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잠을 피하는 방법
적응이라는 흔한 말이 들리기 시작하는 4월이었다. 아직도 아침에 울면서 등원하는 친구는 한 반에 한 명쯤 있었지만 대부분은 유치원에서의 시간이 지나면 엄마를 반드시 만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은 눈치였다. 그러니 헤어짐도 조금 덜 슬플 수 있고, 그리움도 참아냈다. 시간이 지나야 한다는 어른들 말씀대로 그들도 시간 앞에서는 괜찮아지고 익숙해져갔다.
“선생님은 영어 사람이에요?”
“영어나라에서 왔어요?”
그 동안 물어보고 싶었던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이렇게 물어오는 친구가 있다.
“우리 엄마 영어 되게 잘해요.”
“나는 미국에 가봤어요.”
가족의 영어 구사능력과 자신의 해외 방문 사실을 알려주려는 친구도 4월쯤에는 만날 수 있다. 이제는 유치원도, 영어 선생님도 조금 편해졌으니 이런 저런 질문을 하는 친구들에게 한국 사람이고 한국 산다고 말해준다. 엄마 영어 잘 하시니까 집에서 영어 책 같이 읽고 오라 말해주고, 지금은 환율이 너무 높아서 미국 가기 부담스러운데 미리 다녀와서 참 좋았겠다며 부러워한다.
그러나 일에는 늘 명과 암이 있다. 유치원이 익숙해지고 영어 선생님이 편해지자 긴장이 풀린 이들이 있다. 그리고 그런 친구들을 공격하기 시작하는 식후졸음도 더 자주 보게 된다. 3월에는 우느라 못 자던 친구도 4월에는 편하게 졸려했다. 점심 먹고 시작하는 특활수업이라 5세 반에서는 쉽게 고개를 내어준다. 꾸벅꾸벅 아래위로 고개를 끄덕이며 잠에 취해 있다. 깨우기 위해 노래도 부르고 춤도 춘다. 앉았다, 일어났다 여러 번 반복한다. 대부분 잠이 깨지만 유독 한 친구가 아직도 비몽사몽이다. 어떻게 해야 하나. 나는 담임선생님께 건의했다.
“선생님 이 친구 너무 졸려하는데 그냥 재울까요?”
“아, **이는 어머님이 낮잠 재우지 말라고 하셨어요. 밤에 너무 안 잔다고요. 원에서 낮잠 자고 가면 밤에 너무 안 잔대요. 그래서 아침에도 늦잠자고 일어나기 힘들어 한다고 되도록 재우지 말라고 하셔서요.”
기시감이 든다. 어디선가 이 모습을 본 듯하다. 이제 좀 자라고, 이렇게 안 자면 내일 아침에 늦게 일어나서 유치원 가기 싫다고 할 거 아니냐며 다그치는 모습. 그러나 아랑곳하지 않고 말똥말똥한 눈으로 책 한 권 더 읽어 달라며 안 잘 방법을 찾는 모습. 우리 집의 어젯밤 모습이었다. 사실 나는 **엄마와는 달리 아이가 졸려하면 꼭 재워달라고 부탁을 했었다. 5세는 낮잠 자고 싶으면 자야하는 거 아니겠냐며 유치원에 당부했었다. 어느 엄마의 선택이 맞는 걸까 고민하는데 담임선생님이 말해주었다.
“그런데 **이 금방 깨요. 저렇게 졸다가도 친구들이 교구 꺼내면 번쩍 깨더라고요. 이제 낮에는 좀 덜 자야해요. 밤에 많이 자야 크죠. 낮잠이 필요한 친구도 있지만 습관이기도 하거든요.”
‘헉, 나 들으라고 하는 소리인가.’
담임선생님의 과학적이고 교육적인 설명은 내 쓸데없는 잔소리가 쏙 들어가게 만들었다. 엄마인 내가 미혼인 선생님보다는 더 노련하고 많이 안다고 생각했다. 부끄러웠다. 나는 그저 아이가 힘들지 않은 게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했지만 큰 그림을 보는 선생님의 말에 동의하지 않을 수 없다. 졸음에 공격당해 고개를 끄덕이는 친구를 앞으로 불러 어깨도 꼬옥꼬옥 만져주고 허리춤을 간질간질 해주었다. 이건 도저히 못 참겠다는 듯 깔깔거리고 웃더니 어젯밤 우리 아이의 눈처럼 말똥말똥해졌다. 내가 언제 졸았냐는 듯이 금방 깨서 누구보다 열심히 수업을 들었다.
수업 마치고 집으로 가는 길에 유치원에 전화를 했다.
“선생님, 우리 승인이 이제 낮잠 재우지 말아주세요. 졸려 해도 좀 깨워서 친구들이랑 놀 수 있게 해주세요. 부탁드립니다.”“네, 어머니. 그런데 승인이 요즘은 낮잠 안 자요.”
“네? 언제부터 안 잤나요?”
“3월 초에만 몇 번 잤어요. 4월에는 한 번도 안 잤습니다. 호호호.”
그럼 우리 아이는 도대체 왜 밤에 잠을 자지 않았던 걸까? 낮잠 때문에 안자는 줄 알았는데, 낮잠도 안 잔 우리 아이는 왜 잠들지 못했던 걸까? 머리만 대면 잠들고 싶은 엄마는 그것이 궁금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