가 노래해
그 사랑 변함 없으신
거짓 없으신
성실하신 그 사랑
상한 갈대 꺾지않으시는
꺼져가는 등불 끄지 않는(이사야 42, 3)
그 사랑
변함 없으신
거짓 없으신
성실하신 그 사랑
사랑
그 사랑
날 위해 죽으신
날 위해 다시 사신
예수 그리스도
다시 오실 그 사랑
죽음도 생명도 천사도
하늘의 어떤 권세도
끊을 수 없는
영원한 그 사랑
예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