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었다고. 늦었어. 빨리 와.”
내가 아무리 재촉해도 아이는 세월아 네월아. 신발 하나 신는데도 발을 넣었다 다시 빼서 양말까지 끌어 올린다. 아침부터 짜증내면 하루 종일 기분 나쁘니 서로 웃자고 말하던 나는 결국 화를 참지 못했다.
“유승인, 너 진짜 이럴 거야? 얼른 신으라고. 버스 간다니까.”
눈물이 터진 아이를 안아줄 틈도 없었다. 버스 떠나고 손 흔들어 봐야 소용이 없으니까. 거칠게 손을 붙잡고 버스 타는 곳으로 갔다. 다행히 아직 도착하지 않은 유치원 버스를 기다리는 친구들은 엄마와 작별 인사를 하고 있었다. 뽀뽀하고 안아주는 친구들 사이에서 훌쩍이는 아이를 보니 마음이 안 좋다. 지금이라도 안아주고 싶지만 금방 화내고 바로 안아 주는 건 어른으로써 체면이 안 선다. 그만 울라고 네가 잘못했으니 혼이 난거라며 내일부터는 꾸물거리지 말란 잔소리까지 더 했다. 버스에 올라 탄 친구들이 엄마를 향해 손을 흔들고 뽀뽀를 날려도 고개만 숙이고 있는 우리 아이가 너무 작아 보인다.
‘화내지 말 걸. 아침부터 애 기 죽이고 참 잘 했다.’
나도 그러고 싶지 않았다. 그래도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 걸. 마음이란 내 것이지만 내 마음대로 되지 않을 때가 더 많다. 떠나는 버스를 한참 바라보며 손을 흔들었다. 엄마한테는 혼났지만 유치원에서는 혼나지 말았으면 하는 기도를 흔들었다.
수업을 하러 들어간 6세 반에 헬멧 착용자 발견. 너무나 당연한 듯 앉아 있어서 모자를 쓴 줄 알았다.
“**이 헬멧 왜 쓰고 있어? 수업할 건데 벗고 할까?”
“아니오. 쓰고 할 거에요.”
단호박이었다.
“그래도 쓰고 있으면 불편 할 텐데 잠깐 벗고 다시 쓰는 건 어때?”
“안 돼요!”
중재자 담임선생님이 오셨다.
“**아. 혹시 게임해야 되는데 헬멧 무거워서 못 할까봐 영어 선생님이 걱정하시는 거야. 잠깐 벗어놓자. 영어 끝나고 바로 다시 씌워줄게.”
고개를 세차게 가로 젓는 헬멧 착용자. 내 아이였다면 벌써 화를 내며 헬멧을 벗으라고 했겠지만 작고 소중한 고객님에게 그럴 수는 없었다. 이유나 들어보고 싶어 왜 헬멧을 쓰고 있느냐 물었다.
“엄마랑 아침에 자전거 타고 왔어요. 엄마가 데리러 올 때도 자전거 타고 갈 거라고 했어요. 그래서 이거 꼭 쓰고 있어야 해요.”
그 유치원은 꾀 높은 위치에 있었는데 자전거 뒤에 아이를 태우고 등원이라니 놀라웠다. 그런 내 마음을 안다는 듯이 담임선생님이 정보를 흘렸다.
“**이가 유치원 오기 싫다 그래서 어머니가 자전거 태워 오셨어요. 오늘은 하원도 엄마 자전거 타고 할 거라고 간식 먹고부터 헬멧을 쓰고 있어요.”
오늘 두 엄마의 전혀 다른 행동이 비교되었다. 유치원 가기 싫어서 신발을 늦게 신는 걸 알면서도 버스 놓친다고 불같이 화를 내는 엄마와 유치원 가기 싫은 마음을 달래기 위해 자전거를 선택한 엄마. 전자의 자식을 울면서 등원했고, 후자의 자식은 콧구멍에 바람을 가득 넣으며 까르르 거리며 등원했을 것이다. 잊고 있던 아침의 불편한 마음이 또 생각났다.
유치원 정문을 나서는데 내 앞을 질러 내려가는 자전거 탄 모자. 그 자전거 내 마음을 움직였다. 자전거에 아이를 태워서 등원을 못 시키더라도 시원하게 버스 놓치는 걸 택하라고. 좀 늦고 꾸물거려서 버스가 떠난다면 같이 걸어서 등원하라고 부추겼다. 퇴근하고 하원할 아이를 기다렸다. 차량에서 내리는 아이는 아침에 있었던 일은 까맣게 잊고 세상에서 제일 반가운 얼굴로 달려온다. 그런 아이를 보니 마음이 몽글몽글해져서 스스로에게 또 다짐했다.
‘내일부터는 늦었다고 보채지 말자. 유치원 버스 놓치면 같이 손잡고 걸어가지.’
다음 날 아침에 나는 아이에게 외쳤다.
“버스 간다. 서둘러.”
시원하게 버스 놓치는 것도 좋겠지만 늦지 않게 버스 타고 가면 더 좋다. 엄마는 너 보내고 청소하고 출근해야 하니까 좀 봐달라며 애원한다.
“버스 놓치겠다. 얼른 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