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은 매일 밤 잠자리에 들기 전에 가습기에 물을 채운다.
특별한 계기가 있어서 시작한 일은 아니다.
그냥 어느 순간부터 그렇게 해왔고, 그 행동은 거의 변하지 않는다.
어느 날, 요즘 방이 조금 습한 것 같아
오늘은 가습기를 틀지 말고 자자고 말했다.
그날 밤도 남편은 평소처럼 가습기에 물을 채웠다.
다음 날도 마찬가지였다.
며칠쯤 지나서야 “아, 오늘은 안 틀기로 했지” 하고 멈췄다.
나는 매일 같은 일을 반복하는 것이 어렵다고 느껴왔는데,
남편은 오히려 매일 하던 일을 멈추는 것이 더 어려워 보였기 때문이다.
그제야 꾸준함을 다른 기준으로 보게 됐다.
꾸준함은 어떤 사람에게는
의식적인 노력이 아니라 이미 몸에 익은 리듬일 수 있다는 것.
반대로 어떤 사람에게는
같은 행동을 반복하는 일이 지속적인 에너지를 요구한다는 것.
나는 변화에 비교적 빠르게 반응하는 편이다.
환경이 달라지면 구조를 바꾸는 데 큰 부담이 없다.
그래서 가습기를 끄는 것도,
서랍 안의 수저 순서를 바꾸는 것도
내게는 자연스러운 선택에 가깝다.
하지만 남편은 다르다.
한 번 자리 잡은 방식은 특별한 이유가 없으면 유지된다.
수저 위치가 바뀌면 다시 원래대로 돌아간다.
그에게 ‘유지’는 안정이고, 나에게 ‘변화’는 효율에 가깝다.
이 차이는 고쳐야 할 문제가 아니었다.
그동안 나는 그렇게 해석해왔을 뿐이다.
나는 오랫동안
꾸준하지 못한 사람이라는 기준으로 나 자신을 설명해왔다.
루틴을 잘 만들지 못하는 점,
매일 같은 일을 지속하지 못하는 점을
부족한 부분으로 여겼다.
하지만 남편의 행동을 반복해서 보며
한 가지를 분명히 알게 됐다.
꾸준함과 변화는
서로 다른 종류의 능력이라는 사실이다.
우리는 종종 꾸준함만을 미덕으로 삼는다.
그래서 반복에 강한 사람은 성실하다는 평가를 받고,
변화에 강한 사람은 산만하다는 오해를 받는다.
하지만 실제 삶에서는
이 두 성향이 다른 방식으로 기능한다.
유지에 강한 사람은
생활을 안정적으로 굴러가게 만들고,
변화에 강한 사람은
상황에 맞게 흐름을 조정한다.
어느 쪽이 더 낫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래서 나는 이제
꾸준함을 목표로 삼지 않기로 했다.
대신, 나에게 에너지가 덜 드는 방식을 기준으로
삶을 설계해보려 한다.
변화를 만들고, 구조를 조정하는 일.
이것이 내가 비교적 수월하게 해내는 쪽이다.
꾸준함이 나에게 맞지 않았던 이유는 단순하다.
그건 내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나에게 효율적이지 않은 방식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요즘의 나는
꾸준해지려 애쓰기보다,
잘하는 쪽에 조금 더 집중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