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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머니 Aug 05. 2023

공효진도 아니면서

김치 없이 채소와 고기만 들어간 두루치기를 먹으면 속은 기분이 든다. 아무리 맛있어도 기분이 별로다. 양배추가 김치처럼 들어가도 싫다. 김치가 들어간 두루치기를 사랑하는 나를 유별나다 나무라도 좋다. 그러니까 그건 바뀌지 않는, 바꾸고 싶지 않은 이상형 같은 거다.


남편을 만난 건 34살이었다. 34살까지 연애를 안 해봤을 리도 없으니 나와 남편은 결혼 전 연애 이야기에 쿨한 편이다. 지금 같이 살고 있는 건 너와 나이니 지나간 이성은 문제 삼지 않겠다는 암묵적인 룰같은게 있다. (아님 말고) 두루치기를 이야기하려면 그 사람 이야기를 해야 한다. 동백이가 두루치기 집을 하게 된 것이 종렬이 때문이었지만 결국 그 두루치기 집에서 용식이를 만난 것처럼(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참고) 두루치기는 현재에 있지만 시작은 과거에서 비롯된다. 김치가 들어간 두루치기도 그렇게 과거에서 비롯된다.


20대 후반에 만났던 그는 부유한 집의 외동아들이었다. 소탈하고 유쾌한 그와 헤어지기로 마음먹은 건 사귄 지 몇 달 지났을 때였다. 결혼 생각은 없냐고 물은 내게 정색을 하며 말했다.

 "우리 부모님은 내 결혼에 거는 기대가 커."

그러니까 난 안 된다는 말이었다. 당장 헤어지자고 말하고 싶었지만 좀 자존심이 상했다. 다행이다 난 결혼생각 없다는 거짓말로 그 자리를 모면했지만 두고두고 괘씸했다. '그럴 거면 왜 만나? 뭐 이런 놈이 다 있지?' 생각했지만 부유한 집의 외동아들은 늘 맛있는 걸 사주고 좋은 카페에 데려갔다. 필요한 게 있다면 잘 사주니 이렇게 만나는 것도 나쁘지 않지 싶었다. 그리고 그 부유한 집 외동아들은 두루치기 마니아였다. 김치가 들어간 두루치기가 아니라 고기만 들어간 걸 좋아했다. 양파나 파가 보이면 거르고 안 먹었다. 김치 들어간 건 고기맛이 안 나서 싫다고 했다. 안 부유한 집 둘째 딸이었던 나는 그 비유를 다 맞춰주며 먹었다. 김치 들어간 것만 좋아한단 소리 못 하고 같이 먹었다.


밤낚시 좋아해서 친구들과 낚시 갔다더니 그때마다 클럽 다녔다고 그의 친구가 말해줬다. 지 결혼에 부모님의 기대까지 거는 놈과 끝내고 우는 내게 그의 친구는 말했다.

"그놈 생각보다 좋은 놈 아니야."

몇 달을 부유한 외동아들 입맛 맞춰주며 두루치기를 먹었지만 결론은 헤어짐이었다. 그때부터 다짐했다. 내 취향, 내 가치관을 숨기지 않겠다고.


34살에 만난 남편은 연애하는 동안 취향을 숨겼다. 돼지고기 안 좋아하면서 늘 같이 먹어줬다. 삼겹살 잘하는 집 검색해서 데리고 다녔다. 그리고 11년 결혼생활을 하며 자신의 취향을 밝힌다. 돼지고기 안 좋다, 매운 것 싫다 하지만 나는 이제 내 취향과 내 가치관을 숨길 마음이 없다. 김치를 가득 넣어서 매콤한 두루치기를 했다. 반찬으로 만들었지만 결국은 안주가 되어버렸고 나는 남편을 부른다. 두루치기랑 밥 먹으라고. 안 좋아하는 김치 두루치기를 앞에 두고 남편은 너무 맵다며 먹는다. 애도 있으니 동백이가 종렬이랑 다시 잘 되었으면 했던 사람은 없다. 애도 없는 내가 부유한 집 외동아들이랑 잘 될 일도 없지만, 내 남편이 용식이처럼 한결같이 나를 사랑하지도 않지만 동백이처럼 두루치기를 한다. 반찬을 꼭 안주처럼 만들어 버린다. 술 못 먹는 남편은 조금 거들고 술 잘 먹는 나는 게걸스럽게 먹으며 동백꽃 필 무렵을 다시 볼까나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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