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아 영어 전문 선생님이라고 하면 많이 듣는 질문이 있다.
“엄마표 영어는 어떻게 해야 하나요?”
“엄마가 가르치기 쉬운 영어 책은 뭔가요?”
“엄마랑 영어 공부는 몇 살 때 시작해야 할까요?”
엄마표 영어를 안 하고 있다. 내 자식을 가르치는 건 남의 자식 가르치기의 10배 정도의 마음 수양이 필요하기 때문에 어떤 책도 쉽지 않다. 엄마랑 같이 공부하기 싫다고 우리 아이가 말했던 때는 6살이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쉽게 대답을 할 수가 없다. 우는 친구의 눈물을 멈추게 하고, 유치원 가기 싫다던 친구도 오늘 영어하는 날이라면 벌떡 일어나 등원시킬 정도(잘난 척 맞습니다)의 전문성을 가지고 있지만 내 핏줄에게는 통하지 않았다.
사실은 나도 엄마표 영어를 하고 싶었다. 13년을 해왔던 일이니 내 아이 한 명 가르치는 건 마냥 쉬울 줄 알고 겁 없이 시작하긴 했다. 수업에 쓰던 갖가지 교구와 음원을 준비했지만 유치생이던 큰 아이는 고개를 저었다. 공부는 진짜 선생님이랑 하겠다며 내 티칭 스타일을 거부했다. 아이를 구슬려도 소용없었다. 엄마가 얼마나 실력자이자 유겅험자인지 몰라서 그런 듯 했다. 더 큰 교구를 준비하고 새로운 음원도 찾아서 수업을 했지만 아이의 반응은 같았다.
“엄마 그만해. 엄마는 영어 하지 마.”
내 발음이 별로인가? 수업이 재미가 없나? 온갖 생각이 다 들어서 수업을 복기 해봐도 문제는 없었다. 1대1 수업이라 그런가 싶어 다른 친구와 함께 해보면 어떠냐고 물었다. 또래아이를 키우는 동네 엄마들은 실제로 그룹 과외를 좀 해주면 어떠냐고 묻고 있던 때였다. 그러나 아이는 고개를 저었다.
“친구들한테도 영어 하지 마. 엄마랑 집에서 공부 안 할 거야.”
분명 유치원에서는 영어 시간을 즐거워한다고 했는데 집에서는 영어책도 한 번 펼치기 싫어했다. 엄마 이외의 역할은 꿈도 꾸지 말라더니 초등학교 3학년부터 시작한 영어 시간에 알파벳을 모르는 몇 안 되는 아이로 자랐다. 영어 공부 안 해서(실은 모든 공부입니다.) 아이와 싸운 이야기는 책 한 권을 쓸 만큼 넘치지만 결론만 말하면 지금 6학년이 된 아이의 영어 실력은 딱 또래에 걸맞다. 스파르타 학원을 다닌 것도 아니고, 미국 유학을 다녀온 것도 아니지만 내가 보기에 아이의 공부가 뒤처지지 않았다. 아마도 그 이유는 유치원 때 엄마 표 영어를 하지 않아서라고 생각한다.
3학년부터 지금까지 아이와 같이 영어 공부를 하지만 엄연히 엄마표 영어가 아니다. 내가 원해서 한 것도 아니고 내가 주체가 아니라 아이가 조바심에 영어 공부하자고 매달렸고 본인이 책을 고르고 시간을 정했다. 학교 수업 시간에 자기가 제일 영어를 못한다고 생각한 아이는 불안해했다. 영어 학원 다니라니 자신은 학원과 맞지 않다고(학원 다니면 게임할 시간이 줄어서가 진실입니다) 나를 붙잡았다. 우리는 몇 번 크게 싸우기도 했지만 현재까지 같이 공부를 하고 있다. 사제지간에 지켜야 할 예의를 서로가 잘 지키지 않는 것이 싸움의 주원인이지만 아이표 영어는 어찌저찌 잘 이어져 오고 있다. 지금 이렇게 같이 공부할 수 있는 것은 유치원 시절에 엄마표 영어를 포기했기 때문이다. 엄마표 영어 포기 후 아이는 그림 그리고 피아노 치고 노래 부르며 잘 자랐다. 가끔 영어 공부 좀 해보자고 설득해도 아이는 요지부동이었다. 그러면 나는 또 포기했다. 언젠가 자기 마음이 동하는 날이 오기를 바라며 기다렸더니 3학년 되어서 스스로 공부해야겠다며 나를 찾아왔다. 그리고 지금 아이는 유치원 시절부터 학원 뺑뺑이를 돌던 친구들과 비교해도 크게 못 미치거나 모자라는 부분이 없다.
영어유치원도 못 보내고 엄마표 영어를 못 해줘서 불안하다, 미안하다, 걱정된다는 엄마들에게 외친다. 유치원에서 배우는 영어는 30분씩 주 2회나 3회 정도면 충분하다. 엄마는 엄마만 잘하면 된다. 유치원 때부터 준비하지 않으면 의대나 SKY에 못 들어가는 현실을 몰라서 저런다고, 자기 아이가 공부를 못하니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란 소리나 한다고 생각하지 마시길. 13년 유치원 생활해보니 인생 우등생이 되기 위해서 제대로 배워야 할 것들은 모두 여기에 있다. 기쁜 일은 서로 축하해주고, 남의 것은 빼앗지 않고, 댓가를 바라지 않고 도움을 주고, 나보다 약한 사람은 배려하는 친구가 되는 법은 모두 유치원에서 배운다. 의대나 SKY에서도 알려주지 않는다. 그러니 엄마는 등원하는 아이가 즐거운 유치원 생활을 하도록 도와야 한다. 하원하고 돌아온 아이를 힘껏 안아주고 한껏 사랑해주어야 한다. 엄마표 영어 말고 엄마만 잘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고 어려운 일이다. 이것만 잘하면 엄마표 영어 따위 못해줘도 그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