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울 푸드’라는 것은 원래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의 전통 음식에서 유래된 것으로 노예생활의 고단함과 슬픔이 배어있는 음식을 이야기한다. 사전적 의미로는 사람들 자신만이 간직하고 있는 아늑한 고향의 맛이라고도 한다. 하지만 요즘은 ‘내 영혼의 음식’, ‘내가 힐링되는 음식’ 정도의 의미로 더 많이 사용되는 것 같다.
나는 먹는 것에 크게 관심이 없는 스타일이다. 식탐이 별로 없는 편이라 배고프면 그냥 적당히 배를 채워주면 된다. 그래서 한 끼 식사에 크게 연연해하지 않는다. 그리고 조금씩 자주 먹는 습관이 있어서인지 뭘 꼭 먹어야지 하는 대상이 없다. 하지만 이런 나도 가끔씩은 찾는 나만의 소울푸드가 있다. 여기서는 꼭 고향의 맛이라기보다는 내가 좋아하고, 먹으면 기분이 나아지는 음식정도로 생각하면 될 것 같다. 많이 먹지 않더라도. 왜 누구나 그런 음식이 있지 않은가. 몸이 안 좋거나 기분이 나쁘거나 할 때 생각나는 나만의 음식. 그걸 먹으면 기분이 좀 풀릴 것 같은데 하는 그런 음식. 그런 것에 대한 설을 좀 풀어볼까 한다.
그래서인지 한국에 돌아오면 매콤한 음식이 먹고 싶어진다
외국에 종종 나갔다오면 공항에서부터 찾게 되는 음식이 있다. 원래 로컬음식도 좋아하는 편인데, 이상하게 런던과 파리에 갔을 때 먹었던 샌드위치는 맛있었던 기억이 별로 없다. 오죽했으면 혹시나 해서 가져갔던 컵라면이 제일 맛있었을 정도였으니까. 어렸을 때는 느끼한 음식을 더 좋아하고 잘 먹었던 것 같은데, 역시 나이는 못 속이나보다. 그렇다고 또 현지에서 굳이 한식을 찾아다니며 먹지는 않는다. 비싸기도 하거니와 한국에 돌아오면 주구장창 먹을 수 있는데, 구태여 외국에서까지 먹고 싶지는 않다는 생각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한국에 돌아오면 한식이라기보다는 매콤한 음식이 먹고 싶어진다. 쫄깃한 떡과 적당히 얼얼한 국물이 잘 어우러지는 떡볶이(사실 매운 거를 잘 못 먹는다), 밥과 육개장, 칼칼한 김치찌개와 계란말이 등등. 가끔은 비행기 기내식으로 갈 때와 올 때 모두 비빔밥을 먹기도 한다. 갈 때는 도착하면 못 먹을 테니 예비용으로, 올 때는 매콤한 것이 먹고 싶어서. 나도 모르게 내 몸이 매콤한 것을 찾는가보다. 한 번은 친구와 휴가로 홍콩을 다녀왔는데, 공항에 도착해서 입국장을 나오자마자 떡볶이를 사먹었다. 어찌나 둘 다 잘 먹던지. 시킨 음식을 남기는 때가 많은 나랑 친구인데, 그 날은 깨끗이 다 먹었던 기억이 난다. 마치 전날 마신 술로 허해진 속을 해장하듯이 말이다. 속에 끼여 있던 기름기가 싹 빠지고, 무언가 개운한 느낌이 든다. 원래 매운 것을 잘 못 먹는 편임에도 불구하고 이럴 때는 매콤한 게 엄청 생각난다. 역시 한국인의 피는 못 속이나보다.
그나마 내가 무언가를 먹고 있구나하고 느낄 수 있는 게 바로 매콤한 짬뽕이다
나는 중식도 매우 좋아한다. 많은 사람들이 그렇겠지만, 자장면, 짬뽕, 탕수육의 그 맛을 어찌 싫어할 수 있겠는가. 아마 일주일에 몇 번을 먹어도 질리지 않을 것 같다. 평소에는 자장면을 더 선호한다. 짬뽕도 너무 좋아하지만, 매콤하고 짠 국물이 건강에 아주 안 좋다는 기사를 접한 후에는 되도록 먹지 않으려고 노려 중이다. 뭐든 너무 짜게 먹으면 안 좋다는 건 너무나도 명백한 사실이니까.
