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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머니 Aug 04. 2023

취향존중

월남에서 돌아온 군면제 내남편 - 2

"월남쌈 몇 번 먹었게?" 올해 여름에 우리 집에서만 10번도 넘게 먹었어. 안 질리냐?"

남편은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다. 이게 왜 질리냐고 매일 먹을 수 있다는 내 남편은 김상사도 아니면서 월남에서 돌아온 사람처럼 월남쌈을 좋아한다. ('월남에서 돌아온 군면제 내 남편' 읽고 오세요) 그가 질리든 말든 우리는 이제 질리고 질렸다. 아삭거리는 야채, 질겅거리는 라이스페이퍼, 이국적인 향신료가 질릴 때로 질렸다.


온 가족이 마트 다녀온 날, 우리는 늘 그렇듯 각자가 좋아하는 것만 카트에 담았다. 아이들은 과자, 젤리, 초콜릿을 담았다. 남편은 과자, 음료수, 시리얼 우유등 주로 달게 마시는 걸 담았다. 나는 맥주, 맥주, 맥주를 담았다. 카트를 보고 남편은 한숨을 쉰다. 카트가 넘치게 많이 사도 저녁은 또 시켜 먹어야 하냐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저녁으로 먹을 것이 없다. 과자를 밥그릇에 담고 음료수를 국그릇에 담고 맥주를 반찬 삼아 먹을 수는 없다. 시켜 먹으려고 했는데 한숨 쉬며 남편이 뱉은 말 때문에 그러지도 못한다. 나는 큰소리쳤다. 맛있는 거 먹게 해 주겠노라고.


마트에서 사 온 햄이 있다. 계란과 김밥용 김도 있다. 김밥을 싸기엔 날이 덥다. 냉장고에는 10번째 월남쌈을 하면서 남겨둔 야채가 보인다. 저녁은 뭐 먹을 거냐는 남편에게 월남쌈 한다고 했다. 옅은 미소를 짓는 군면제 내 남편. 그러나 질릴 대로 질려버린 우리는 웃을 수 없다. 그렇다면 밥을 내고 김을 자르자. 김을 4등분으로 자른다. 각자 접시를 놓고 원하는 재료를 올리고 간장에 찍어먹으면 된다. 11살 딸은 이제 고추냉이 맛을 안다. 초밥집에서 먹는 김마끼 같다며 좋아한다.


다 먹었다. 11번째 월남쌈도 맛있게 다 먹은 남편과 고추냉이 간장에 김밥 만들어 먹은 딸과 나, 밥이랑 계란, 햄만 먹은 아들이 큰 접시 가득을 다 비웠다. 너는 너 좋아하는 것 먹고 나는 나 좋아하는 것 먹으며 사는 삶은 멋지게 말하면 취향존중이다. 입맛이 너무 다른 남편과 살면서 취향존중 하고 산다. 바다 같이 너른 마음으로 산보다 깊은 이해심으로 남편을 데리고 산다고 했다. 남편은 바다같이 넓은 등판과 산보다 높은 배가 맞지 않겠냐며 깐죽거린다. 12번째 월남쌈 소스에는 식초과 소금을 가득 넣고 야채를 다 삶아서 내줘야겠다. 햄은 익히지도 자르지도 말고 통째로 줘야겠다. 취향존중 한다며 너 다 먹어라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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