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칙 11. 아이들이 스케이트보드를 탈 때는 방해하지 말고 내버려 두어라
아이는 부모가 생각하는 것보다 강하다
아이들에게는 약간 위험한 놀이터, 즉 도전 의식을 자극하는 놀이터가 필요하다. 인간은 위험을 최소화하는 데 크게 관심이 없다.(물론 아이들도 인간이다) 그보다는 위험을 최대한 활용하려고 한다. 인간은 운전하고, 걷고, 사랑하고, 즐기고, 욕망을 채우고, 끊임없이 한계에 도전하며 발전한다. 인간은(그리고 아이들은) 너무 안전하면 다시 위험해지고 싶어 한다. 특별한 제약이 없고 환경이 받쳐 주면 인간은 도전적인 삶을 선택하는 경향이 있다. 성공하는 경험이 쌓이면 자신감이 생기고 혼돈에 맞설 만한 힘이 길러진다. 이렇게 성장하는 것이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인간에게는 위험을 즐기려는 본성이 있다. 미래에 얻게 될 것을 기대하며 현재에 충실할 때 자극을 받고 활력을 얻는다. 그런 게 없으면 나무늘보처럼 무력하게 하루하루를 살게 된다. 과잉보호에 익숙해지면 위험한 상황이 느닷없이 나타났을 때 맥없이 무너진다. p. 399~400
의식의 발달에는 나약함과 죽음에 대한 깨달음이 수반되기에 고통과 불안이 뒤따른다. 의식은 무의식의 단계로 돌아가서 존재론적 부담을 떨쳐 버리려는 유혹을 끊임없이 받는다. 이런 병적인 욕망을 받아들이도록 의식을 유혹하는 것이 과잉보호다. 지나친 보호는 깨달음과 명확한 표현, 합리성과 자기 결정, 강점과 능력의 발전을 방해하고 의식을 압박한다. 프로이트의 관점에서 보면 이런 과잉보호는 오이디푸스적 악몽이다. 신속히 올바른 사회적 관계로 바꿔 가야 하는 것이다. p. 447
소년이 남성이 되려고 애쓸 때 방해하는 시대 풍조는 여성의 편도 아니고, 남성의 편도 아니다. 어린 여성이 자립하려고 할 때도 이런 시대 풍조가 '안 돼! 너무 위험해! 라며 독선적인 목소리를 높일 것이다. 실패와 질투, 원한과 파괴를 조장하는 반인륜적 풍조가 아닐 수 없다. 진정으로 인간의 편에 선다면 누구도 그런 풍조에 동조하지 않을 것이다. 더 나은 세상을 목표로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도 그런 풍조에 맥없이 사로잡히지 않을 것이다. 강한 남자가 위험하다고 생각한다면, 약한 남자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곰곰이 지켜본 뒤 최종적인 판단을 내리기 바란다. 아이들이 스케이트 보드를 탈 때는 방해하지 말고 내버려 두어라. p. 458~45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