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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머니 Feb 15. 2023

월남에서 돌아온 군면제 내 남편

코끼리도 풀을 먹고 그만큼 컸다

 대장내시경을 하러 갈 때는 보호자가 필요하다고 했다. 100킬로를 넘기고 몸이 비대해진 남편은 피를 보지 말아야 할 곳에서 피를 보았다. 항문외과를 급하게 찾았지만 다음 날 보호자를 데리고 오랬다며 사슴 눈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전신마취라서 보호자 같이 오란다."

누가 봐도 어디라도 아플 곳이 있어 보이는 100킬로가 넘는 30대 후반이었던 남편의 수면 대장 내시경을 기다리던 아내는 혹시나 아프면, 만약에 큰 병이면 어쩌나 싶었지만 애써 마음을 다스려야 했다. 병원은 늘 불안한 분위기와 좋지 않은 냄새로 사람을 긴장하게 하는 거라며 이 지루한 시간이 지나면 남편과 함께 무탈하게 집으로 돌아가서 저녁을 먹을 거라며 아무렇지 않은 척 했다. 엉덩이가 뚫린 환자복을 입고 옆으로 누워 나온 남편은 헛소리를 했다. 깨고 나면 부끄러워서 어쩌나 싶게 되지도 않는 말을 했다. 

“똥 싸고 싶어요. 선생님 아직 안 들어왔어요. 왜 안 해요?” 

흔들어 깨워서라도 조용히 하라고 말하고 싶었다. 그런 내 마음을 안다는 듯이 원래 다 저렇다 말하며 간호사는 내 곁을 바삐 지나갔다.      

 

 1시간 정도 기다렸나. 마취가 깬 남편과 진료실에 들어가 별 이상 없다는 말을 들으며 안도했다. 수납창고에서 계산을 하고 있는데 바삐 지나가던 간호사가 처방전을 뽑아주며 말했다. 

"오늘은 죽만 드세요. 내일까지는 기름지고 자극적인 음식 피하세요. 특히 삼겹살이랑 소주 같은 음식은 드시면 안 됩니다. "

"이 사람, 술 못 마셔요. 삼겹살도 안 좋아하는데..."

"어머, 호호호. 되게 잘 드시게 생기셔 가지고...하하하"

하는 간호사는 나와 남편을 번갈아 쳐다봤다.

남편은 한 마디도 못 하고 서서 귓속말로 방귀 나올 것 같다고 빨리 집에 가자고 했다.     

 술도 못 마시고 삼겹살도 즐겨하지 않는 남편의 최애 음식은 월남 쌈. 결혼 전 소개팅으로 처음 만난 날도 커피를 마시고 월남 쌈을 먹으러 가자는 말에 호감을 느꼈다.

‘이 남자 센스 있네. 삼겹살에 소주 한잔 하자고 할 것처럼 생겨가지고는 월남 쌈이라니. 여자를 배려할 줄 아는 사람인거야.’ 하며 큰 착각을 했다. 삼겹살이라면 자다가도 일어나서 먹을 만큼 좋아하지만 소개팅에서는 먹고 싶지 않았다. 예쁘게 차려입고 소개팅에 나갔는데 삼겹살을 먹자면 상대가 나를 배려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먹고 나면 온 몸에 베이는 냄새도 싫었다. 소주까지 한 잔 하면 시끄러운 주변 소음과 원치 않는 주사 등으로 그 소개팅이 잘 될 확률은 극히 드물다.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소개팅에 나온 남자들은 한 명 걸러 한 명이 그랬다.

“삼겹살 끝내주는 집 압니다. 소주도 한 잔하게 삼겹살 집 가시죠.”

삼겹살집을 권하지 않는 다른 한명들은 가고 싶은 곳이 있느냐 묻거나 식사는 다음에 하자며 헤어짐을 권했다. 


 그런데 이 남자는 달랐다. 메뉴 선택도 좋았고 식당 분위기도 좋았다. 이 소개팅을 위해서 열심히 준비해왔다는 생각이 드니 작은 키와 평범한 외모가 달라 보였다.

‘키 크면 싱겁댔어. 아니, 키가 크든 작든 결혼하면 남자는 다 소파에 누워만 있다고 했으니 저 정도 키면 충분해. 잘 생긴 남자 피곤해. 여자들이 가만 두질 않는다는데 저토록 평범하면 누구라도 가만 둘 테니 얼마나 마음 편하겠어.’ 결혼까지 생각하며 월남 쌈을 먹으며 좋아했다. 소개팅을 위해서 준비한 곳이 아니라 월남 쌈을 좋아한 그가 자주 가던 식당이라는 걸 알게 된 것은 결혼식이 끝난 후였다. 와인을 한 잔하며 첫 만남을 회상하던 내가 그 식당은 어떻게 알고 날 데려갔냐고 물으니 남편은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다. 

“거기 아는 선배랑 몇 번 갔는데 그 선배 결혼하고 서울 갔거든. 다음에 또 가야지 했는데 혼자는 못 가겠고, 남자 놈들한테 가자니 월남 쌈 안 먹는다잖아. 먹고 싶어서 계속 가야지 했는데 마침 소개팅을 하게 돼서 너랑 갔지. 그 집 참 맛있어.”      

 

 야채 가득 넣어서 월남 쌈이 먹고 싶다는 남편에게 그게 얼마나 귀찮은데 소리는 하지 않고 좋아하는 소고기가 없다고 했다. 냉장고에는 대패 삼겹살만 있으니 며칠 전부터 노래를 부르던 월남 쌈은 내일 소고기 사서 해주겠다고 했다. 그러나 남편은 삼겹살이라도 해달라며 다시 사슴 눈을 한다. 소고기 핑계를 대며 귀찮은 월남 쌈을 안 하려 했던 계획은 무산됐다. 야채를 복수하듯 가득 담아 다 먹으라 했지만 진짜 다 먹을 줄은 몰랐다. 동남아에서 나고 자란 사람처럼 고수를 즐겨 먹는 남편은 쉽게 구할 수 없는 고수 대신 사온 쑥갓이 입맛에 딱 이라며 한 접시를 다 비운다. 군대도 안 다녀온 사람이 군장 매고 행군한 군인이 짬밥을 비우듯 다 먹어치운다.     

 

 여전히 술도 안 먹고 이제는 90킬로를 겨우 넘기는 40대 중반의 남편은 아직도 월남 쌈을 좋아한다. 90킬로에서 살이 더 안 빠진다고 고민하는 남편은 답을 모른다.

'그걸 다 먹으면 멸치도 고래가 될 거야. 코끼리도 풀을 먹고 그만큼 컸어.'

하고 속으로 말을 삼킨다. 월남 쌈은 몸에 좋고 살도 안 찌는 거라며 마음 편하게 먹고 싶어 하는 군 면제 내 남편을 응원해야 할지 고민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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