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에 TV를 보다가 내 시선을 사로잡는 채널이 하나 있었다. 바로 2020년 1월 20일부터 열리고 있는 2020 호주 오픈 테니스대회 중계. 이미 지나간 경기가 더 많았고, 내가 우연히 보게 된 것은 진행되고 있던 4강 대회였다. 원래 스포츠를 하는 것보다 보는 것을 좋아하는 나는 손에 땀을 쥐게 만드는 그들의 역동적인 모습에 어느새 빠져들어 중계를 보고 있었다. 서브 하나에, 스트로크 하나에 온 정성을 쏟는 그들이야말로 프로 스포츠 선수다웠다. 최정상급 선수들의 경기를 직접 가서 관람하지는 못하지만, 이렇게라도 볼 수 있다는 게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언제 또 그들의 경기모습을 볼 수 있겠는가. 중계를 통해서였지만, 선수들의 다양한 표정과 울부짖는 소리에서 얼마나 치열하게 경기를 치루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테니스 대회를 보기 전에 경기의 룰부터 아는 것이 그 스포츠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가 아닐까 생각한다. 그래서 먼저 테니스 룰에 대해 간단히 이야기해보려 한다.
일단 내가 본 중계는 2명이 겨루는 남자 단식 경기였다. 테니스의 경우, 게임에서 포인트를 더 많이 따고, 게임 득점이 더 많은 쪽이 세트(국제시합이나 정식 시합에서는 남자는 5세트, 여자와 주니어는 3세트까지 진행된다)에서 최종승자가 되는 것이다. 즉, 포인트-게임-세트-매치의 4단계로 이루어져있다고 보면 된다.
위에서 얘기했듯이 게임에서는 포인트를 더 많이 따는 사람이 유리하다.
경기를 하다보면 동점스코어가 나오는 경우가 종종 있다. 15대 15일 때에는 fifteen All, 30대 30일 경우에는 thirty All이라고 부른다.
게임은 4포인트(50점)를 먼저 따는 사람이 이기게 되는데, 양쪽 모두 3포인트를 얻어(40:40) 동점이 되는 경우를 듀스(Deuce)라고 한다. 테니스 경기에서는 점수가 나거나 동점이 될 때, 심판이 소리를 내어 알려주기도 하기 때문에 기본적인 용어 정도는 알고 있는 게 큰 도움이 된다. 듀스가 된 경우, 2포인트를 연속으로 따야 이길 수가 있다. 한 포인트를 먼저 따고, 그 경기자가 다시 포인트를 따야 한 게임을 얻게 되는 것이다. 만약 두 번째 포인트를 상대방에게 빼앗기면 다시 듀스가 되어 2포인트를 먼저 따야하는 상황을 반복하게 된다. 그러면 경기의 시간은 자연스레 길어질 수밖에 없다. 한 경기당 최소한 몇 시간이 걸리는 테니스인지라 다소 지루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경기자들의 행동 하나하나에만 집중해야하고, 랠리(오랫동안 볼을 주고받는 것)가 길어지는 경우가 흔히 생기기 때문이다. 하지만 랠리의 길었던 과정과 그 끝에 이 공이 가져오는 결과를 지켜보는 게 테니스의 매력이 아닐까 싶다. 그런 감동 때문에 계속 찾아보게 되는 것 같다.
이렇게 4포인트를 먼저 딴 사람이 한 게임을 얻게 되고, 6게임을 먼저 따내는 사람이 1세트를 이기게 된다. 처음에는 다소 복잡할 수도 있지만, 일단 익숙해지면 그리 어려운 룰도 아니다. 이때도 동점(5:5)이 되면 듀스가 되어, 2게임을 먼저 연속으로 따야지 그 세트를 이길 수 있다. 게임 스코어가 6:6이 되면 13번째 게임에서는 두 포인트 차 이상으로 7포인트를 선취해야 하는 ‘타이브레이크 룰’이 적용된다. 타이브레이크 제도라는 것은 게임 스코어가 5:5인 듀스 상황에서 비슷한 실력으로 2게임을 연속으로 따는 것이 어려워 계속 듀스의 상황이 반복되어 게임이 무한정 계속되는 경우를 방지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그럴 경우,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려 대회에 지장이 생기고, 선수들의 체력에 무리가 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개인적으로 합리적인 룰이라는 생각이 든다. 다시 말해서 6:6의 스코어인 경우, 마지막 한 게임으로 승패를 결정하는 것이다. 번갈아 서브를 넣어 12포인트 가운데 7포인트를 먼저 얻는 선수가 마지막으로 승자가 된다. 기본적인 룰에 대해 자세히 알았다면 이제 직접 게임을 볼 차례다.
