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을 <페파 피그>로 배운 우리 다인이는 런던에서 2층버스를 타고 싶다는 로망을 가지고 있었다. 한동안 공룡을 그렇게 모아대더니, 이후에 자동차란 자동차는 종류별로 모으고 있는 탈것 덕후 5세 민찬이도 2층 버스 타길 한껏 기대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덥다 못해 피부가 이글이글 타들어가는 게 실시간으로 느껴지는 뜨거운 여름, 어린 아이들과 런던 시내를 한바퀴 휘~ 돌아보기엔 투어버스만한 게 없다! '마이리얼트립'같은 여행사 어플 등을 찾아 보면 꽤 여러 종류의 투어버스 옵션들이 있다. 같은 상품이어도 여행사마다 가격이 조금씩 다르니, 꼼꼼히 비교해볼만하다. 그런데 나는, 만약 우리 아이들이 이렇게 어리지 않고, 초등 고학년 정도의 나이만 되었어도, 이렇게 여러개 수박 겉핥기 식으로 돌러보는 투어버스보다는, 박물관이든 미술관이든 선택해서 관심분야에 대해 좀 더 깊이 있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전문 가이드 투어를 선택했을 것 같다. 자유로운 영혼들을 데리고 다녀야 하는, 우리는 24시간 동안 런던 주요 관광지를 모두 다 돌아 볼 수 있는 빅버스 hop -on hop-off classic ticket을 끊었는데, 여기에는 편도 리버 크루즈를 탑승권도 포함되어 있었다.
(런던 빅버스의 주요노선)
버킹엄 궁전과 근위병 교대식/국회의사당/빅벤/웨스트민스터 사원/다우닝 스트리트 10번가/화이트/ 피카딜리 서커스/옥스포드 가/리젠트 가/트라팔가 광장/런던아이/런던 지하 감옥/시라이프 런던 아쿠아리움/마담 투소 런던/코벤트 가든/잉글랜드 은행/모뉴먼트/세인트 폴 대성당/런던 타워/타워 브릿지/더 샤드/시청/램버스 궁전/대영박물관/마블 아치/메이페어/그린 파크/하이드 파크 코너/헤로즈 백화점/사우스 켄싱턴 박물관/켄싱턴 궁전/노팅힐
** 정거장마다 내려서 돌아보기엔 시간이 부족하므로, 런던을 대표하는 몇몇곳과 아이들이 좋아할만한 곳 위주로 선택과 집중을 했다.
때마침 런던 빅버스가 멈춰서는 정류장 중에 우리 숙소 근처인 글로스터로드 역이 있었다! (Hooray!!)
전날 밤 충분히 잠을 자고 시차적응 하루만에 깔끔하게 끝낸 우리는 산뜻한 기분으로 집을 나섰다!
그리고 조금 걸어 글로스터로드역에 도착하자마자, 역앞에 떡하니 서있는 빅버스를 곧바로 탈 수 있었다!
(오늘은 첫코스부터 조짐이 좋아~~)
런던 빅버스는 국내 여행사 어플을 통해 하루 전날 예매했는데, 당일에 버스 앞에서 빅버스 직원에게 구매해도 된다. 가격차이도 크게 나지 않는 것 같다. 버스를 타니 기사님 옆쪽 바구니에 이어폰들이 쌓여있었다. 이어폰을 가져와, 자리에 앉아 좌석 앞자리에 비치된 오디오 장치에 꽂으면, 버스를 타고 지나는 곳이 어떤 곳인지 설명해주는 오디오가이드가 나왔다. 몇개의 언어 선택지가 있었지만 아쉽게도 한국어는 없었다. 초반엔 영어로 열심히 들었는데, (이건 뭐 듣기 평가도 아니고..;;) 그닥 재미가 없었다. (못알아들어서 그런거겠지?) 나중에는 이어폰 따위는 빼버리고, 바람을 느끼며 그냥 눈에 보이는 그대로만 보고 즐겼다. 우리는 이국적인 풍경에 들떠하는 서로의 모습을 사진찍어주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초반 계획은 버킹엄 궁전에 내려서 아침 교대식을 보는 것이었다. 교대식 시간이 오전 11시이므로, 이대로 내리지 않고 쭉~ 버킹엄까지 가면 늦지않게 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민찬이가 급 쉬야가 마렵단다. (역시 변수가 없으면 여행이 아니지!) 어린 아이기때문에 오래 참게 했다가는 언제 실수할 지 모른다. 