하지만 그런 거 생각하지 않고 과감하게 먹을 때가 있다. 감기에 걸려서 코가 막히고, 목도 아프고 할 때, 나의 소울푸드는 짬뽕이다. 이럴 때는 콧물이랑 가래 때문에 맛도 잘 느껴지지 않기 마련이다. 그나마 내가 무언가를 먹고 있구나하고 느낄 수 있는 게 바로 따끈한 짬뽕이다. 얼큰한 국물을 후루룩 마시다보면 어느새 땀이 나고, 속도 개운해지면서 감기가 떨어지는 느낌이 든다. 실제로 짬뽕 때문에 감기가 나을 리는 없겠지만, 약보다 중요한 건 점점 나아지고 있는 것 같다는 믿음이 아니겠는가. 그래서 지금도 몸이 으슬으슬하거나 감기기가 있거나 감기에 걸리면 짬뽕부터 찾는다. 맛있는 짬뽕 한 그릇이 나에게는 감기약보다 더 나을 때가 있으니까. 힘도 생기고 말이다.
갓 만든 김밥을 한 입 먹으면 온갖 맛이 다 느껴진다
너무 바쁜데, 끼니는 때워야겠고 할 때 제일 먼저 생각나는 음식은 무엇인가? 나는 희한하게 김밥이 제일 먼저 떠오른다. 왜인지는 모르겠다. 그냥 다른 것보다 가격도 싸고, 간단하면서도 배부르게 먹을 수 있는 가성비 갑이라서 그런가. 아무튼 무지하게 바쁘거나 딱히 먹고 싶은 게 없을 때 찾게 되는 것 같다. 초록, 노랑, 갈색 등의 오색찬란한 색과 고소한 참기름 냄새가 풍기는 갓 만든 김밥을 한 입 먹으면 온갖 맛이 다 느껴진다. 그래서 더 매력적인 것 같다. 만드는 데 손이 은근히 간다는 것과 상하기 쉬운 여름에는 조심해야 되는 음식이기는 하지만 말이다. 그래도 몇 입에 포만감을 느낄 수 있는 간편한 음식임에는 이의가 없을 것이다.
집에 딱히 먹을 건 없고, 냉장고에 몇 가지 재료만 있다면 쉽게 만들 수 있는 게 또 김밥이다. 나도 꽤 자주 집에서 만들어 먹는다. 제대로 된 김밥은 아니어도 꽤 맛이 좋다. 예를 들어, 멸치볶음이나 어묵볶음 같은 밑반찬이 남았다고 치자. 여기에다 밥, 김, 계란 정도만 있으면 간단한 김밥을 만들기에 아주 충분하다. 일단 밥에 간을 살짝 하고, 계란말이를 간단하게 해준다. 그리고 김에 반찬들이랑 계란말이만 말아주면 끝이다. 여기에 단무지라도 있으면 금상첨화다. 너무 간단하지 않은가. 이렇게 만들어 먹으면 남은 반찬도 처리하고, 한 끼 식사도 해결하고 아주 일석이조다. 은근 배부른 게 오래가고 든든하다.
집에 빵이 떨어졌던 적이 별로 없는 듯하다
앞에서도 얘기했듯이 밥도 좋아하지만, 빵도 무지하게 좋아한다. 밀가루 탄수화물 중독 정도까지는 아니어도 하루에 한 끼 정도는 빵을 먹는 것 같다. 몸에 좋지 않고, 소화도 안 되는 것 같아 줄이려고 노력중이지만, 쉽지가 않다. 가게를 지나는데, 너무 맛있는 빵 굽는 냄새가 솔솔 풍기면 심각하게 사갈까 말까 고민한다. 그래서 집에 빵이 떨어졌던 적이 별로 없는 듯하다.
여러 종류의 빵을 좋아하지만, 사실 식빵을 버터에 굽거나 오븐에 토스트해 먹는 것을 제일 좋아한다. 가장 베이직하면서도 질리지 않는 맛이라 그런 것 같다. 여기에 새콤달콤한 살구 잼, 바삭한 계란프라이, 잘 구워진 소시지나 햄만 있으면 정말 최고의 한 끼다. 그냥 생각만 해도 기분이 좋아지는 조합인 것 같다. 호텔의 조식스타일이라고나 할까. 실제로 조식을 먹을 때도 빵(모닝 롤이나 식빵, 크로와상 정도)과 계란, 베이컨에 제일 먼저 손이 간다. 그렇게 맛있게 먹고 난 후의 커피 한 잔은 필수가 되어버렸다. 아마 살짝 기름기도는 속을 편안하게 달래주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이렇게 한 끼를 먹으면 속이 든든한 게 오래간다. 그래서 여행을 가면 조식을 먹고 나서 배가 불러 오후까지 식사를 안 할 때도 있다. 물론 내 개인적인 경험이고, 의견이다.
