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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머니 Nov 27. 2022

경단녀 엄마,  N잡러 되다

엄마, 서평가 되다 - 5

“서평가님 안녕하세요. 어제 올려주신 책 리뷰를 참 재밌게 봤습니다...”로 시작하는 긴 메시지에는 용기가 없어 댓글을 못 달지만 내가 쓰는 리뷰가 너무 재미있다는 내용이었다. 조금만 읽어봐도 나보다 연배가 높은 분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책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는데 리뷰만 읽고 책을 찾아 읽게 되었다고 했다. 책 보다 리뷰가 더 재밌어서 매일 아침 오늘은 어떤 리뷰가 올라오는지 기다리고 있다는 얼굴도 모르는 사람의 글이 또 연애편지 같았다. 내가 좋다니 내 글이 좋아서 기다린다니 뭐 이런 달콤한 고백이 있단 말인가. 이 정도의 영향력이 있다면, 한 사람에게라도 그런 사람이라면 돈이 되는 생활용품 협찬은 안 받아도 되겠구나 싶었다. 누군가 내가 쓴 리뷰를 기다린다는데 내가 갈 길은 이 길이구나 싶었다.


돈은 다른 길로 벌면 그만이었다. 돈으로도 살 수 없는 마음을 얻었는데 그깟 돈은 없어도 그만이 아닌가 싶었다. 돈을 버는 생산적인 인간이 되어야 인정받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은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인간 역시 못지않게 생산적이라는 걸 깨닫게 되었다. 서평가라고 쓰고 생산적이라고 읽자. 남들은 돈도 안 되는 그 일을 왜 하느냐고 할지 모르지만 돈보다 더한, 돈으로 못 사는 것을 받는다는 걸 그들은 모른다. 무보수 직업 주부이자 경단녀에게 이름이 생긴 것이다. 서평가라는 이름이 생긴 것이다. 서평가라고 불러주는 사람들이 생긴 것이다.                                                                                                                                                                 


결혼 10년 차의 주부의 마음이 설렐 때는 남편이 몰래 숨겨둔 비상금으로 사 온 선물이나 꽃이 아니라 새로 시작한 드라마에 내가 좋아하는 배우가 나올 때이다. 설레는 마음으로 그의 눈과 입을 보고 있으면 마주 보고 서 있는 아리따운 여배우로 빙의가 되어 마음이 설렌다. 물론 남편이 사 온 선물과 꽃을 받았을 때도 설레는 척을 하지만 그건 너도 나도 알듯이 척이다. 꽃과 선물보다는 어디서 돈이 났을까가 더 궁금해져 추궁을 한다. 다음부턴 시들어 버리는 꽃 말고 돈으로 달라는 말은 속으로 삼키지만 남편은 얼굴 표정만 봐도 안다. “내가 다시 꽃을 사 오나 봐라. 절대 안 사 온다. 그리 싫으냐?” 아무리 좋은 척을 해봐야 10년을 같이 산 남편은 알아채고 마는 것이다. 꽃보단 현금이라는 것을.


이토록 현실적으로 변해버린 아줌마에 마음을 흔드는 사람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드라마에 나오는 그 오빠가 아니었다. 내 팬이라고 말하는 그들. 얼굴도 이름도 모르면서 글 한 줄에 마음을 뺏겼다는 사람들이 생기기 시작한 것이다.     

 

연예인도 아닌 내게 팬이 생겼다. 믿기 어렵겠지만 나도 아직 믿기 어렵지만 진짜 생겼다. 커피 쿠폰을 보내주고 책을 보내주고 김치를 보내주고 수박을 보내주는 팬이 생겼다. 광주에 1호 팬을 알게 된 건 내가 팬이 되어 들락거리던 오애란 작가님의 피드에서였다. 작가님의 책을 서평 하며 자연스레 책과 작가님을 해시테그했다. 작가님은 또 내 피드에 찾아와 고맙다는 댓글을 남기셨다. 우리는 티키타카를 주고받으며 친해졌다. 일산에서 부산까지 나를 만나러 와 주신 작가님을 알게 된 것만으로 인스타에 절을 하고 싶은데 나의 1호 팬마저 작가님의 피드에서 만나게 된 것이다. 댓글을 타고 내 계정으로 찾아온 광주의 공두연 님은 처음부터 내게 그랬다. 나는 당신의 1 호팬이라고. 당신의 글을 알아본 사람이라며 1호 팬의 소유권을 주장했다. 그녀는 진심과 정성을 담은 댓글을 꾸준히 달아주었다. 허리디스크로 꼼짝을 못 하겠다는 게시글을 남기자 연락처와 주소를 묻는 그녀. 김장 김치를 조금 보내주고 싶다고 했다. 앞서 말했듯 그녀는 전라도 광주에 살았고 그녀의 시어머니와 함께 담아 보낸 전라도의 김장 김치는 예상했던 그대로였다. 맛있었다. 맛도 좋았지만 마음도 좋아졌다. 아팠던 허리도 조금 나아지는 듯했다. 그리고 그녀는 자신이 1호 팬이라는 걸 꼭 알아달라고 했다.


책 한 권도 내지 않은 나의 글이 좋다는 팬들. 서울에서 내 글을 읽고 내가 좋아졌다는 지호님은 우리 집 주소를 물어왔다. 뭘 보내주려나 했더니 우리 집 근처의 과일 집을 검색하고 주문해서 제일 크고 싱싱한 수박을 집 앞으로 배달시켜 놓은 것이다. 그녀 역시 내게 말했다. 나는 당신의 팬이라고. 내가 뭘 했다고 그녀들은 나의 팬이 되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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