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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날라리며느리 Jul 23. 2020

저는 날라리며느리입니다.

날라리며느리의 탄생 비화 첫 번째 이야기


다른 며느리들은 따로 살려고 난린데 넌 왜 우리랑 살려고 그러니?


시어머니가 나에게 하신 말씀이다. 남편에게 내가 시댁에서 같이 살고 싶어 한다는 말을 전해 들으시고는 전화를 하셔서 물어보셨다. 내심 기특하다고 생각하시는 듯했다. 별거 아니라 생각했는데 내가 특별한 사람이 된 것 마냥 기분이 좋았다. 더 잘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착한 며느리가 되어야겠다고 결심했다.


결혼을 결정하고 남편에게 시댁에 들어가 살고 싶다고 했다. 눈이 동그래진 남편은 이유를 물었다. 시댁 식구들이랑 빨리 친해지고 싶어서라고 말하니 희한하다는 눈빛으로 날 보는 남편이 생각나 지금도 웃음이 난다. 

2007년 10월 27일, 공식적으로 한 남자의 아내가 된 날이다. 벌써 햇수로 14년 차다. 나는 무엇 때문인지 오래전부터 결혼하면 시부모님이 허락하시는 한 시댁에서 함께 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서로 잘 모르는 사람들이 만나서 가족이 된다는데 몸으로 부대끼며 살아야 빨리 친해지지 않을까 하는 단순한 생각 때문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참 순진했고 간도 컸다. 다른 사람들은 일부러 따로 살려고 발버둥을 치는데 너는 왜 굳이 시댁에 들어가 살려고 하느냐며 지인들은 죽어도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눈빛과 말들을 쏟아냈다. 하지만 지인들의 우려와는 달리 결혼하고부터 나는 주위의 부러움을 사는 복 받은 날라리며느리가 되었다. 그 스토리를 이제 조금씩 풀어내 보고자 한다. 



하던 공부가 있어 학교를 다니던 중에 결혼식을 올리게 되었다. 분가를 하는 게 아니니 그리 준비할 것도 없었다. 장롱 하나 구입한 게 전부다. 그래도 시댁에서 새 식구 들어온다고 부분 리모델링을 하며 남편이 쓰던 조그만 방에 화장실까지 넣어주셨다. 남들은 다 한다는 다이아반지, 스드메(스튜디오 촬영, 드레스, 메이크업)도 하지 않았다. 그 돈이 나는 너무 아까웠다. 사람들은 평생 한 번 할 결혼식이라 제대로 하고 싶다고 하지만 난 생각이 달랐다. 어차피 한 번 할 건데 돈을 쏟아부을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다. 차라리 그 돈으로 신혼여행을 더 알차게 다녀오는 게 낫겠다 생각했다. 사실 결혼식도 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양가 집안의 첫 결혼식이라 마음대로 할 수가 없었다. 무엇보다 밥이 맛있다고 하는 시댁 근처 결혼식장에서 내 생애 첫(?) 결혼식은 끝이 났다. 결혼식이 끝나고도 학교 수업 때문에 신혼여행도 가지 못하고 결혼식 다음 날 양가 가족들과 함께 여행을 다녀왔다. 졸업하고 한 달가량 꿈같았던 신혼여행을 다녀오긴 했지만. 





결혼하고 시댁에서의 첫날밤은 잊을 수가 없다. 오해하지 마시라. 그런 첫날밤이 아니다. 내 집이 아닌 것 같은 불편함과 뭘 해도 어색한 그 느낌은 내 선택을 후회하게끔 하기에 충분했다. 밤에 잠도 오지 않았다. 친정 식구가 그리웠고 혼자 살던 내 집이 그리웠다. 그리고 며느리로서 해야 할 도리를 곱씹느라 쉬이 잠이 들지 않았다. 드라마에서나 보던 며느리는 새벽같이 일어나 아침밥을 준비해야 한다고 생각해서 새벽 6시에 알람을 맞추고 알람 소리가 나기도 전에 일어나서 쌀을 씻으려 했다. 문제는 쌀이 어딨는지도 몰랐는 거다. 


뭐하려고 그러니?


    

부스럭 소리와 인기척에 어머님이 깨셨다. 쌀이 어딨냐고 여쭈니 빨리 들어가서 잠이나 자라고 성화시다. 등 떠밀리다시피 다시 방으로 들어가서 잠을 청했다. 당연히 잠이 올리 없다. 결혼하고 시부모님 식사는 며느리가 차려드려야 한다는 생각으로 머릿속은 가득했다. 귀를 쫑긋 기울이고 어머님이 일어나시는 소리가 들리기를 기다렸다. 깜빡 잠이 들었는지 밖에 달그락거리는 그릇 소리에 눈이 번쩍 떠졌다. 시계를 보니 8시가 조금 넘은 시각이었다. 벌떡 일어나 눈을 비비며 얼른 주방으로 나갔다. 


더 자. 피곤한데...


이 말은 결혼 14년 차인 내가 아직도 어머니에게 듣는 말이다. 아마 결혼하고 어머니에게 제일 많이 들은 말이 아닐까 한다. 어머님은 만날 나만 보면 더 자라고 하신다. 내가 그리 피곤해 보이나 의심할 정도다. 시어머니가 더 자라고 한다고 며느리가 더 자면 안 되지 않나. (지금은 일어나지도 않는 건 안 비밀) 어머님 옆을 졸졸 따라다니며 눈치껏 아침 준비를 거들었다. 덩치 산만한 며느리가 쪼꼬미 어머니 옆에 붙어있으니 말씀도 못하시고 얼마나 귀찮으셨을까 하는 생각이 드니 죄송한 마음도 든다. 아침 준비는 어머님이 다 하시고 나는 설거지만 했다. 설거지도 못하게 하시는 거 그거라도 안 하면 두 발 뻗고 못 있을 것 같아 설거지만은 사수했다. 그렇게 나의 시댁에서의 첫날 아침 준비는 우여곡절(?) 끝에 마무리가 되었다. 




학교를 다니던 며느리를 새 식구로 들인 탓에 어머님은 며느리 밥까지 차리기 시작하셨고 남편은 시간이 허락하면 아내 학교까지 데려다주고 데리러 오는 착실한 운전기사님이 되었다. 이렇게 나의 복 받은 결혼 생활은 시작되었다. 시댁에서 살기로 결정한 건 신의 한 수였다. 이렇게 나의 날라리며느리의 삶은 시작되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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