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를 다스리고 싶다.
즐거움과 괴로움은 한 뿌리
기분 좋은 걸 행복이라고 생각하지만 그것은 욕망의 다른 이름이에요. 결혼하면 행복할 것 같았는데 결혼 때문에 괴롭고 내 집만 마련하면 무슨 걱정이 있겠냐 했지만 내 집이 생기면 그 집 때문에 괴로울 일이 생깁니다.
기분 좋은 일을 좇아갔는데 즐거움은 온데간데없고 괴로움만 남아있습니다. 즐거움과 괴로움은 욕망이라는 한 뿌리에서 나오기 때문이에요. 욕망이 충족되면 기분이 좋고 욕망이 충족되지 않으면 기분이 나쁘고 이런 고와 낙(고통과 쾌락)이 되풀이되는 한 완전한 행복에는 이를 수가 없어요.
욕망을 따르는 것은 과보를 받아 괴롭고 욕망을 거스르는 것은 스트레스를 받아 괴롭습니다. 둘 다 욕망에 대한 반응일 뿐입니다. 따라가느냐, 이를 악물고 버티느냐, 이 양 극단은 행복의 길이 아닙니다.
행복으로 가는 길은 알아차림입니다. 욕망을 좇느냐, 참느냐의 문제가 아닙니다. 욕망이 일어나는 줄 알아차리면 그 욕망으로부터 자유로워져요. 이것이 부처님이 발견한 제3의 길, 중도입니다. p.192~193
중도
화가 난다고 화를 내는 것은 욕망을 따르는 쾌락에 속하고 화가 날 때 무조건 참는 것은 욕망을 억제하는 고행에 속합니다. 욕망을 따르거나 억제하는 것은 해탈의 길이 아닙니다. 해탈은 쾌락과 고행을 떠난 제3의 길, 중도입니다.
중도란 화에 끌려가지도 말고, 화를 참으려 애쓰지도 말고 다만 화가 일어남을 알아차리고 지켜보는 겁니다.
화가 일어날 때 곧 알아차리면 화는 사라집니다. 순간순간에 깨어 있으면 일어나는 즉시 알아차릴 수 있습니다. 알아차리지 못해 이미 화가 났을 때는 화를 지켜봐야 합니다. 감정을 폭발시키거나 참는 쪽으로 가지 말고 그것이 일어나는 상태를 지켜봅니다. 그러면 그 감정과 욕망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습니다. 이것이 중도입니다. p. 234~235
화로부터의 자유
보통 나도 모르게 화를 벌컥 내고는 이렇게 말을 하지요. '나도 모르게 화를 냈다. 습관적으로 냈다. 무의식적으로 냈다.' 이것은 마치 마약 혹은 담배 중독처럼 습관이라는 말입니다.
마음의 습관이 우리의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바탕입니다. 인간의 감정은 이미 형성된 습관으로부터 일어나는 반응일 뿐입니다. 어릴 때 어떤 습관을 들이느냐에 따라 상황에 대한 반응이 달리 나타나지요. 그러니 감정도 자신의 것이 아니에요.
그런데 우리는 자기감정을 절대화시켜 그에 맞게 세상을 바꾸려 하니 힘들죠. 좋고 싫고는 절대적인 것이 아니고 자기 마음의 습관임을 알아야 합니다.
화도 이런 마음의 습관에서 나옵니다. 감정의 습관에 구애받지 않을 때 자유의 길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p. 240~2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