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테크 말고 다테크
“그래요, 나 샤넬백이 없어요.”
어린이집 등원시킬 때, 학원에 데리러 갈 때 그 백을 맬 필요는 없으니 됐다고 했다. 그 백을 사려면 돈만 있다고 되는 게 아니었다. 경차 한 대 값 정도의 그 백은 백화점 문도 열기 전 새벽부터 줄을 서서 사야 한다고 했다. 재테크 좋아해서 '주식하는 아주머니'라면서 샤테크도 모르냐고 그 백이 있는 친구는 말했다. 하나 사라고, 값이 더 오를 테니 중고로 팔아도 된다고 했다. 자기는 남편을 6개월간 닦달해서 받아냈다며 좋아했다. 너도 그 정도 백은 들 수 있는 경제력이 되지 않느냐며 사라고 권했다.
“애들 학교 가봐라. 학부모 모임에 온 엄마들 전부 샤넬이야. 너만 책가방 매고 갈래?”
학교 아니고 어린이집 엄마들의 모임에 잠깐 가 봐도 그랬다. 샤넬이거나 샤넬 비슷한 가격이거나 샤넬보다 더 비싼 가방을 들고 온 엄마들은 많았다.
‘젊은 엄마가 뭘 해서 저 비싼 가방을 샀을까? 남편이 잘 버나? 시댁이 부자인가? 친정 부모님이 사 준거면 본투비 부자인가?’ 그런 생각을 하며 백과 엄마들을 번갈에 보게 된다는 것을 굳이 숨기지 않겠다. 아예 비교 대상이 되지 않는 에코백을 들고 갔으니 검소한데 지혜롭기까지 하다며 스스로를 칭찬하고 돌아오는 길에는 에코백도 무겁게 느껴졌다.
샤넬의 시옷자도 못 꺼내본 건 남편 때문이었다. 가방 하나를 그 돈 주고 사려면 이혼하고 사라고 했다. 차라리 경차를 한 대 사라고 했다. 샤넬백이 아니라 사치백 이라며 꿈도 꾸지 말라던 남편이었다. 그걸 사는 여자나 사주는 남자나 미쳤다며 부자와 그 아내들의 정신상태를 혼자서 진단했다. 남의 정신 상태나 진단하던 남편의 친구가 결혼하던 날이다. 코로나 이후 오랜만에 외출이라 화장도 공들여서 하고 눈썹도 힘줘서 올렸다. 구매대행으로 70% 세일한 명품가방도 들었다. 샤넬 짝퉁보다 저렴한 가격이라며 5년 전에 장만한 가방을 자랑스럽게 둘러매고 아이 둘의 손을 잡고 결혼식장으로 갔다.
오랜만에 외출했을 남편 친구의 아내들은 모두 경차 한 대씩을 들고 왔다. 모두가 샤넬은 아니었지만 경차 값 정도의 백을 매고 온 그녀들을 보며 나는 매고 간 가방이 보이지 않게 뒤로 돌려 맸다. 그녀들이 신고 온 구두 한 짝의 값도 안 될 가방을 숨겼다. 그리고 그 날 결혼식장과 피로연 식당에서 남편은 그녀들의 백을 보았던 모양이다. 보지 않으려 해도 보였던 모양이다. 그러니 5년을 살았던 집의 앞집 아저씨 얼굴도 기억 못 하던 사람이 집으로 오며 한 마디 했다.
"다들 잘 사는 가 보네. 와이프 가방이 뭐 그리 다 좋노. 니 꺼도 명품 맞제?"
눈치를 보며 남편이 말했다. 자기 눈에도 와이프의 가방이 초라해 보이고 저렴해 보였겠지. 그렇다면 지금이 기회이니 슬쩍 물어본다.
“그래서 나도 그런 명품백 사줄 거야? 샤넬백 사줄 거야?"
“니 돈 있으면 사라."
꿈도 꾸지 말고 이혼하자던 남편이 허락을 해준 순간이다. 그러나 남편의 허락과 상관없이 돈은 없고 샤넬은 비싸니까.
다시마 채는 내가 제일 좋아하는 반찬이다. 식당에서 다시마 채가 나오면 제일 먼저 접시가 빈다. 나만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나랑 비슷한 또래의 아줌마들은 대부분 다시마 채를 좋아했다. 식당에서 다시마 채가 나오면 이것 좀 더 달라면 싹싹 비워가며 몇 접시씩 먹었다. 재밌는 식감에 바다냄새가 나는 다시마 채는 밥도둑계의 대도로 통한다. 따끈한 밥 위에 가득 올려 먹으면 미끄덩하고 오도독한 식감과 맛에 밥 한 그릇은 나도 모르게 없어진다.
그런 다시마 채가 돈 있어도 못 사는 신세가 되었다. 대형마트에도 잘 없고 재래시장에나 가야 살 수가 있다. 동네에 오는 채소 트럭 할머니한테 아침에 가야 겨우 살 수 있다. 그것도 오전 10시 이후에는 없을 때가 더 많다. 아이들 등원 시키고 열심히 달려가서 다시마 채를 찾으면 할머니는 그랬다.
“우짜고 새댁. 다 팔렸다. 이거 살라믄 빨리 오라카이”
돈 있어도 못 사는 귀한 다시마 채를 우연히 발견한 날이다. 바구니 한 가득히 2000원이라고 한다. 검은 봉지를 손에 들고 오는 기분이라니. 줄을 서서 샤넬백을 획득하면 아마 이런 기분이겠거니 한다. 백보단 밥이라며 밥에 어울리는 다시마 채 반찬이 있는 내가 더 부유한 사람 아니겠냐며 (여성 시대)같은 라디오 프로에 사연을 보내야 할까 싶다.
샤테크라니. 귀찮게 줄을 서서 거울 보며 요리조리 들어보고 사 와서 조심조심 몇 번 들다가 중고시장에 내서 웃돈을 조금 얹어 받는 수고로움이 부럽지 않다. 우연히 발견한 싱싱한 다시마 채를 사 와서 흐르는 물에 잘 씻어서 맛있게 무쳐서 밥 위에 한가득 올려 먹을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침이 고인다. 다시마 채를 반찬으로 만들어 먹었다는 사진을 SNS에 올려야겠다. 샤넬백이 있다고 은근히 로고 보이게 사진을 올리던 그녀들도 다시마 채를 한 가득 올려 밥을 먹는 모습에 침을 흘릴 테지. '맛있겠다며. 그거 어디 파냐며. 한 입만' 하며 부러워할 그녀들이 눈에 선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