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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날라리며느리 Jul 25. 2020

엄마, 형수랑 소주 한잔 하고 올게!

나에겐 엽기 도련이 있습니다. (날라리며느리 두 번째 이야기)

남편에겐 남동생이 한 명 있다. 나는 그를 '도련'이라고 부르고 도련은 나를 '형수'라 부른다. 우리 사이에 '님'따위 호칭은 사치다. 내 핸드폰에 저장된 이름은 '엽기 도련'이다. 도련이랑 통화하는 날 보는 지인들은 하나같이 깜짝 놀라서 묻는다.


"도련님한테 그렇게 말해도 되는 거야?"

"도련님은 무슨, 내 동생이야!"


한 번은 도련에게 나랑 통화할 때 옆에 친구들 있으면 아무 말도 안 하냐고 물어보았다.


"뭐라고 하긴. 미X냐고, 형수님한테 그렇게 말해도 되냐고 하지."

"ㅋㅋㅋ그래서 넌 뭐라 그랬는데?"

"형수님은 무슨, 그냥 누난데?라고 하지"

역시 내 도련이다. 이 정도면 그냥 형제(남매아님주의) 사이라고 해도 될 정도다.


결혼하기 전부터 우린 누나 동생 사이로 지냈다. 난 도련의 이름을 부르고 그는 날 누나로 부르면서 말이다. 남동생이 둘 있는 나에겐 결혼하고 남동생이 한 명 더 생긴 셈이었다. 내 남동생들도 그랬듯 도련이 팬티 바람으로 돌아다녀도 아무렇지 않았다. 어머님은 한마디씩 하셨지만 우린 그런걸로 내외하는 사이가 아니었다. 도련 여자 친구가 생기면 같이 여행도 다니고 그랬다. 그렇게 도련과 나는 불편함 하나 없이 지내왔다. 결혼하고 한 아이의 아빠가 된 지금도 그렇다. 이젠 동서까지 생겨서 너무 좋다. 동서는 자기 남편 흉을 나에게 본다. 나만큼 잘 받아주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내가 더 욕해준다. 그러면 동서는 위로가 되었다며 만족해한다. 이렇게 우린 완전한 가족이 되어가고 있는 중이다.




엄마, 형수랑 소주 한잔 하고 올게!


결혼 후 함께 사는 도련은 나 대신 이렇게 어머니에게 통보식으로 말하곤 날 데리고 밖으로 나가주었다. 물론 남편도 함께 말이다. 도련과 나는 술친구로 죽이 잘 맞았고 남편은 그냥 옆에서 조금 거드는 정도였다. 가끔 도련 친구들과도 술자리를 가지곤 했다. 도련은 동네 친구들이 많았지만 동네 친구가 없는 나에게 그는 그렇게 내 술친구가 되어 주었다. 아무리 시댁이 편하다고 하지만 어른들과 함께 사는 며느리가 술 마시러 나간다고 말할 용기는 아직 없었다. 도련이 그렇게 말하면 어머님은 그냥 그러려니 하셨다.


내가 날라리며느리의 삶을 사는 데에는 도련이 한몫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남편과 함께 나가는 것보다 도련과 나가면 마음이 좀 덜 불편했다. 왜인지는 모르겠다. 그냥 편했다. 혼자가 아니라 도련과 같이 얼큰하게 취해 들어가서 그럴지도 모르겠다. 남편은 취하도록 술을 마시는 사람이 아니니까 말이다. 도련이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어른들께 다 해주니 불편할 게 없었다. 그렇게 나는 시댁에서 어른들과 살면서도 술 마시러 나가는 간 큰 며느리가 되어가고 있었다.


엄마, 해장국 좀 끓여줘!   

    


전날 술을 마시면 어머니는 다음 날 아침 아들들과 며느리를 위해 시원한 콩나물국이나 북엇국을 끓여주셨다. 이 정도면 내가 시부모님을 모시고 산 게 아니라 시부모님이 며느리를 모시고 사신 셈이다. 처음엔 어머님이 차린 밥상에 그냥 숟가락만 얹고 먹는 게 여간 불편한 게 아니었는데 어느덧 자연스레 어머니는 식사 담당, 난 설거지 담당으로 역할이 정해져 있었다. 부끄럽지만 이제 생각해보니 나는 시댁에 살면서 설거지 말고는 한 게 없는 것 같다. 나중에 분가하고 내가 없으니 어머니는 설거지가 아쉽다고 하셨고 나는 어머니 밥이 먹고 싶다고 징징거리기도 했다. 이렇게 시어머니와 며느리의 경계선이 없어지면서 날라리며느리라는 정체성은 더욱 확고해지고 있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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