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날라리며느리 Sep 14. 2020

아이는 믿는 만큼 성장한다.

법칙 11. 아이들이 스케이트보드를 탈 때는 방해하지 말고 내버려 두어라

아이들과 있을 때 굉장히 예민해질 때가 있다. 위험한 행동을 하거나 다른 사람들에게 민폐를 끼치는 행동을 할 때이다. 특히 안전 문제에 관해서는 최악의 상황까지 상상하게 된다. 별별 생각이 머릿속에 가득하다. 예를 들어 아이가 자전거를 타고 가다가 브레이크를 잡지 못하고 도로로 무방비 상태로 들어가 사고가 난다거나 아이 손을 잡고 길을 가다가도 아이가 내 손을 뿌리치고 뛰어가는 상상을 하곤 한다. 평소에도 이와 비슷한 생각을 주로 한다. 차를 타고 가는 중에 앞차가 갑자기 끼어들어 사고가 나는 상상이라든지, 마주오는 차가 갑자기 차선을 바꿔 우리 차와 정면충돌을 하는 상상 같은 것 말이다. 아이들과 함께 할 때는 런 강박이 더 심해진다. 이런 내가 조던 피터슨이 말하는 열한 번째 법칙인 '아이들이 스케이트보드를 탈 때는 방해하지 말고 내버려 두어라'를 쉬이 받아들일 수 있을지 걱정이었다. 이 문장만 보고도 우리 아이가 스케이트보드를 타면서 넘어지고 다치는 생각을 했다. 이런 내가 많은 부분에서 저자의 말에 동의할 수 있었던 이유를 말해보려 한다.




아이는 부모가 생각하는 것보다 강하다



아이들에게는 약간 위험한 놀이터, 즉 도전 의식을 자극하는 놀이터가 필요하다. 인간은 위험을 최소화하는 데 크게 관심이 없다.(물론 아이들도 인간이다) 그보다는 위험을 최대한 활용하려고 한다. 인간은 운전하고, 걷고, 사랑하고, 즐기고, 욕망을 채우고, 끊임없이 한계에 도전하며 발전한다. 인간은(그리고 아이들은) 너무 안전하면 다시 위험해지고 싶어 한다. 특별한 제약이 없고 환경이 받쳐 주면 인간은 도전적인 삶을 선택하는 경향이 있다. 성공하는 경험이 쌓이면 자신감이 생기고 혼돈에 맞설 만한 힘이 길러진다. 이렇게 성장하는 것이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인간에게는 위험을 즐기려는 본성이 있다. 미래에 얻게 될 것을 기대하며 현재에 충실할 때 자극을 받고 활력을 얻는다. 그런 게 없으면 나무늘보처럼 무력하게 하루하루를 살게 된다. 과잉보호에 익숙해지면 위험한 상황이 느닷없이 나타났을 때 맥없이 무너진다. p. 399~400


저자는 위험한 상황을 피하기만 하는 것보다 위험한 상황에서 어떻게 대처를 잘하는지를 배우는 게 더 중요하다고 말한다. 경험만큼 중요한 건 없다는 이야기다. 누구나 경험을 통해 배우고 성장한다. 아이들이 자라온 과정을 한번 돌이켜보았다. 생각해보니 아이의 도전이기 전에 엄마인 나에게 하나하나가 도전이었다. 처음 아이가 그네를 탈 때는 내가 밀어주지 않으면 타지 못했다. 그때도 내가 세게 밀면 아이가 나가떨어지지 않을까 걱정부터 했다. 하지만 꾹 참고 견뎠다. 아이와 내가 꼭 넘어야 할 산이라 생각했다. 과잉보호하는 엄마 때문에 아이가 바보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기 때문이다. 아이가 혼자 그네를 타던 날이 기억난다. 심지어 그네가 움직이는 도중에 일어서서 타기까지 했다. 무섭다고 덜덜 떨면서도 아이는 아주 조심스럽게 중심을 잡으면서 일어났다. 그 모습을 보는 내가 위험하다는 이유로 일어서지 못하게 말렸다면 지금 아이는 그네 타는 즐거움을 느끼지 못했을 수도 있다. 그리고 나는 향단이 신세를 영영 졸업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렇게 아이와 나는 각자의 자리에서 위험을 극복하는 법을 터득하고 있었다. 이제는 아이가 그네가 뒤로 뒤집힐 것 같을 정도로 타고 있어도 그냥 지켜보고 있을 정도의 담력이 생겼다. 그네 이후로 정글짐, 자전거, 킥보드 등 위험하게 보이는 놀이에도 아이가 잘 해낼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이 생겼기에 아이와 함께 어떤 놀이도 즐길 수 있는 엄마가 되었다. 이젠 오히려 너무 믿어 아이를 방치하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하고 있다. 정말 큰 발전이다.



