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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머니 Aug 12. 2023

잔치국수 동무

잔치국수라는 걸 돈 주고 사 먹으며 깨달았다. 이 정도 되는 음식이어야 돈 주고 사 먹는다는 걸. 엄마가 국수를 해준 적은 있지만 멸치만 넣고 우린 물에 국수 넣고 나물이 냉장고 있으면 올려주고 아님 말고였다. 그리고 간장 부어주면 먹던 게 우리 집 잔치국수. 고명을 얹어준 적이 없는 엄마는 국수를 안 좋아했다. 아빠도 건축일을 하니 참으로 국수가 자주 나와서 집에서는 안 드시려고 했다. 언니는 그때나 지금이나 국수를 안 좋아한다. 나는 누구를 닮았는지 국수가 너무 좋아서 간장만 넣어줘도 좋았다. 어쩌다 엄마가 계란 하나 지단해서 올려주면 부잣집 외동딸도 부럽지 않았다. 국수 삶아달라고 하면 엄마는

"니 혼자 다 무라. 맛도 없는 거"

하면서 해줬다. 식구들 중에 나 혼자 좋아하는 국수를 엄마가 자주 해줬을 리가 없다. 방학 내내 집에서 뒹굴 거리는 나를 보며 딱해 보이면 삶아주는 게 국수였다.

 

대학생 되고 학생 식당에 잔치국수가 보였다. 내 돈 내고 처음 사 먹어본 잔치 국수에는 시금치와 계란과 당근 같은 고명이 얹혀 있었다. 삼색 고명은 약간 문화충격이었다. 국수에 간장만 넣어 먹어도 좋았는데 그런 고명이 올려진 국수를 먹으니 재벌집 막내딸이 된 기분이었다. 그 후로 자주 국수를 사 먹었다. 혼자 밥 먹을 일이 있을 때는 찾아다니며 국수 사 먹었다. 남편과 연애할 때 입맛 숨기며 돼지고기까지 먹던 남편은 국수 먹자니 표정이 굳었다. 별로 안 좋아한다고 말했다. 같이 먹으러 가고 싶었던 국숫집 리스트는 꾸준히 혼자서 도장 깨기 하는 중이다.


지금은 11살 딸이 이유식을 먹기 시작할 때 국수 삶아 쥐어줬다. 제발 먹어라, 맛있게 먹어라 했다. 누구라도 잘 먹어야 국수 할 이유가 생기니까 그랬다. 귀찮은 잔치국수를 나를 위해 한다는 마음이면 쉽게 포기가 되지만 아이들이 좋아한다면 어쩔 수 없다며 국수를 삶고 다시물을 내고 고명을 준비해야 한다. 이유식 이후부터 꾸준히 국수를 좋아하는 딸과 계란과 어묵만 있다면 밥이든 국수든 잘 먹는 아들 덕에 잔치국수했다. 방학 3주 차에 접어든 아이들은 집에서 뒹굴거리며 웃고 울고 싸우고 TV 보고 패드 본다.


방학 내내 소리치고 짜증 냈던 시간들이 미안해 국수 해주며 속으로 사과했다.

'동무들아, 미안해. 너희 아니었음 나 혼자 국수도 못 만들어 먹었을 텐데 말이야. 그래도 방학이 1년에 3번만 있으니 얼마나 다행인지 몰라. 겨울방학 때 또 해 먹자. 그때는 조금 덜 소리치고 짜증을 참아볼게'

국수동무들은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이 국수를 한 그릇씩 다 비우고 각자의 영상으로 빠져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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