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지겹다고 느낀 것은 한 낱 사무실에서 보내는 시간뿐이었구나
사는 게 지겨운… 건 여전하지만 나의 삶이 생각보다 심심하지 않고
생각보다 다이나믹하고, 생각보다 갬성 넘친다는 것을
너와의 여행과 너와의 대화를 통해 다시 한번 깨닫게 되었어
나는 오늘도 9시부터 두 모니터를 마주하며 , 뒷자리에 계신 이사님의 눈치를 슬쩍 살피며
절대 심심하지 않게 울려대는 전화를 받으며, 타닥타닥 기필코 오늘까지 해야 되는 일들을 하지
알아. 오늘도 내일도 모레도 이건 반복될 거라는 걸
그래도 다행이야. 이렇게 보내는 시간들이 있기에 다음 달 월급이 내게 주어질 수 있다는 게 말이야
참… 월급 노예 같은 모멘트다. 그래도 지금은 어쩔 수 없어. 나에게 소중한 월급이니깐
내일이가 나에게 말했지
오늘아 너 서울에 다시 못 올라올 거 같아
5년이 채 되지 않는 시간 동안 나는 부산에 참 많은 것들을 만들었나 봐, 참 부지런히…
언제든 찾아가면 나를 위로해주는 야경이 참 멋진 항만공사 뒤 나무데크
널따란 주차장을 걸어서 걸어서 가다 보면 나오는 여객터미널 야영장
산에 가고 싶지만 등산은 싫은 나를 꼭대기까지 보내주는 중앙공원 충혼탑
요즘 나의 최애 노숙 장소가 된 하늘이 잘 보이는 부산역 하늘광장
가볍게 산책하러 갔다가 나무그네에 앉아 레이저쇼 보다 오게 되는 용두산 공원
바다가 원 없이 보고 싶을 때 찾아가는 중리 해녀촌과 절영산책로
가끔 여행 가는 기분 내고 싶을 때 타면 기분전환되는 자갈치 유람선
일요일을 제외한 모든 날에 나의 스터디 장소가 된 청년명소 띵두
다소 시끄럽지만 일요일과 평일 늦게까지 여는 게 고마운 청년센터
이제는 매달 가는 게 습관이 된 학교 캠퍼스까지
엄청 유명한 관광명소가 아니더라도, 나만을 위로해주고 나를 응원해주는 곳들이 참 많아졌어
그뿐만이 아니야.
회사가 아닌 것들도 함께 공유할 수 있는 평일을 함께 하는 동료
어느새 30회 차를 넘기고 있는 나의 스터디 메이트
후킹클럽에 이어 안녕바다 활동까지 함께 해주는 친구들
나에게 매번 새로운 정보를 나눠주는 든든한 멘토
기분이 울적할 땐 산책을 빙자한 상담 파트너 중구 언니들
나보다 훨씬 어른인데도 나의 완전 베프인 대학원 동기들까지
내가 그동안 참 소중한 인연들을 많이 만들면서 지냈구나 싶었어
맞아, 나 이런 삶이 없어진다면 너무 답답할 거 같아.
언제든 밤바다 보러 나갈 수 있는, 지나가는 길에 푸른 바다 사진 찍을 수 있는,
바닷길 따라 산책할 수 있는 거까지 포함해서 말이야
내가 여기에 오기로 마음먹은 이유
내가 중요하게 여기는 것들
그게 무엇인지 다시 한번 깨닫게 되는 시간이 되었어
나 고민했었어, 내가 부산에 언제까지 살지…
그런데 올라가서 다시 지옥철 타고 출퇴근하라고 하면 자신 없어
밀리는 차들 속에서 갇혀있는 것도 싫어
바다가 그리워질 때 한 번씩 가는 월미도와 오이도는 성에 차지 않을 거 같아
내가 하는 많은 것들이 이곳이니깐 가능한 거고
내 곁에 이들이 있기에 가능한 거였어
그저 한 낱 사무실에서의 시간이 지겨워졌다고
그게 내 삶이 지겹다고 생각해버렸구나
이보다 더 다이나믹하고 알찬 삶이 어디 있다고
하마터면 소중한 나의 하루하루를 무심코 보낼 뻔했네
즐길 수 있을 때 즐기자
지금 누릴 수 있는 모든 것들을
지금 함께 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을
일도, 공부도, 글쓰기도, 활동도 열심히 해볼래
이 모든 게 향하는 방향은 한 곳이니깐
2022.09.13 퇴근 후 시간이 제일 좋은 오늘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