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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짱 Mar 19. 2020

나를 기억해주겠니?


우리 ‘코코’는 아주 자그맣고 사랑스러운 갈색 푸들이었다. 많은 반려인들이 그렇듯이 코코는 우리 집 막내이자 항상 함께하는 가족이었다.      


코코와의 첫 만남이 언제였는지도 까먹었다. 하도 오래전 일이여서. 암튼 나는 그 때 감기로 인해 집에서 쉬고 있었다. 어렸을 때, 엄마랑 아빠가 외출을 하면 종종 안방 큰 침대에서 TV를 보며 쉬곤 했다. 그날도 역시 큰 침대를 혼자 차지하며,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현관문이 열리고 외출에서 돌아온 부모님이 뜻 모를 미소를 짓고 계셨다. 그리고 순간 나는 말을 잇지 못했다. 세상에나. 너무나 앙증맞고 귀여운 강아지와 함께인 것이 아닌가. 아직 애기애기한 꼬물거리는 생명체와 그 순간 사랑에 빠져버린 것이다. 침대에서 뛰쳐나온 나는 뽈뽈거리며 집안을 휘젓고 다니는 이 친구의 이름을 ‘코코’라고 지어주었다. 그 때부터 코코는 우리 식구가 된 것이다.      


코코는 정말 순하고, 조용하고, 놀기 좋아하고, 먹기 좋아하는 평범한 반려견이었다. 간식이라면 사족을 못 쓰고, 사람이 먹는 음식이나 사료나 가리지 않고 잘 먹어 더 예쁜 우리 막내였다. 대체적으로 푸들은 머리가 좋은 편이어서인지 며칠 배변훈련을 하니 실수도 거의 하지 않았다. 그야말로 우리 집의 복덩이라 할 만 했다. 산책도 좋아해 줄만 만져도 나가는 줄 알고 신나하던 친구였다. 사람을 좋아해 산책을 나가도 잘 짓지 않고, 줄을 리드하는 여유까지 보였었다.     


또 잘 때는 항상 자기 집(둥근 아치형으로 된 강아지 집)에 쏙 들어가 자곤 했다. 팔을 쭉 뻗어 바닥에 걸친 채로 말이다. 가끔은 침대를 탐하기도 했다. 안방이든, 내 방이든 밤에 몰래 들어와 침대에 올라와 한 자리를 차지하면 코코 발에서 뿜뿜 하는 꼬순내를 맡으며 꿀잠을 잤다. 밤새 자기 집에서 잔 경우에는 아침에 해가 떴으니 나와라는 듯 방문을 긁거나 살짝 열려있으면 밀고 들어와 촉촉한 코인사를 한다. 그러면 기분 좋게 일어나곤 했다. 밖에 있다 집에 들어가면 그야말로 축제의 시간이다. 자기 집에 있다가도 어떻게 아는지 꼬리를 헬리콥터 날개처럼 치며 반기러 나왔다. 그 시간은 정말 큰 기쁨이자 행복이었다고 감히 말하고 싶다.          


우리가 함께 한 추억은 참 많다. 한번은 휴가차 용평을 가는데, 그 짧지 않은 길을 함께 했다. 휴가철이어서 차가 엄청 막혔던 기억이 난다. 너무 차가 막혀 잠깐 휴게소에 들러 쉬어가려는데, 마침 그 휴게소 뒤쪽에 엄청 넓은 잔디밭이 있었다. 거기서 잠깐 놀다갈까 하고 코코를 데리고 향했다. 그렇게 신나게 뛰어노는 모습은 처음이었다. 기쁘면서도 한편으로는 짠했다. 이렇게 신나게 뛰어놀게 해주지 못한 지난날들이 후회되면서. 어쨌든 그 시간만큼은 모두가 행복했다.     




