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어컨을 키지 않고는 몇 분도 앉아 있기 힘든 여름이었다. 교실마다 에어컨이 켜져 있었도 땀을 뻘뻘 흘리는 아이도 있지만 너무 춥다며 입술이 파래지는 친구도 있다. 담임선생님은 요리조리 자리를 바꿔 앉혀주며 땀띠 안 나게, 냉방병 안 걸리게 하려 애를 썼다. 지하철 타면 누구는 덥다고 전화하고 누구는 춥다고 전화한다더니 그 춥고 덥고 민원이 내 수업 시간에도 일어났다.
“너무 더워요.”
“그래? 그 자리가 제일 시원 할 텐데. 가서 물 좀 마시고 올래?”
“너무 추워요.”
“그치? 혹시 긴팔 옷 가져왔으면 입을래?”
딸도 키우고 아들도 키우는 나는 집에서도 그런 일이 자주 목격한다. 조금만 움직여도 땀을 뻘뻘 흘리며 ‘더워. 더워’를 외치는 아들 옆으로 어깨에 담요를 두른 딸이 지나가며 춥다며 짜증을 낸다. 활동량이 많은 남자친구가 더위를 많이 타겠지. 활동량이 상대적으로 적은 여자친구가 덜 타겠지 추측만 할 뿐이다.
햇빛이 무서울 정도로 강한 여름의 한 낮. 유치원 마당에서는 물총놀이가 한참이었다. 꺄악 끄악 히약 거리는 공룡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렸다. 얼마나 신이 났는지 바깥 놀이할 때 문을 열고 들어가면 달려와서 안아주던 친구들 눈에 내가 안 보이는 듯 했다. 투명인간이 아닌 나는 여기 좀 보라며 소리쳤다.
“와, 물총놀이 하는구나. 너무 시원하겠다.”
순간 그들과 눈이 마주치고 말았다. 그냥 조용히 지나갈 것이지 뭐 하러 날 좀 보소를 했던 걸까. 아, 나는 후회하노라.
“영어 선생님이다. 공격!”
어느 목소리 큰 공격수가 소리쳤고 수비할 장비도 없는 내게 물이 날아오기 시작했다. 파랗고 노란 물총이 모두 나를 공격했다. 담임선생님은 물에 젖은 생쥐 꼴로 이미 전사한 상태면서 외쳤다.
“얘들아, 그럼 안 돼. 차라리 선생님한테 해. 선생님은 갈아 입을 옷이라도 있지. 영어 선생님은 바로 수업하셔야 돼.”
나를 살리기 위해 자신을 희생하려는 담임선생님의 젖은 옷에는 관심 없다는 듯 친구들은 바싹 마른 내 옷에 물총을 쏘아댔다. 살려달라는 말은 이미 그들 귀에 들리지 않는 듯 했다. 교실에서도 덥고 땀을 뻘뻘 흘리던 남자친구는 여전히 덥다며 물총을 쏘아댔다. 너무 춥다며 긴팔 옷을 찾던 여자친구는 제일 큰 물총을 들고 모두를 공격하며 땀인지 물이지 모를 만큼 온 몸이 젖어 있었다. 나는 가방을 내려놓고 담임선생님 옆으로 갔다. 두 팔을 벌리고 고개를 뒤로 젖히며 말했다. 모든 걸 체념 한 채로.
“선생님 10까지만 셀 거야. 그때까지만 공격가능. 시작한다. 10, 9, 8, 7......”
“우와아아아앙. 공격해.”
“공격이다.”
“영어 선생님 다 젖겠다.”
적군의 항복을 받아낸 공격수 중 인류애를 가진 친구는 나를 걱정하며 물총을 일부러 바닥에 쏘기도 했다. 빠르게 10까지 다 세고 나서야 젖은 몸을 끌고 유치원 안으로 피신했다.
실내는 밖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시원했다. 사실 물총 놀이를 한다고 해서 30도가 넘는 바깥 온도가 내려가지는 않지만 친구들은 이보다 더 즐거울 수 없다는 표정으로 여름을 즐기고 있었다. 조금만 더우면 에어컨을 켜주고 살짝 추우면 온도부터 올려주는 엄마였던 나는 반성했다. 여자와 남자로 나눌 것이 아니라 여름은 더위를 즐기고 겨울은 추위를 즐기며 계절을 느껴야 했다. 내가 수업을 하러 가서는 배우고 오는 게 더 많다. 그래서 오늘 나의 스승인 그들에게 경의를 표하기 위해 현관문 앞에 섰다. 공손하게 양 손을 볼 옆에 갖다 대며 흔들었다. 엉덩이까지 흔들며 온 몸으로 도발했다.
‘나 여기 있지롱. 이제 공격 못 하겠지롱.’
내 몸짓을 본 친구가 소리쳤다.
“저기 안에 영어 선생님이 우리 놀린다.”
“얘들아, 저기로 쏴. 공격 해.”
유리창밖으로 시원하게 물이 쏟아졌다. 기분까지 시원해진 나는 더 힘차게 손을 흔들어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