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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머니 Feb 22. 2023

은혜 갚은 게장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반찬은 남이 해주는 반찬이다

 간장 게장은 혼자 간장으로 들어가지 않았다. 새우와 고동에게 함께하자며 손을 잡고 이끌어 간장으로 멋지게 잠수하였다. 그러니 게만 끝내주는 것이 아니라 새우의 달콤함과 고동의 꼬들꼬들함도 느낄 수 있는 간장 게장이다. 이 간장 게장은 무려 목포에서 왔다. 목포에는 그녀의 어머니가 살고, 그 어머니는 목포에서 직접 이 간장 게장을 드신 후 돈을 지불하고 두 통을 사서 그녀의 집으로 보냈다고 한다. 그런데 한 통은 나한테 주려고 포장도 뜯지 않고 들고 왔단다. (맞아요. 그녀는 천사예요. 간장 게장 보내준 그녀의 엄마는 천사의 엄마랍니다.)     

 

 18년 전 대학생이었던 그녀는 나와 언니가 하던 작은 가게에 아르바이트생 구하냐며 문을 열었다. '서울말을 쓰네? 고향이 서울인가' 했지만 고향은 목포라고 했다. 부산에서 듣기 힘든 전라도 사투리는 내 귀에 서울말처럼 들렸다. 생긴 것도 서울내기 다마내기(양파의 방언)처럼 생긴 얌체 같은 외모의 그녀였다. '얼마나 하겠어?' 했지만 가게 하는 2년 반 동안 그녀는 늘 무단결근하는 아르바이트생들의 자리를 대신했다. 

“미희야, 오늘 주말인데 바쁘지? 다름이 아니라 오늘 오기로 한 알바생이...”

“네, 언니 저 갈 수 있어요. 조금 있다 갈게요.”

위급한 상황에서 늘 119처럼 전화만 하면 달려와 주었다. 약속이 있으면 몇 시간 후에라도 와서 도움을 주고 갔다. 잘 웃고 일 잘하는 그녀는 높은 시급도 편한 일자리도 아니지만 괜찮다고 했다. 언니들이 필요하다면, 언니들에게 도움이 되면 행복하다며 깐 양파처럼 동그랗게 하얗게 웃곤 했다. 그녀는 야무지고 맵고 달고 알찼다.     

 

 그때 몇 번 밥을 해줬나?

국수를 말아줬나?

일하러 온 사람을 굶길 수는 없고 매번 시켜 먹기는 돈이 부담스러웠다. 있는 재료로 겨우 먹을 만한 걸 내놓으면 칠첩반상을 받은 것처럼 기뻐했다. 차려주는 음식을 남기는 적이 없었다. 치킨이나 피자를 시켜달라던 다른 아르바이생들과는 달랐다. 반찬타령 한 번도 없이 맛있다고 남김없이 다 먹었다. 기숙사 식당 밥이나 라면만 먹다보니 금방 한 밥에 김치만 먹어도 맛있다는 그녀였다. 고향을 떠나 아는 사람 하나 없는 곳에서 먹는 밥이 서럽고 까슬 거렸을 18년 전의 그녀를 안아주고 위로해 준 건 내가 아니라 밥이었다. 18년 전의 철없던 나는 제대로 된 반찬도 없이 간장에 밥을 비벼 김치만 주기도 했다. 이깟 밥 한 그릇에 무슨 큰 의미가 있나 싶어 대충 차려주어도 달게 먹어주던 그녀는 18년이 지났는데 그때 맛있었다며 내게 고맙다고 한다.

"언니 나 그때 진짜 고마웠잖아. 부산에 와서 아는 사람도 없고 학교생활도 힘들었어요. 언니가 해주는 밥 한 끼가 정말 맛있고 고마웠어. 내가 그걸 몬 잊어."     

 

 18년이 지났고 그녀는 아이를 셋이나 낳았고 나는 둘을 낳았다. 잊어버려도 누가 뭐라 하지 않을 텐데 그녀는 김장철에는 목포에서 엄마가 담아 준 김치를 가져온다. 찬바람 불면 유자차를 담아 온다. 엄마가 보내준 맛있는 게장이라며 포장도 뜯지 않고 들고 온다. 18년 전에 소갈비를 해줬더라면, 전복을 쪄줬더라면, 캐비어를 줬더라면 나는 도대체 뭘 받았을까?     

 

 게장이 은혜를 갚는다. 나도 이 은혜를 갚아야겠다. 오늘 내가 한 거라곤 밥솥에 밥을 하고 게딱지에 살을 발라 남편과 아이들에게 준 것 뿐이다. 남이 해주는 반찬이 제일 맛있는 아줌마는 언젠가 간장게장에게 받은 은혜를 갚으러 목포로 가야겠다. 내가 바로 밥도 해주고 국수도 말아주던 그 언니라며 천사의 어머니가 사는 집에 가서 밥도 얻어먹고 김치도 얻어와야겠다. 당신의 딸이 내게 은혜를 갚는다며 가져온 게장으로 내가 은혜를 입었다고 해야겠다. 18년 전의 별 것 아닌 밥 한 그릇에도 고마워하는 당신의 딸 덕분에 내가 고마웠다고 해야겠다. 내가 받은 은혜는 언젠가 갚겠다며 다음에 또 올 핑계를 대고 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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