☞ 상식으로 알아두면 좋은 게 하나 더 있다. ‘테니스 4대 메이저 대회’라고 하면 생각나는 대회가 있는가. 이름은 아마 많이들 들어보았을 것이다. ITF(국제테니스연맹)에서 관장하는 것으로 호주 오픈(호주 멜버른), 프랑스 오픈(프랑스 파리), 윔블던(영국 윔블던), US 오픈(미국 뉴욕)의 4가지 대회를 말한다. 이 4개의 토너먼트에서 우승하는 것을 ‘그랜드 슬램(grand slam)이라고 하는데, 선수들에게는 엄청난 영예를 안겨준다고 할 수 있다.
로저 페더러 VS 노박 조코비치
먼저 맞붙은 4강 대결자는 로저 페더러와 노박 조코비치였다. 이때부터 중계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비록 준결승이기는 해도 세계 최정상급 선수들의 맞대결이라 그런지 경기 자체가 재미있게 흘러갔다.
로저 페더러는 스위스 선수로 2004년부터 2008년까지 237주 연속으로 세계 랭킹 1위를 기록하며, 역대 최장 연속 랭킹 1위 기록을 세웠다. 그래서 많은 스포츠 전문과들과 비평가들, 서순들에게 역사상 최고의 선수로 손꼽힌다. 현재는 세계 랭킹 3위에 마크되어있다.
노박 조코비치는 역대 가장 뛰어난 전성기를 보낸 세르비아 선수이다. 오픈 시대에 그랜드 슬램을 달성한 최고의 남자선수 중 한 명으로(그랜드 슬램 대회를 연도와 상관없이 연속으로 4개 대회 모두 우승하는 것을 말한다) 커리어 골든 마스터스를 달성한 선수이기도 하다. 그리고 우리에게도 익숙한 ’나달‘ 선수와 함께 황제의 아성에 도전하고 있는 무결점 테크니션이라 할 수 있다. 지금은 세계 랭킹 1위를 기록하고 있다.
이렇게 세계 랭킹을 앞뒤로 다투는 두 선수인 만큼 처음에는 비슷한 실력을 보이며 동등한 경기를 펼쳤다. 결국 타이 브레이크로 이어진 1세트는 5-1로 리드한 조코비치가 따내며 먼저 기선제압을 했다. 이에 페더러는 다소 힘이 빠진 듯한 모습을 보였다. 그런 페더러를 상대로 그라운드 스트로크 싸움에서 경기 내내 우위를 보였던 조코비치는 결국 세트스코어 3:0으로 결승에 진출했다. 선수들의 스트로크 하나에, 서브 하나에 조용해졌다가 환호도 했다가 하는 관중들이 너무 부러웠다. 세계적인 선수들의 기막힌 경기를 직접 볼 수 있으니 말이다.
로저 페더러와 노박 조코비치 선수가 다정한 포즈를 취하고 있다
도미니크 팀 VS. 알렉산더 즈베레프
도미니크 팀은 오스트리아 선수로 강력한 스트로크를 기본으로 하는 전형적인 베이스라이너로 알려져 있다. 특히 이번 대회 8강에서 세례 랭킹 1위(2020 호주 오픈 전 랭킹)인 라파엘 나달(스페인)을 꺾고 준결승에 올라온 만큼 큰 기대가 되는 선수라 할 수 있다. 동갑인 프랑스 테니스 선수 크리스티나 믈리데노비치와 연애중이어서 또 눈길을 끌고 있다. 현재 세계 랭킹 4위를 차지하고 있다.
