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먹는 사과는 금처럼 몸에 좋다고 한다. 점심에 먹으면 그저 그렇고 저녁에 먹으면 백설 공주가 아니어도 독처럼 몸에 나쁘다고 한다. 적당한 시간에 먹는 사과라야 건강유지에 도움이 된다니 먹는 사과도 그런데 진심이 담긴 사과라고 다를까? 다른 사람에게 잘못했을 때 하는 그 사과에도 때가 있다. 유치원에 있으면 사과요청을 소리를 자주 듣는다.
“아야, 너 방금 나 밀었어. 사과해.”
“야, 그거 내가 먼저 쓰던 건데 왜 가져가? 사과해.”
“선생님, 00이가 새치기하고 사과도 안 했어요.”
저런 것까지 사과를 받아야 하나 싶지만 그들에겐 인생이 걸린 문제 같다. 다시는 안 볼 사람처럼 사과를 하라며 차갑게 말하다가 상대방이 사과를 하면 금방 풀어지며 말한다.
“괜찮아.”
“나도 양보 안 해서 미안해.”
“다음에는 그러지 마.”
그러고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다시 절친이 되어 즐거워한다. 제 때에 하는 사과는 아침사과처럼 마음에 좋아서 우정 유지에 도움이 된다. 그러나 저녁에 먹는 사과처럼 시간을 놓친 사과는 어떤 관계에서든 독이 된다.
유난히 예민하고 말이 뾰족한 7세 친구가 있었다. 친구들에게도 그렇지만 어른이 내게도 그랬다.
“선생님 흰머리 있네요. 할머니 같다.”
“와 진짜 뚱뚱하다. 우리 엄마는 되게 날씬한데. 선생님은 다이어트 안 해요?”
“영어로만 말해 봐요. 나 원어민 과외해서 둘이 발음 좀 비교해보게요.”
처음 이런 말로 내 기분을 상하게 했을 때 당황해서 담임선생님을 보았지만 늘 있는 일이라 포기한 듯한 표정이었다. 나는 오지랖과 잔소리라면 어디서나 빠지지 않는 사람이라 그 친구를 앞으로 불러 다른 친구들이 다 보는데서 말했다.
“@@아, 선생님이 나이가 많아서 흰머리가 있어. 근데 할머니 같다고 하니까 너무 슬프네. 아직 할머니는 아니야 호호호. 이제 그렇게 말하지 말아줘.”
“@@이 엄마는 날씬해서 진짜 좋겠다. 그래도 선생님 집 아이들은 뚱뚱한 엄마라도 엄청 좋아해줘. 다이어트는 노력해 볼게. 그런데 다른 사람들 다 듣는데 뚱뚱하다고 하니까 되게 창피해. 선생님도 @@이 못난 모습 찾아서 친구들 앞에서 말하면 기분 나쁘겠지?”
“원어민 선생님이 훨씬 잘 하실 거야. 선생님이 그 선생님보다 한국말은 잘하잖아. 각자 자기 나라 말을 더 잘 할 걸.”
그렇게 말하고 나는 영어로 지금 너의 행동은 잘못되었다고 말했지만 친구는 전혀 알아듣지 못하고 말했다.
“뭐라는지 모르겠어요.”
무엇이 이 친구의 마음을 구불구불하게 만든 건지 모르지만 내 기분과 상황을 설명하면 들리듯 말 듯 말했다.
“미안해요.”
어느 순간 학기 초의 칼 같던 말이 조금은 부드러워졌다. 복도에서 나를 보면 손을 흔들며 웃어주었다. 아마도 예쁘게 말하는 걸 들어보지 못해서 할 줄 모르는 게 아닌가 싶었다.
그렇게 좀 나아지는가 싶던 어느 날이었다. 신나게 게임을 하다 지고말자 교구를 집어던지기 시작했다. 울면서 결과를 인정하지 않고 상대방을 위협하더니 말리려는 내게 발길질을 했다. 담임선생님은 달려와서 그 친구를 교실 뒤로 데리고 갔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에 나도 너무 놀랐지만 친구들도 그래 보였다. 진정이 좀 되자 담임선생님은 이긴 상대방 친구와 놀란 반 친구들에게 사과하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