의식의 발달에는 나약함과 죽음에 대한 깨달음이 수반되기에 고통과 불안이 뒤따른다. 의식은 무의식의 단계로 돌아가서 존재론적 부담을 떨쳐 버리려는 유혹을 끊임없이 받는다. 이런 병적인 욕망을 받아들이도록 의식을 유혹하는 것이 과잉보호다. 지나친 보호는 깨달음과 명확한 표현, 합리성과 자기 결정, 강점과 능력의 발전을 방해하고 의식을 압박한다. 프로이트의 관점에서 보면 이런 과잉보호는 오이디푸스적 악몽이다. 신속히 올바른 사회적 관계로 바꿔 가야 하는 것이다. p. 447


그렇다고 안전을 등한시하면 안 된다. 누구에게나 '안전'은 1순위로 둬야 할 항목이다. '안전제일'이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다. 특히 아이들에게는 두말하면 잔소리다. 저자는 과잉보호의 폐해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지나친 보호 때문에 아이가 스스로 생각하고 행동하는데 방해를 받는다. 스스로 성취하는 것을 막고 이는 아이의 무능력과 무기력으로 이어질 것이다. 조금은 늦긴 했지만 아이가 기어 다니다 두 발로 서게 될 때 넘어질까 손을 놓지 못하는 부모가 되지 않겠다 결심한 건 정말 잘한 일이다. 아이의 독립심을 키워주기 위해서는 아이를 믿고 지켜봐 줘야 한다는 것을 점점 깨닫고 있다. 아이는 부모가 생각하는 것보다 강하다.




'난 오직 너만을 위해 산다'는 오이디푸스적 어머니가 있다. 이와 비슷한 말로 자녀 주위를 빙빙 돌며 자녀가 원하는 대로 다 해주는 헬리콥터 엄마도 있다. 난 이런 엄마가 되길 원하지 않는다. 교육의 목적은 '독립'이다. 남편과 나는 우리 아이들이 건강한 몸과 정신으로 독립하기를 원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아이가 힘든 일을 겪어도 혼자 힘으로 헤쳐 나갈 수 있게 도와줘야 한다. 아이에게 모범이 되길 바라는 마음에 공부를 하면서 깨달은 것이 있다. 아이의 '독립'을 위해 엄마인 나도 자녀로부터 '독립'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아이만 바라보며 살지 않고 내 삶에 집중하며 아이를 서포트하는 부모역할을 하고 싶다. 아이가 다칠까 전전긍긍하는 예전에 내 모습은 어느새 사라졌다. 저자의 어머니가 남들에게 가혹하게 보이더라도 저자의 독립심을 위해 노력한 것처럼 나 또한 그렇게 할 것이다. 쉽지는 않겠지만 노력해 나간다면 아이뿐 아니라 나 자신에게도 긍정적인 영향을 끼칠 것이라 본다. 아이를 믿고 기다려 주는 것부터 하자.


소년이 남성이 되려고 애쓸 때 방해하는 시대 풍조는 여성의 편도 아니고, 남성의 편도 아니다. 어린 여성이 자립하려고 할 때도 이런 시대 풍조가 '안 돼! 너무 위험해! 라며 독선적인 목소리를 높일 것이다. 실패와 질투, 원한과 파괴를 조장하는 반인륜적 풍조가 아닐 수 없다. 진정으로 인간의 편에 선다면 누구도 그런 풍조에 동조하지 않을 것이다. 더 나은 세상을 목표로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도 그런 풍조에 맥없이 사로잡히지 않을 것이다. 강한 남자가 위험하다고 생각한다면, 약한 남자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곰곰이 지켜본 뒤 최종적인 판단을 내리기 바란다. 아이들이 스케이트 보드를 탈 때는 방해하지 말고 내버려 두어라. p. 458~459



*30일 동안 매일매일 한 챕터씩 읽고 서평 쓰기 도전 Day 27


참고도서 <12가지 인생의 법칙 : 혼돈의 해독제>  조던 B. 피터슨 지음

매거진의 이전글 14년 차 부부는 어떻게 싸울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