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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짱 Feb 15. 2020

Barista

  


지금은 바리스타일을 하고 있지 않지만, 오랫동안 몸담았던 바리스타의 세계는 특별함 그 자체였다. 그래서 재미있고, 나쁘지 않았던 경험이자 경력이라고 생각한다. 바리스타라고 하면 일단 어감이 좋고(나만의 생각일지도 모르지만), 프로페셔널해 보이는 앞치마를 맨 모습이 참 멋있어 보인다. 사실 나도 처음에는 이런 모습에 빠져들었는지도 모르겠다. 어느 순간 TV에서는 ‘커피프린스 1호점’이라는 카페 소재의 드라마가 큰 인기를 끌면서 바리스타에 대한 이미지도 높아졌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커피 맛에 눈을 뜬 것이 큰 영향을 주었다. 어렸을 적에는 쓰다는 이유로 마시지도 못했던 커피를 대학생이 되고나니 나도 모르게 즐기고 있었던 것이다. 처음에는 달달한 커피만 찾다가 나중은 물론 지금까지도 아메리카노를 제일 좋아한다. 바리스타 일을 할 적에는 피곤하면 진한 에스프레소에 설탕을 넣어 마시곤 했다. 그러면 피로가 싹 풀리는 느낌이 참 좋았고, 조금 그립기도 하다.       


여정의 시작     


때는 대학생 시절. 학교 내 아르바이트 기간이 끝나서 또 다른 아르바이트 자리를 구하고 있는 중이었다. 사이트를 보던 중 눈에 띄는 곳이 있었다. 선망의 대상이었던 카페 아르바이로 명동 스타식스극장(지금도 있는지 모르겠다) 근처에 위치한 매장이었다. 곧바로 지원을 했고, 연락이 와 면접을 보러 가게 되었다. 다행히 면접에 합격해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바쁜 점심시간(11시~5시)대여서 정신을 바짝 차릴 수밖에 없었다. 카페에서 일하는 것은 처음인지라 실수도 많았지만, 또래 아르바이트생들에게 많이 배워가며 점점 익숙해져갔다. 특히 주위에 사무실이 많은 특수상권이어서 점심시간대가 엄청 바빴다. 게다가 샌드위치(핸드메이드)도 함께 판매하고 있어서 더 정신이 없었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재미있었던 에피소드가 꽤 있었다. 개중에 매일같이 단골로 오던 외국인 손님이 제일 기억에 남는다. 자주 혼자 와서 샌드위치와 커피를 시키던 손님이었는데, 그날따라 무슨 일이 있었는지 기분이 별로 안 좋아보였다. 아르바이트 하는 다른 친구가 주문을 받았는데, 이 친구가 원래 조금 무뚝뚝하고 표정의 변화가 없는 편이었다. 그런데 무엇에 기분이 나빴는지, 어떤 상처를 받았는지 갑자기 외국인 손님이 울기 시작하는 것이다. 원래는 항상 밝게 웃어주시던 분이었다. 훌쩍훌쩍 우는 정도가 아니라 나중에는 대성통곡을 하는 것이 아닌가. 주문을 받았던 친구 뿐 아니라 나를 포함한 뒤에 있던 아르바이트생 모두가 놀라서 말 그대로 얼어붙었다. 조금 있자 갑작스런 일에 놀랐는지 주문을 받았던 친구도 우는 것이다. 우리는 서로 바라보며 눈만 동그랗게 뜨고 있었다. 둘 다 조금 진정이 되자 일단 주문받던 친구가 먼저 사과를 했다. 그렇게 일은 어느 정도 일단락되었고, 그 외국인 손님은 조금을 더 흐느끼다 주문한 커피와 샌드위치를 들고 돌아갔다. 이런 일은 평생 처음이었고, 많이 당황스럽기까지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날 무슨 일이 그분에게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아마 조금 억울한 상황이 있었던 것 같다. 지금 같으면 조금이라도 이해?!해보려고 노력했을지도 모르지만, 그 당시에는 어린 마음에 정말 놀랬었다. 아무튼 이런 일도 하나의 추억거리가 되어버렸다.                  


New Start     


대학을 졸업하고 나서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취업을 준비했다. 그 결과, 헤어전문잡지사에 들어가 에디터로 일할 수 있었다. 내 인생 최초로 사회생활다운 경험을 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 열심히 일하다보니 직업에 대한 회의감이 조금 들기 시작했다. 그 당시만 해도 인터넷이 한창 발달하던 시점이라 인쇄물인 잡지에 대한 수요가 점점 줄어들고 있었다. 물론 이게 직접적인 이유는 아니었지만, 여러 가지 계기로 인해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다. 내가 이 일에 재능이 있는지, 앞으로의 전망이 밝은지 등의 다양한 고민을 한 끝에 지금 나에게는 새롭게 자극할 것이 필요하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처음에는 이 결정이 쉽지 않았다. 하지만 과감하게 바리스타 학원에 등록했다. 막상 바리스타의 길을 걸으려고 하니 기초부터 다시 배워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리고 기왕이면 제대로 배워보고 싶었다. 수업을 해보니 원두종류에서부터 핸드드립 내리는 법까지 공부할 게 의외로 많았다. 그리고 기초지식(이론+실기)을 배우는 게 생각보다 재미있었다. 오랜만에 하는 공부여서인지 정말 열심히 했던 것 같다. 집에서 뿐만 아니라 도서관, 혹은 카페에서도 자발적으로 공부할 정도였으니까. 그렇게 바리스타의 길로 들어서게 된 것이다. 그리고 막상 시작하니 자격증을 따야겠다는 목표가 생겼다. 그래서 짧은 기간이지만 열심히 준비했다. 그리고 바리스타 자격증을 내 손에 넣을 수가 있었다. 뭔지 모를 뿌듯함과 기쁨이 있었고, 열심히 했다는 자부심도 생기게 되었다. 그래서 더 열심히 했던 것 같다. 그러다가 큰 프랜차이즈에서 카페 매니저를 구하는 공고를 보고, 대차게 지원을 했다. 본사에서 교육을 받은 후 지정된 매장으로 가서 일하게 되는 방식이었는데, 좋은 기회라는 생각이 들었다. 많은 추억과 재미를 주었던 교육 일정이었고, 무사히 매장에서 바리스타 겸 매니저로서 일하게 되었다. 일하는 도중에 남자친구도 생기는 등 좋은 일도 많았다. 