어느새 코코가 12살이 되었을 때였다. 하지만 나이에 무색하게 여전히 똥고발랄하고 귀여운 친구였다. 귀찮아하는 게 조금씩 늘긴 했지만 말이다. 그런데 어느 날 부터였던가. 코코가 조금씩 골골대기 시작하는 것이다. 집에서도 잘 안 나오고, 잘 먹지도 않고 해서 걱정이 되었다. 그리고 움직임이 좀 적어졌다 싶어 바로 병원에 데리고 갔다. 진단은 폐렴이었다. 휴우. 강아지한테 폐렴은 참 무서운 병이다. 게다가 나이도 있는 코코로서는 더 감당하기 힘들 거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야말로 억장이 무너졌다. 지금 생각해보면 겨울철이었는데, 그날따라 집에 난방을 켜지 않고 자서 코코에게 폐렴기가 생기지 않았을까싶다. 다 나의 불찰, 나의 잘못인 것 같았다.

병원에서는 나이가 있어 치료를 받고, 약을 먹어도 더 이상 소용이 없을 거라고 했다. 정말 앞이 막막했다. 너무 미안한 마음이 들어서 더 괴로웠다. 내가 해줄 수 있는 거라고는 매일매일 병원에 들러 영양제 주사를 맞춰주는 것 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것도 얼마간의 수명연장만 해줄 뿐이었다. 그나마 주사를 맞고 오면 잠깐 동안은 집안을 걸어 다니며 기운을 찾는 듯했다. 하지만 이내 주저앉아 누워만 있을 뿐이었다. 마음이 너무 아팠다. 말 그대로 마음이 찢어질 듯 아팠다. 그래도 그 와중에 우리 식구가 외출했다 들어오면 자기 집에 누운 채로 꼬리를 흔들며 반겼다. 아마 움직이지를 못하겠어서 그랬던 것 같다. 그 모습이 또 나를 눈물 나게 했다. 얼마나 아프고, 기운도 없을 텐데 그래도 반갑다며 꼬리를 흔드는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그야말로 코코는 하루하루를 영양제로 버티고 있었고, 우리는 슬픔의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 당시 부모님은 바쁘셨고, 내가 매일매일 코코를 안아서 병원에 데리고 다녔던 걸로 기억한다. 거실에 자리를 깔고, 담요로 코코를 싸맨 채로 우리는 많은 시간을 함께했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코코의 상태는 나빠졌다. 물만 마시고, 잘 먹지도 못하고, 움직이지도 못했다. 병원에서는 이제 마음의 준비를 할 때인 것 같다고 했다. 하지만 머릿속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영원히 함께할 것만 같았던 코코와의 이별은 생각조차 해본 적이 없었으니까.      


그날따라 병원에서 돌아온 코코는 다른 날보다 조금 활발했다. 마치 죽기 전에 마지막 사력을 다하듯이 그랬다. 그날 밤 코코는 엄마, 아빠와 안방에서 잤다. 그리고 나는 잠이 안와 밤늦게 겨우 잠이 들었던 것 같다. 그런데 잠결에 갑자기 ‘컹’하고 엄청 크게 짖는 소리가 들렸다. 순간 뭔가 이상한 느낌에 바로 안방으로 달려가 보니 세상에나 코코는 이미 저 세상으로 떠나있었다. 엄마는 새벽이니 다시 방에 가서 자라며 괜찮다고 하셨다. 방에 돌아와 생각해보니 아무래도 자기의 마지막 자리에 나를 부르고 싶었던 게 아닌가싶었다. 부모님은 그런 소리를 못 들었다고 하셨으니 말이다. 마지막으로 나를 보고 싶었던 걸까. 마지막까지 돌봐준 고마움의 표시였을까. 아무튼 지금까지도 그 소리는 분명 마지막에 나를 불렀던 코코의 소리라는 생각이 든다. 막 눈물이 흘렀다. 잘 가 내 오랜 친구야. 잘 가 코코야. 여기에서의 삶이 편안했기를 빌어. 다음날, 우리는 코코를 화장시켜주었다. 그렇게 우리 코코를 보내주었다.      


코코를 저 세상으로 보냈던 것은 아주 오래전 일이다. 하지만 아직까지도 코코를 보고 싶은 마음은 순간적으로 울컥울컥 올라온다. 아마 평생을 잊지 못할 것이다. 이런 나를 기억해주겠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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