반면, 알렉산더 즈베레프는 APT(남자프로테니스) 넥스트 제너레이션 유망주들 중 최고의 성적을 기록하고 있는 독일 선수다. 21살의 어린 나이에 APT 파이널스에서 우승하며 무시무시한 성과를 내고, 테니스 빅4가 은퇴한 후에 정상의 자리를 차지할 가능성이 제일 높은 선수로 손꼽히고 있다. 세계 랭킹은 현재 7위에 머무르고 있다.
차세대 최고의 선수들로 주목받고 있는 이들의 매치인 만큼 경기 내내 치열한 싸움이 이어졌다. 처음에는 비등한 실력을 보이다가 다소 주춤한 도미니크 팀이 결국 1세트를 즈베레프에게 내주었다. 하지만 그 이후 상대를 무섭게 밀어붙이며 세트스코어 3:1로 결국 결승 진출을 확정지었다. 3, 4세트 모두 타이 브레이크 상황까지 가며 이어진 경기는 정말 명승부라 할만 했다. 경기 중간에 짧은 에피소드가 있었다. 잘 켜있던 경기장 내 라이트 하나가 나가버리는 사고가 발생한 것이다. 밤 경기라 라이트를 켜고 시합이 진행되었는데, 어느새 하나가 나가버린 것이다. 아주 중요한 경기였기에 즈베레프 선수가 먼저 어필을 했다. 원래 켜있던 라이트여서 선수로서는 당연한 조치였고, 그로인해 10분 정도 경기가 잠시 중단되었다. 곧 경기는 재개되었고, 이때의 영향이 있었는지 준결승전은 도미니크의 승리로 끝이 났다.
이제 승부처는 노박 조코비치와 도미니크 팀의 결승전이 되었다. 둘 중 한 사람이 테니스계에 있어 또 하나의 새로운 역사를 쓰게 된 셈이다.
알렉산더 즈베레프 선수
도미니크 팀 선수
노박 조코비치 VS. 도미니크 팀
일단 초미의 관심사는 노박 조코비치가 2년 연속 호주 오픈 결승전에서 상대를 이길 수 있을지 하는 것이었다. 그동안의 전적과 점수들을 비교해본 결과, 많은 전문가들이 8:2의 비율로 조코비치가 유리하다는 결론을 내놓았다. 하지만 ’길고 짧은 것은 대봐야 안다‘고 경기는 직접 해봐야 결과를 알 수 있는 법이다. 막상 뚜껑을 열어보면 어떤 결론이 날지 너무 궁금해졌다. 경기는 시작되었고, 결승전답게 4시간 이상이 걸린 대단한 접전이었다.
처음에는 조코비치의 페이스대로 경기가 이루어지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적절한 때에 서비스 포인트를 착실히 쌓으면서 점점 분위기는 도미니크 쪽으로 흘러가는 듯 했다. 잠시 주춤한 조코비치는 2세트 후반부터 크게 흔들렸고, 3세트까지 자신의 페이스를 찾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점점 흥미진진해졌다. 오랜 시간으로 엉덩이가 조금씩 아파왔지만, 이 대단원의 끝을 보고 싶었다. 1세트를 따고, 연이어 두 세트를 내준 조코비치는 쉬는 시간에 잠시 화장실도 다녀오는 등 나름의 정렬을 한 것 같았다. 4세트가 시작되자 그의 모습은 달라졌고, 경기력이 살아나기 시작했다. 아마 이것이 조코비치 선수의 강점이자 지금까지 사랑받는 이유일 것이다. 어쨌든 컨디션을 다시 회복한 조코비치는 남은 여력을 다해 4세트를 따냈다. 그리고 5세트에서 6-4로 최종 우승해 결국 8번째 호주 오픈 트로피를 들어 올리며, 랭킹 1위의 자리도 다시 되찾았다. 풀세트 접전에서 3:2로 이긴 노박 조코비치. 포효하듯 소리 지르는 그의 모습이 카메라에 잡혔다. 얼마나 치열했을까. 물론 도미니크 팀 선수도 너무 잘 싸워주었다. 그의 입장에서는 이 경기가 굉장히 아쉬웠을 거라 생각이 든다. 좋은 경기력을 보여주고 있었는데, 아쉽게도 끝까지 자기의 스코어를 지켜내지 못했다. 하지만 누구하나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승부를 향해 페어플레이 하는 모습에 두 선수 모두에게 박수를 보낸다. 이게 바로 스포츠의 정신일 것이다.