먹다보니 입맛이 바뀌어서인지 샐러드가 댕길 때가 있다
요즘은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건강을 위해서, 혹은 다이어트 때문에 샐러드를 먹는다. 그 종류 또한 엄청 다양해졌다. 샐러드만 취급하는 전문점도 생긴 지 오래다. 내 주위에도 샐러드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 나조차도 이탈리안 레스토랑이나 식당을 가면 샐러드를 꼭 시킨다. 메인요리가 나오기를 기다리면서 먹기에도 좋고, 메인과 함께 먹어도 그 맛이 언제나 신선해서 좋다.
어렸을 때는 샐러드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좋아하지 않았다기보다 야채를 거의 먹지 않았었다. 샐러드 위에 달짝지근한 소스가 뿌려져있어도 잘 먹지 않았다. 심지어 고기를 먹을 때는 야채 쌈은 거의 먹지 않고 고기만 먹는 스타일이었다. 그러던 내가 언제부터인가 초록색 야채를 먹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정말 의무적으로 먹기 시작했는데, 이제는 나 스스로 샐러드를 사 먹을 정도가 되었다. 먹다보니 입맛이 바뀌어서인지 샐러드가 댕길 때가 있다는 게 스스로도 가끔 놀랍다. 뭐 건강에 나쁜 것은 아니니까.
배가 많이 고프지는 않은데, 뭔가는 먹고 싶을 때 생각나는 게 바로 샐러드다. 많이 먹어도 몸에 전혀 해가 없고, 은근 든든한 샐러드. 요새는 파는 곳이 많아서 사먹을 때도 있지만, 집에서 간단하게 만들어 먹을 때가 더 많다. 양상추를 흐르는 물에 깨끗이 씻어 손으로 잘게 찢은 다음 발사믹 소스 한 숟갈 정도를 위에 뿌려준다. 여기에 치즈나 파프리카가 있으면 잘라서 넣어준다. 그러면 새콤달콤하면서도 영양가 있는 샐러드가 완성된다. 파프리카는 빨강, 초록의 알록달록한 색깔 때문에 넣어주면 보기에도 예뻐서 좋다.
나는 이국적인 음식도 잘 먹고, 좋아하는 편이다
나는 이국적인 음식도 잘 먹고, 좋아하는 편이다. 물론 내 입맛에 맞는다는 전제하에 말이다. ‘타코(Taco)’는 이제 많은 사람들이 알고, 좋아하는 음식 중의 하나가 되었다. 토르티야에 고기, 해산물, 치즈 등의 다양한 재료를 넣어서 칠리(살사)소스를 뿌려 먹는 멕시코의 전통 음식으로 전문 레스토랑들도 많이 생겼다. 아직 멕시코에 가서 직접 먹어보지는 못했지만. 직접 현지에 가서 꼭 한 번 먹어보고 싶다. 쫄깃한 토르티야에 싸 먹는 그 맛 자체도 맛있지만, 위에 뿌려먹는 칠리소스는 입맛을 확 돋아준다. 그래서 질리지 않고, 계속 먹게 되는 것 같다. 심지어 도쿄에 갔을 때, 맛있어 보이는 타코 가게가 있어 망설임 없이 들어가 보았다. 시켜서 먹었는데, 생각보다 너무 맛있어서 하나도 남기지 않고 다 먹었던 기억이 난다.
우리나라에서도 대형마트에 가면 토르티야를 판다. 수입품이 더 많긴 하지만, 국내산도 있다. 그래서 집에서도 응용해 나름 맛있게 먹어보았다. 일단 또띠야를 꺼내 작은 포크로 숨구멍을 많이 내준다. 안 그러면 나중에 오븐에 구울 때 부풀어 올라 크게 당황할지도 모른다. 거기에 케찹을 발라준다(집에 살사소스가 없었다). 햄과 브로콜리를 잘게 잘라서 올려준 다음, 위에 모짜렐라 치즈를 듬뿍 뿌려준다. 그리고 오븐에 구우면 끝. 아주 간단하다. 노릇하게 다 구워지면 꺼내서 먹으면 된다. 아마 깜짝 놀랄 것이다. 집에서 만든 것 치고는 너무 맛있어서. 그 후로 몇 번을 더 해먹었고, 오늘도 해먹어볼 생각이다. 정식 타코라기보다는 피자에 가까웠지만, 나름 괜찮았다.
앞으로도 내가 좋아하는 음식들을 꾸준히 즐길 생각이다. 사람에게는 먹는 즐거움이라는 게 또 있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