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선생님의 기본 자질은 영어를 잘 하는 것이다. 문장을 완벽하게 구사하고 원어민 뺨치는 발음을 할 줄 안다면 자질 있다며 대접받는다. 그러나 유치원에서는 그런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 수업을 얼마나 재미있게 진행할 수 있느냐로 능력을 인정받는다. 그리고 평가는 실시간으로 받을 수 있다. 평가자들은 아직 한글도 모르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문자 노출도 적당히 해야 하고 중간 중간 노래와 춤도 준비한다. 게임을 준비하지 못한다면 점심식사 후 식곤증에 시달리던 평가자들이 하나둘씩 깊은 잠에 빠진다. 그러니 유치원 영어 선생님이라면 재미와 즐거움을 반드시 착장해야 한다. 그렇게 준비하는 게임 중에는 승부를 내야하는 것도 있다. 이기고 지는 게임이 아닌 걸 준비하고 싶지만 쉽지가 않다. 다 이겼다, 다 잘했다 말하며 얼버무리는 것도 5세까지나 가능하다. 6세만 되어도 벌써 게임은 승부가 나야 재미있다고 한다. 무엇보다 이제는 규칙 안에서 이기고 지는 연습도 필요하다. 스스로 승부욕을 조절하는 법도 배워야 할 친구들이니 재미와 교육이라는 두 마리 토끼 잡는 게 바로 영어 시간의 게임이다.
오늘 6세 반의 게임은 달리기.
우리가 아는 진짜 달리기는 아니다. 동그란 방석에 앉아 다리를 쭉 뻗고 두 손으로 방석을 잡고 엉덩이로 달려오는 게임이다. 결승점에서 도착하면 정답을 큰 소리로 대먼저 대답하는 친구가 이긴다. 규칙을 설명해주고 시작했다. 엉덩이가 어찌나 가벼운지 간발의 차이로 이기고 지는 친구가 생긴다. 졌다고 우는 여자 친구도 있지만 담임선생님이 잘 설명해주셨다.
“**아, 져도 괜찮아. 이기려고 하는 게 아니라 영어 재미있게 배우려고 하는 거야. 네가 이렇게 울면 게임 못한 친구들한테 방해 되니까 그만하자. 다음에 이기면 되잖아. 알았지?”
훌쩍 거리던 친구는 다음을 기약하며 눈물을 참았다. 다들 이기고 싶어 했다. 그리고 그 마음은 반칙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두 손 아니라 한 손으로 잡고 오는 친구, 옆에 친구를 손으로 막는 친구도 있었다. 국제 심판 못지않은 매의 눈으로 반칙한 친구는 먼저 와도 우승을 선언하지 않았다. 반칙 없이 먼저 도착했지만 정답을 말하지 못해도 우승은 할 수 없었다. 친구들은 규칙을 이해하고 지키며 엉덩이에 힘을 실었다. 방석 타고 집까지 가는 것도 가능해 보이는 선수 자질이 보이는 친구도 있었다. 다들 즐겁게 게임에 빠져 있을 때, 랜덤으로 여자 친구 한 명과 남자친구 한명을 참가자로 불렀다. 이름이 불린 두 사람은 동시에 서로를 바라보며 눈부시게 웃었다. 그러고는 남자친구가 내게 말했다.
“선생님, @@이가 저번에 우리 집에 왔었어요. 우리 같이 놀았어요.”
그러니까 둘은 서로 집까지 방문하고 부모님들끼리 인사도 나눈 사이였다. 그래서인지 승부를 가르는 게임을 하러 나오면서도 손을 꼭 잡고 나왔다. 방석에 앉을 때도 어떤 색을 원하는지 서로 물으며 양보했다. 게임을 재미있게 진행하고 싶었던 나는 둘의 배려에 심술이 났다. 가장 어려운 문제를 보여주며 정답을 묻기로 했다. 남자친구는 이미 정답을 아는 눈치였고 여자 친구는 지금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겠다는 의지가 보였다. 드디어 게임이 시작되고 방석에 앉은 남자친구는 빠르게 치고 나왔다.
이 게임의 승자는 정해져 있었다. 반칙만 하지 않는다면 체력까지 겸비한 남자친구가 이길 것이다. 결승점에 거의 다 도착한 남자친구는 손만 뻗으면 정답을 외칠 수 있었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뒤에 오던 여자 친구가 자기 옆으로 오자 귓속말로 정답을 말해주기까지. 6세 사랑꾼은 결국 게임에서 졌지만 자리로 들어갈 때는 손을 잡고 들어갔다.
재미도 승부도 사랑 앞에서는 소용없었다. 사랑의 힘은 이토록 대단하다. 승자가 패자가 되도 그저 행복한 사랑이어라. 그들의 사랑에 방해꾼처럼 어려운 문제를 찾던 나는 사랑의 힘에 녹아버리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