볼 퍼슨, 그들이 궁금하다
테니스 경기를 보면서 항상 신기했던 것이 하나 있었다. 바로 재빠르게 공을 주워 선수에게 건네주고, 중간 중간 얼굴 땀 닦는 수건도 건네주는 볼걸, 볼보이(합쳐서 볼 퍼슨이라고 한다). 테니스 경기의 원활한 흐름과 진행을 위해 볼의 이동과 제공을 도와주는 아이들로 교체될 공을 가지고 있다가 선수들이 서브를 할 때 공을 주는 역할을 하게 된다. 하지만 이들의 역할은 이게 다가 아니다. 경기 중 공이 코트 안팎에 떨어지면 이들이 그 공을 주워 서브권이 있는 선수 쪽으로 이동시키고, 그쪽의 볼 퍼슨이 공을 가지고 있다가 선수에게 건네주는 것이다. 이들은 선심(라이즈맨)의 바깥쪽에 위치해 경기에 방해되지 않도록 움직이지 않는다.
축구와 비슷하게 테니스에서도 볼 퍼슨으로 유망주들이 투입되는 경우가 있다. 프로 선수의 경기를 코앞 가까운 곳에서 바로 지켜볼 수 있기 때문에 이들에게는 아주 좋은 기회라 할 수 있다. 테니스의 황제 페더러도 어렸을 때 볼보이 일을 자주 했다고 한다.
특히 역사와 전통이 있는 윔블던은 1920년대 초 메이저대회 사상 최초로 볼보이 제도를 도입해 메이저대회 가운데 가장 잘 훈련받은 볼보이를 기용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1946년부터 인근 학교에서 뽑은 자원봉사자를 교육시켜 대회를 운영해왔고, 77년 볼걸 제도가 도입되면서 더욱 주목받기 시작했다. 대회 개막 6개월 전부터 매주 4일씩 받는 힘든 훈련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받을 수 있는 보상은 초록색과 보라색 제복뿐이다. 하지만 세계 최고의 테니스 대회에 참여했다는 자부심을 가지기 위해 매년 지원자가 끊이지 않는다고 한다. 역시 테니스를 사랑하는 나라답다.
그럼 마지막으로 볼 퍼슨에 대해 제일 궁금했던 2가지에 대해 간단하게 알아보려한다.
1. 랠리 중 대기하는 네트 옆 볼 퍼슨은 왜 두 무릎을 꿇고 있거나 아니면 한쪽 무릎만 꿇고 준비 자세를 하고 있을까?
- 자세히 보면 카메라맨의 배치가 랠리 중 대기하는 코트의 네트 옆 자리의 바로 뒤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볼퍼슨이 대기할 때 낮은 자세를 취하고 있지 않으면 카메라가 선수들을 찍을 수가 없다. 이런 이유로 네트 옆 대기하는 모든 볼 퍼슨은 그런 자세를 취하고 있는 것이다.
2. 볼 퍼슨이 선수에게 공을 건네줄 때, 양손을 번쩍 들어 하나씩 던져주는 모습을 자주 본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 선수에게 자신이 가진 공의 개수를 알려주려고 하는 것이다. 선수들은 보통 한 번 공을 가질 때, 2~3개씩 주머니에 쑤셔 넣는다. 그것이 다 떨어지게 되면 볼 퍼슨에게 공을 요구하게 된다. 그래서 자기가 가진 공의 개수를 알리고자 팔을 번쩍 들어 공을 보이고 선수에게 공을 던져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