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키우면서 가장 힘들 때는 언제일까?
아프면 힘들고 안 먹어도 힘들다. 안 자도 힘들고 말을 안 들어도 힘들다. 그런데 아침에 등원하기 싫다고 엉엉 우는 아이를 보는 건 정말 힘들다. 안 가겠다고 떼를 쓰며 드러눕거나, 신발을 신으며 눈물을 뚝뚝 흘리는 모습을 보면 유치원으로 달려가고 싶다. 아이가 너무 가기 싫어하는데 이유가 있느냐, 우리 아이만 유치원에서 힘든 일을 당하고 있느냐며 따져 묻고 싶다. 그래도 출근은 해야 하니 안아주고 업어주며 겨우 유치원 버스에 태운다. 눈물범벅이 되어 창가에 앉은 아이를 보는 나도 눈물이 난다. 하트를 만들고 손을 백번쯤 흔들어도 눈물을 멈추지 않는 아이를 보며 잠깐 고민한다.
‘오늘만 보내지 말까? 얼마나 유치원이 힘들면 저렇게 우는 걸까?’
그러나 그 고민도 오늘 아이를 봐줄 친정엄마의 스케쥴에 따라 가능하다. 아이가 열이 나거나 아프다면 엄마에게 부탁한다. 있던 약속도 취소하고 와서 아픈 아이를 봐주고 돌아가는 엄마지만 유치원 가기 싫어 우는 아이를 봐주러 와달라고 말하기는 미안하다. 70넘은 엄마가 40넘은 자식의 자식이 운다고 돌보는 일이 당연한 것은 아니니까.
버스가 출발하자 우는 아이도 눈에서 멀어진다. 손을 놓고 버스를 타던 그 애절한 모습이 눈에 선하다. 차량 선생님께 유치원 가기 싫어서 많이 울었다 담임선생님께 잘 달래달라는 부탁의 말도 전했다. 그래도 마음이 편치 않아 유치원으로 전화를 해볼까하다 말았다. 극성스럽다며 아이의 상태 확인, 기분 확인을 위해 아침마다 유치원으로 전화하는 엄마에게 혀를 찼던 사람이 나였으니 말이다. 엄마가 믿고 맡겨야 아이도 빨리 적응한다 소리를 하던 나도 내 아이가 눈에 안 보이는 곳에서 울고 있을 생각을 하니 극성스러운 엄마 중 한 명이었다. 집을 대충 치우고 유치원으로 출근을 했다. 유난히 즐거워 보이는 아이를 발견.
“오늘 @@이 기분이 좋구나.”
“그럼요. 기분 좋아요. 아침에는 @@이 엄청 많이 울어서 버스도 겨우 타고 왔어요. @@이 어머니도 전화를 몇 번이나 하셨어요. 계속 울면 데리러 오신다고요.”
선생님이 대신 하시는 대답은 아무래도 @@이 들으라고 하는 말 같았다. 선생님은 그렇게 계속 말을 이어갔다.
“그런데 우리 @@이는 씩씩해서 내일부터는 울지 않고 오기로 했어요. 유치원에 오면 친구들도 있고, 선생님도 있고, 교구도 있으니까요. 엄마랑 헤어지는 게 슬프지만 잠깐은 참아보기로 했어요. 그치, @@아?”
“네에에.”
큰 목소리로 대답하는 등원 우울 증후군 친구. 어쩌면 우리 아이도 지금은 이렇게 신나 있을지 모른다 생각을 하며 내일은 울지 않기 약속을 한 친구 먼저 게임을 시켜주고 잘한다, 잘한다는 외쳐준다. 딱 지금 기분처럼 내일 아침에 등원하기를 기원하면서.
“오늘 유치원에서 별일 없었어?”
“응.”
“선생님이 많이 운다고 혼 안 냈어?”
“응.”
“친구가 때리거나 같이 안 논다고 그러지 않았어?”
“응.”
“그럼 너 왜 아침에 유치원 가기 싫다고 울었어?”
“몰라.”
함박웃음을 지으며 하원 하는 아이에게 내일은 울지 않기 약속을 받아내고서야 마음이 좀 편해진다. 그러나 내일 아침에도 아이는 울지 모른다. 유치원 가기 싫다, 엄마랑 있고 싶다며 눈물을 뚝뚝 흘릴 수도 있다. 그러면 나는 또 내 눈에 안 보이는 동안에 혹시나 힘들고 어려운 일을 당하나 싶어 걱정할 지도 모른다. 세상은 기쁘고 즐거운 일만 있는 곳이 아니다. 유치원에서 규칙을 배우고 친구와 갈등이 생기면 조율하는 법을 배워야 세상을 살아갈 수 있다. 헤어짐은 슬프지만 엄마는 언제든 다시 만날 수 있는 것도 알게 된다. 내 품에서는 작고 어린 아이지만 교실에서는 **반의 한 명으로 자신의 몫을 충분히 해낼 것이다. 그러니 믿어봐야지 한다.
그러나 등원 우울 증후군을 한 방에 고쳐줄 명약을 알고 있다면 부디 내게도 귀띔 좀 해주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