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니까 날씨도 좋았다. 유치원 마당에도 꽃이 활짝 피기 시작했다. 바깥 놀이하고 돌아오는 친구들 웃음에도 봄이 묻어 있었다. 출근하는 나와 마주친 고객님들은 교실이 아닌 곳에서 만난 것이 그저 반가워 묻기 바빴다.
“우와, 선생님 뭐 타고 왔어요?”
“선생님 언제 왔어요? 우리 바깥 놀이 하는 거 봤어요?”
“지금 벚꽃이 엄청 많이 날아 다녀요.”
교통수단과 출근시간까지 확인하는 친구도 있고 봄바람에 날리는 벚꽃이 날아다닌다고 말해주는 시인도 있다. 그렇게 같이 현관에서 신발을 벗고 안으로 들어가려는데 하얀 운동화에 묻은 흙을 손으로 터는 친구 발견.
“선생님, 이거 봐요. 예쁘죠? 우리 엄마가 새로 사줬어요. 엄마가 깨끗하게 신으라고 했어요.”
“어. 진짜 예쁘다. 그런데 흙은 손으로 털지 말고 휴지로 털어. 손이 더러워지니까.”
눈이 부시게 하얀 운동화를 들어 보이는 친구에게 엄지를 들어 보이며 말했다. 고개를 끄덕이는 친구 옆에서 우리를 지켜보는 친구 발견. 친구의 손에는 흙이 가득 묻어서 원래 색을 알아보기도 힘든 운동화가 있었다. 내가 어떤 눈빛을 보였던 걸까. 흙이 가득 묻은 운동화를 들고 있던 친구가 갑자기 말했다.
“나는 엄마가 없어요.”
아, 그랬구나. 그래서 저 하얀 운동화 친구와 나를 보고 있었던 건가 싶다. 배려심 없고 눈치 없는 선생님이라 미안했다. 혹시나 내가 잘못 말한 것은 없나 다시 한 번 생각해보며 운동화를 신발장에 넣고 올라가는 친구의 뒷모습을 보았다.
여러 형태의 가정이 있다. 한부모 가정도 있고 재혼 가정, 조손 가정도 있다. 가정의 형태가 다르다고 해서 사랑의 크기가 모자라지는 않다. 부모가 다 있어도 사랑에 인색하기도 하다. 그러나 편견에 사로잡힌 나는 엄마가 없다는 말에 마음이 불편했다. 친구들이 제일 자주 하는 자랑이 엄마 자랑인 유치원 생활이 힘들지는 않을까 걱정 되었다. 그 친구의 사정을 다 알지는 못하니 너무 깊게 생각하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수업시간 내내 눈이 갔다. 게임도 제일 먼저 시켜주었다. 수업이 끝나고 담임선생님께 조용히 물었다.
“선생님, @@가 아까 현관에서 그러던데요... 엄마가 없다고. 혹시 제가 알고 있어야 할 일이나 조심해야 하는 행동이 있을까요?”
“네? @@이 엄마요? 오늘 아침에도 원에 같이 오셨는데요.”
“그럼 왜 저한테...”
나는 당황해서 말을 다 맺지도 못했다. 담임선생님은 그 친구를 큰 목소리로 불렀다.
“@@아, 영어 선생님께 왜 엄마가 없다고 말했어? 너 오늘도 엄마랑 같이 유치원에 왔잖아.”
친구는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나와 담임선생님을 번갈아 보았다. 나는 상황 설명을 해주었다.
“아까 선생님이 여자 친구 운동화 예쁘다고 하니까 네가 와서 그렇게 말했잖아.”
“아~~~ 몰라요.”
쿨하게 가버리는 친구. 마음 졸였던 나는 담임선생님께 현관에서 있었던 일을 설명했다. 다 듣고 나서 선생님은 웃으며 진실을 밝혀주었다.
“그거 아마도 운동화 때문에 그랬을 거에요. @@이가 축구를 엄청 좋아해서 운동화가 엉망이 되거든요. 어머니가 그러시는데 자주 찢어지기도 해서 한 달에 하나씩 운동화를 사야 할 정도래요. 그래서 운동화 험하게 신지 말라고 많이 혼내시나 봐요. 선생님한테도 혼날까봐 그랬을 거에요. 아니면 운동화 닦으라고 할까 봐요. 호호호 아무튼 우리 @@이는 축구에 진짜 진심이에요.”
아, 축구소년이여!
운동화와 엄마를 맞바꾸다니. 퇴근하는데 신발장에 흙이 가득 묻은 운동화가 보인다. 흙에 가려졌지만 분명 신상품이었다. 깨끗하게 신으라고 잔소리하면서도 미래 축구 선수를 위해 발이 편하고 기능이 좋은 운동화를 검색해 엄마가 사줬을 것이다. 마음이 가벼워진 나는 공 대신 땅을 뻥뻥 차며 집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