다음 정거장에서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내렸다. 우리는 어딘지도 모르는 곳에 내렸는데, 어느 큰 공원의 구석쯤 되는 것 같았다. 화장실을 쉽게 찾을 수 없을 것 같은 위치였다. 다행히 우리 손엔 마시던 커피컵이 있었고, 누나와 아빠가 바리케이트를 쳐주고, 급한 용무를 커피컵에 처리할 수있었다. 이럴 땐 남자아이라 얼마나 다행인지!! (여자아이는 화장실 찾을 때까지 징징거리는 아이 달래가며 마음 조리며 뛰어다녀야 한다. 여행전부터 걱정했던 건 아이들 화장실 문제였다. 특히 유럽의 화장실이 얼마나 각박(?)한지 알기에... 유료 화장실이 많기 때문에 그 나라의 동전은 항상 구비하고 다녀야 했다. 10세 다인이도 여행 전 가장 걱정한 게 화장실이었다. 차를 타고 어디를 이동해야 할 때마다, "몇 분 걸려?"를 꼭 물어봤는데, 이는 화장실이 급할 때 못가게 될까봐서이다. 사람 심리가 화장실에 못가는 상황이라 생각하면 더 급해지는 법이니... 그래도 이날 이후로 화장실 때문에 엄청 난처했거나 일정이 꼬인일은 없었다.) 이날은 꼬였다. 빅버스에서 내렸다가 다시 탔을 때는 이미 시간이 지체되었고, 11시 교대식은 못보게 될 것 같았다. 그렇다면 꼭 지금 버킹엄을 갈 필요가 없어졌다.
긍정적으로 생각하면, 자유 여행이 이래서 좋다! 언제든 우리 마음대로 계획을 변경할 수 있으니까! 우리는 소호 지역에 내려서 아이들이 즐거워할만한 M&M월드와 그 맞은편에 있는 레고스토어를 가기로 했다. 사탕과 초콜릿으로 가득한 M&M월드에 입성하자마자, 아이들의 동공은 확장됐고, 벽을 빼곡히 채우고 있는 그많은 달콤한 것들을 모조리 다 먹어보고 사고 싶어했다. 게다가, 어찌나 아기자기한 갖고 싶은 기념품 소품들이 많은지...! 이거 들었다 저거 들었다 신기해하는 아이들, 그 순간만큼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이 자기들 것이 된것마냥 설레어했다. 그때 엄마의 찬물 끼얹는 한마디! "각자 가장 마음에 드는 거 딱 하나씩만 고르자!", 그리고 아빠의 덧붙임, "너무 큰건 안돼~ 캐리어에 공간이 많지 않아, 가지고 다니기 힘들어."
하나씩이라도 사게해주는 것이 감지덕지인 우리 아이들은 안에 초콜릿을 채워두고 버튼을 누르면 초콜릿이 조금씩 나오는 디스펜서를 골랐다. 각자 하나씩 고를 수 있었기에 두 남매는 의논하며 서로 다른 디자인의 디스펜서를 골랐다. (누나가 갖고 싶지만, 두번째로 갖고 싶은건 동생에게 추천하는 식으로..응?) 이와중에 의심많은 엄마는 바가지 가격은 아닌지, 한국에서 손쉽게 더 싸게 살 수 있는 건 아닌지 검색에 들어갔다. 다행히(?) 국내에서 사려면 꽤나 비싼 비용을 지불해 직구해야 하는 물건들이었다! 여기서만 살 수 있는 기념품인가보다. 오케이~ 사기로 하고, 디스펜서에 담을 초콜릿을 봉지 하나에 조금씩 조금씩 다양하게 담았다. (나중에 무게로 계산하는 시스템이므로 무턱대고 가득 담으면 요금 폭탄이 기다리니, 적당한 양만 담아야 한다.)
계산대에서 이 기념품들을 담을 에코백까지 구매했는데, 8파운드였던 이 에코백은 크기도 적당하고 가벼워서 여행 다니는 내내 요긴하게 들고다녔다. M&M월드에서 나와 맞은편 레고스토어까지 가면 좋았겠지만, 가는 날이 장날이다! 레고스토어는 내부 공사중이라 들어갈 수 없었다. 아쉬움을 뒤로하고, 우리는 피카딜리 서커스까지 거리를 따라 걸으며 여기저기를 구경했다. 유럽 주요 도시들이 대부분 그렇듯, 조금만 걸으면 이곳 저곳이 다 의미있는 곳이고, 볼거리고 관광지이다. 아는 만큼 보이는 법인데, 그냥 핫스팟에 가서 사진만 찍고 온 느낌이라 아쉬움이 남아있다. 다음에 아이들과 또 유럽을 여행할 기회가 올까? 이젠 자기들이 커서 배낭여행으로 가겠지? 그런 날이 온다면, 이번 여행을 발판삼아, 미리 공부도 좀 해서, 현명하고 의미있고 똑부러진 여행을 해주길...!
