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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늘의진화 May 15. 2022

슬픔을 기록하는 법을 배우다

이 아픔을 기록해두면 언젠가 아파하는 날 다시 안아줄 수 있을 거야  

갑작스러운 사고로 가족을 보내야 하는 일은 정말 가슴 아픈 일이었어.

아무에게도 말하고 싶지 않았는데, 그 일이 터지고 핸드폰을 열었는데 오늘이가 생각났어

매일 함께하는 오늘이 한테 연락 안 하면 기다리니 바로 연락했지


장례 기간 동안 시간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르겠어.

장례식장에서 한없이 울기도 하고, 오랜만에 6촌 가족들까지 모여 웃고 못다 한 이야기를 나누면서 짧은 드라마 한 편이 지나갔어


난 친척들과 어렸을 때부터 여름휴가 같이 가고, 봄에는 놀러 가고, 명절에는 체육대회도 하고 그때마다 찍었던 사진들과 이야기가 한 보따리야.

화장터에서 1시간에 10명씩 화장을 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공장인 줄 알았어

대체 하루에 몇 명이 세상을 떠나는 건가, 정말 많은 사람들이 생을 마감하는구나. 죽음은 언제 해도 항상 슬픈 일이었어



보내드리고 집에 도착해

“잘 보내드리고 왔어 내일부터 요가하자”

라고 내가 연락했을 때

오늘이가

“다시 숙제 지옥에 온 걸 환영합니다”


이렇게 날 반겨주는데 마음속 한구석 구김살이 한 줄 펴지는 것 같았어

내가 아무것도 못하고 있는 동안 내 일기를 발행해주고,

오늘이 일기를 보면서

“날 기다려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 귀하고 귀했어

가족도 아닌 남인데 날 이만큼 생각해주고 날 응원해주고 나 또한 너한테 기여하는 관계임에 말이야


이번 일로 난 가족들이 많아서 행복함이 크지만, 그만큼 보내야 하는 일도 많겠다는 걸 깨달았어.

그동안은 함께 하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고 내 옆에 오래 오래 있을 거라고 확신했는데 아니라는 걸 뼈저리게 느꼈지


받은 사랑이 많아서 좋고, 나눠줄 수 있는 가족이 있어 좋은데 이별해야 하는 수도 그만큼 많다는 것 아직도 받아들이기가 싫어

지금도 실감이 나지는 않지만, 이렇게 일상으로 돌아와 살아가는 게 야속해

더 추모하고 싶고 더 그리움을 가족들이랑 모여 이야기하고 싶은데 3일이라는 시간이 너무 짧았어


가족을 보내면서 새로운 가족이 생겼어

사연이 있던 가족이라 나에게 오빠랑 언니가 생겼어. 양가 친척들 중에 내가 사촌 동생들 중에 첫째라 좋으면서도 한편으로는 내가 동생이고 싶을 때가 있었어


오빠랑 언니가 생겼으면 좋겠다고 노래를 불렀는데 30대 넘어서 큰 선물을 받았어

가족 중에 오빠, 새 언니, 언니, 형부라고 처음 불러보는 호칭들이 하나도 낯설지 않고 푸근했어 그동안 애타게 부르고 싶었던 호칭이었나 봐


이 땅에서 떠나는 순서는 사람마다 다 다르고 예측할 수 없다는 것
지금 이 순간이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는 것
지금 있는 내 가족, 내 사람하고 함께하기에도 인생은 짧은 것 같아

더 함께 하고 싶고, 더 추억을 많이 쌓고 싶어졌어

이별은 두렵지만 그렇다고 추억을 포기하고 싶지는 않아

오히려 난 반대로 더 많은 것들을 쌓아 내려고 해


올해 가족들의 사고가 생기면서 핸드폰 무음에서 진동으로 바꿨어

예전부터 주위 사람들이 전화 제때 안 받는다고 바꾸라고 해도 안 바꿨는데, 가족들이 병원에 있으니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생각에 진동으로 했어

그랬더니 이제는 아침에 걸려오는 전화가 무서워졌어

또 누가 사고 난 것은 아닐까? 병원에 있는 가족한테 무슨 일이 생겼나?

이런 생각에 진동 소리에 섬뜩함을 느끼는 내 모습을 봤어


뉴스에서 일어날법한 일이 내 사람들에게도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는 걸 알았고,

이번 일로 내 가치관에 새로운 영역을 추가했어


난 조심하기보다 마구마구 다니고,

부딪혀도 다쳐도 크게 신경을 안 쓰고 덤벙거릴 때가 많았어

빠르게 움직이기보다 조금 천천히 움직이고

세일만 찾아다니기보다 날 위해 내 가족을 위해 좀 더 좋은 걸 구매하고


사랑해, 고마워 


사랑해, 고마워, 표현해주고, 함께하는 시간에 빠지지 않고 더 추억을 쌓는데 힘쓰기로 했어


난 슬픈 일은 기록을 안 해. 간직하고 싶지 않아서. 하지만 이 날은 기록해야겠어

이 아픔을 기록해두면 내 가치관이 잊혀질 때 다시 열어보면 날 다시 안아줄 수 있을 것 같아. 
오늘도 이 일기가 좋다.


2022.05.12. 슬픔도 기록하는 법을 배운 내일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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