그런데 열심히 일하다보니 의외의 복병이 나타났다. 큰 체인점 이다보니 마감 때까지 할 일이 너무 많은 것이 아닌가. 주문받는 것과 음료제조는 물론 기본이고, 재고확인과 정리, 머신 청소와 마감, 물품주문, 전체적인 관리까지 해야 하니 체력적으로 힘들었다. 게다가 불규칙한 근무시간(3교대 근무), 일주일에 한 번 제빙기 청소, 마감 때는 아이스크림 기계 마감과 청소까지 더해지니 점점 의욕이 떨어졌다. 물론 아리바이트생과 점장이 있긴 했지만, 점장은 커피를 배워본 적도 없는 분이어서 솔직히 전혀 도움이 되질 않았다. 아무튼 서비스업 이다보니 당연한 일이지만, 남들 쉴 때 쉬지 못하고 일하는 것도 심적으로 조금 부담이 되었다. 남들도 다 그렇게 일하는데 유별나게 군다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 때의 솔직한 내 심정은 그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향긋한 커피향이 좋고, 손님들과 이야기하는 게 좋아 계속 바리스타의 길을 걸은 것 같다. 다른 몇 군데 프랜차이즈 점과 사내카페에서도 매니저로 계속해서 일을 했으니 말이다. 때로는 동료가, 때로는 고객이 나에게 주었던 위로가 이 일을 계속 하게 만드는 원동력이었던 것은 부정할 수 없다. 그래서 유명한 바리스타들이 끊임없이 계속 나오는가보다.     


Turning Point         


지인들에게 나중의 꿈이 뭐냐고 물어보면 대다수가 카페를 하는 것이라 답할 만큼 많은 사람들이 카페를 하는 것에 대한 로망이 있는 것 같다. 나도 어렸을 적부터 카페 하는 게 꿈이었으니까 말이다. 심지어 바리스타 일을 하고 있으니 자신의 카페를 하는 사람들이 더 부러웠다. 

열심히 일하던 중, 아주 좋은 기회가 생겨 엄마와 함께 드디어 카페를 오픈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아주 유명 프랜차이즈는 아니었지만, 소소하게나마 우리만의 카페를 할 수 있다는 게 너무 좋았다. 대학교 내에 위치한 카페였는데, 참 많은 추억이 깃든 곳이라 할 수 있다. 지금 생각해보면 힘든 것도 참 많았지만, 고객들과의 유대감이 주는 만족감이 최고였던 때라 감히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특히 특수 상권(교내)이어서 거의 매일 오는 단골 학생들과 교수들이 꽤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지금도 기억에 남는 고객들과 아르바이트생들이 있다. 매번 카푸치노를 드시고 너무 맛있다고 수다를 떠시던 여자 교수님, 재미있는 농담으로 웃겨주시던 교수님, 젠틀하고 중후했던 외국인 교수님 등등 많은 분들이 떠오른다. 개중에 나이대가 비슷했던 원어민 교수님이 제일 기억에 남는다. 자주 오는 분이었는데, 올 때마다 대화를 나누다 보니 나이까지 서로 알게 되었다. 그래서 더 편하게 이야기 할 수 있었던 것 같다. 특히 여행이라는 공통분모가 있어서 휴가 때 어디를 다녀왔는지, 그동안 어디를 가봤는지 등의 이야기를 많이 나눴다. 출⋅퇴근 할 때도 가끔 마주쳤는데, 그때마다 반갑게 인사해주던 그가 고마웠다. 그런 것들이 힘이 되어 더 열심히 할 수 있었던 것 같다. 나름의 보람을 느끼며, 하루하루 힘들 쏟았다. 아무래도 매장에 대한 애정과 책임감이 더 생기게 되었으니 말이다. 그래도 이때에 대한 기억은 나에게 항상 좋은 힘을 준다. 그래서 감사하다. 몇 년이 지나서 여러 가지 이유와 상황으로 매장을 다른 분에게 넘기게는 되었지만, 이곳은 또 다른 경력과 경험을 나에게 안겨주었다. 죽을 때까지 아마 잊지 못할 것이다.                  


언젠가 또 바리스타일을 다시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체력적으로 다소 힘든 직업일지도 모르지만, 그만큼 보람과 뿌듯함을 느낀다면 그걸로 만족할 수 있지 않을까싶다. 오늘도 다양한 카페에서 일하고 있는 바리스타들이 힘내길 바라며 이 글을 마친다. Graz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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