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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머니 Feb 24. 2023

더 글로리 보다 더 지독한 더 납세미

삼대를 잇는 입맛

그리운 연진에게

기억나니 연진아? 도시락을 열고 냄새나는 생선을 싸 온 나에게 너는 그랬지. 이런 것도 반찬으로 싸 오냐고. 난 조금 부끄럽고 민망했지만 이거 맛있는 거라고 했어. 너는 알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고 그럼 하나만 먹어본다고 했지. 내 반찬을 다 먹은 너는 내게 재차 이름을 물어봤어.

"이름이 뭐라고? 납세미? 수세미도 아니고 납세미라고. 우리 엄마한테 이거 해달라고 하면 되는 거야?"


내 친구의 이름은 연진이가 아니다. 내가 문동은처럼 학폭에 시달렸던 건 더 아니다. 친구의 이름은 기억나지 않지만 그 표정과 말투는 기억난다. 도시락 반찬으로 어울리지 않는 비주얼과 꼬리꼬리한 냄새에 친구는 당황했고 핀잔을 주었다는 것을. 엄마도 생선은 반찬으로 못 싸준다고 했지만 내가 제일 좋아하는 반찬이라 꼭 싸달라고 했다. 그리고 납세미가 뭔지도 모르는 친구들이 많다는 것도 알았다. 연진이들은 납세미를 처음 본다면서 한 번 먹으면 젓가락을 놓지 않았다. 납세미를 다 먹고 나서는

 다음에 또 싸 오라며 소시지나 햄 반찬을 내게 내밀었다. 연진이들 집에는 납세미를 잘 만드는 엄마가 없다는 걸 알고 나니 어깨가 으쓱했다. 딱한 연진이 들 같으니라고.


납세미가 아니라 가자미 아니냐고 묻는 사람에게 납세미에 대해 설명해야 했다. 납세미는 가자미가 아니라 남해에서 나고 자란 엄마가 부산에서 나고 자란 나를 위해 해주는 특별히 맛있고 귀한 거라고 했다. 가자미처럼 흔한 생선이 아니라고 했다.


납세미는 가자미가 맞단다. 그것도 못난이 가자미. 크기도 작고 상품성이 떨어지는 가자미를 건조해서 없는 사람들이 손쉽게 사 먹던 게 납세미란다.(경상도 사투리예요) 엄마는 늘 큰 납세미는 맛이 없다고, 애기 손바닥만 한 납세미가 딱 좋다고 했다. 크기가 작을수록 가격이 저렴했던 시절에도, 작은 납세미는 찾기도 힘든 지금도 엄마의 말은 틀림이 없다. 큰 납세미는 건조가 덜 돼서 흐물거리고 꼬리꼬리한 냄새도 덜 하다. 그냥 생선을 먹는 기분이다. 애기 손바닥만 한 크기의 납세미에서만 느낄 수 있는 냄새와 맛이 있다.


엄마를 닮은 나는 어려서부터 납세미를 좋아했다. 도시락에 넣어달라고 할 만큼 납세미를 좋아해서 몇 마리 남았나 세어놓고 학교에 갈 정도였다. 나를 닮은 딸은 뱃속에서부터 납세미를 좋아했다. 입덧이 조금 수 그러 들자 제일 먼저 생각난 반찬이 납세미였다. 11살이 된 딸은 밥을 먹기 시작하면서부터 할머니가 만들어 오는 납세미에 길들여졌다. 학교에서 쓰는 건강일기에는 납세미에 대한 이야기를 몇 번이나 쓴 적이 있다. 담임 선생님은 "납세미가 뭐길래 우리 진아가 이렇게 좋아할까? 아무튼 맛있는 건가 봐." 하며 글을 달기도 하셨다. 딸은 내게 선생님이 납세미도 모른다니 납득할 수 없다고 했다.

'선생님도 연진이라서 그래' 속으로 말을 삼켰다.


엄마가 해주던 반찬들을 곧잘 따라 만들어 먹는 45살은 75살이 된 엄마에게 아직도 납세미를 만들어 달라고 떼를 쓴다. 내가 그걸 어떻게 만드냐고 엄마가 해오라며 앙탈을 부린다. 그리고 엄마가 해준 납세미의 살을 발라 딸의 도시락 대신 저녁밥을 차린다. 나는 여전히 납세미를 조릴 줄 모르니 엄마는 무조건 오래 살아서 딸과 손녀를 위해 납세미를 해달라는 이기적인 기도를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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