우리는 다시 빅버스를 탔다. 이번에는 타워브릿지 근처에 가서 점심을 먹고 타워브릿지 주변을 산책하기로 했다. 런던에 와서 한식과 패스트푸드만 먹었던 우리다. 이번에는 현지에 사람들 줄서서 먹는 식당을 가볼까 했지만, 편식쟁이 다인이가 먹을만한 메뉴를 찾기란 쉽지가 않았다. 물론 나도 느글거리는 튀김류(피쉬앤칩스?)로 식사를 하고 싶지 않았고... 구글맵에서 근처 식당들을 찾아보던 우리는 일식당을 가기로 했다. 거기엔 돈까스도 있고, 삼각김밥, 그밖에 다양한 도시락 종류들이 있었다. 근처에서 일하는 현지 직장인들도 많이 찾아가는 프랜차이즈 식당인 것 같았다. 하지만, 우리가 생각했던 것만큼 맛있지는 않았던, 그냥 대충 한끼 때우는 식사가 되어버려렸다. 간단한 식사를 마치고 타워브릿지를 향해 걸어갔다. 나름 런던 도심의 느낌이 물씬 나는 회사원들이 즐비한 중심가를 지나, 타워브릿지가 보이는 템즈강 근처에 도착했다.
(타워브릿지 주변으로 런던 시청사와, 런던에서 가장 높은 건물로 유명한 '더 샤드'가 있다.)
오른쪽 동그란 건물은 런던 시청사, 왼쪽으로 타워브릿지
단 열걸음만 걸어도 뙤약볕에 너무 더웠다. 아이들은 또 시원한 걸 찾기 시작했고, 우리는 스무디와 아이스크림을 사먹기 위해 또 근처 패스트푸드점에 들어갔다. 방금 전 점심 메뉴 선택미스라 배불리 먹지 못했던 다인이는 감자튀김도 추가로 주문했다. 아빠에게 주문을 시키고 자리를 잡기위해 2층으로 올라갔더니 뷰가 대박이다. 템즈강 너머로 타워브릿지와 런던시청사가 훤~히 보이는 뷰였다. 그리고 바로 앞에 위치해 있던 바닥 분수에서는 아이들이 옷을 벗고 깔깔깔 웃으며 물놀이를 하고 있었다. (아이들이 바닥 분수에서 즐겁게 노는 건 세계 공통인가보다.) 우리 아이들도 바닥분수에서 맘껏 놀게 해주고 싶었지만 여벌옷을 가져오지 않았다. 그곳의 다른 아이들은 여벌옷이 없어도 그냥 팬티만 입고 신나게 놀고 있었다. 아이들은 여벌옷을 안챙겨나온 엄마를 원망하며 엉덩이가 들썩였지만, 그럼 다른 아이들처럼 쿨하게 옷벗고 놀라는 말에 선뜻 나서지는 않았다. (feat. 동방예의지국의 부끄럼 많은 아이들) 시원한 패스트푸드점 2층에 앉아 밖을 내다보는 것만으로도 힐링되고 시원하고 즐거웠다. 아.. 그냥 여기와서 점심을 먹을걸 이라는 후회하는 한편, 후식이라도 이곳에 와서 먹을 수 있음에 감사했다.
"여행이란 게 참 인생의 축약판 같지? 때때로 예상치못한 변수가 생기고, 실패의 순간이 오고, 후회의 순간도 오지만, 그 길엔 좌절만 있는 건 아니고, 그저 자연스럽게 물흐르듯 따라가다보면 뜻밖의 즐거움과 낭만도 기다리고 있더라..."
ps. 런던 2일차를 한번에 다 쓰려고 했는데, 또 주저리주저리 길어졌다. 상세히 기억이 나지 않던 일들도 사진들을 보니 스멀스멀 기억이 올라온다. 오후엔 런던을 대표하는 이미지들인 빅벤, 국회의사당에 가서 사진을 찍고, 템즈강 유람선을 타고 가이드를 들으며 런던아이를 보았었지? 저녁엔 코벤트 가든에 가서 길거리 공연을 구경하다가, 뮤지컬 <마틸다>를 봤는데... 아 길다, 이썰은 다음 페이지로 미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