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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머니 Mar 23. 2023

엄마야 누나야 부산 살자

오뎅에 반짝이는 물떡꼬치

 친구들 족보를 꼬이게 만드는 빠른 년생이다초등학교를 7살에 들어갔고 19살에 전문대 대학생이 되었다. 20살에 졸업반이었고 1학기 끝나고 서울로 실습을 갔다서울 역에서 내리면 이름이 보이는 호텔에서 실습을 할 수 있다니 난 정말 운이 좋다며 들떴다호텔로 출퇴근하는 호텔리어의 멋진 모습을 상상했지만 직원들은 정문 로비가 아니라 뒤쪽 개구멍 같은 작은 문으로 출입했다호텔 뷔페 같은 식사를 기대했지만 직원 식당은 좁고 어두웠다늘 자리가 없어 기다려야 했고 붙어 있는 깻잎을 떼려면 좀 밝아야 했다서울만 가면 다 좋을 줄 알았다부산보다 멋지고 세련된 곳이니 뭘 해도 뭘 먹어도 서울 티가 날 줄 알았다서울사람처럼 말하고 먹으면 서울 티가 몸에 밸 줄 알았다.     

 

 실습이 끝나고 족발이 유명한 동네의 호텔에서 직원을 채용한다는 말에 이력서를 넣었고 용케 합격을 했다비록 계약직이었지만 98년도의 대한민국에서 취업을 했다는 것만으로 내 고향 부산에서는 현수막을 걸고도 남을 일이었다친구들과 놀면서 같이 하던 실습이 아니라 혼자서 돈을 받고 노동력을 제공하는 일을 해야 했다실습 학생 때는 못 해도 되는 일이 직원이 되고 나니 못 하면 혼나는 일이었다선배들은 무서웠고 서울내기 다마내기였다한 선배는 고향이 부산이라고 했더니

"출세했네부산에서 서울까지 와서 취직을 다 하고그러면 너희 집 횟집 하니?" 하며 서울공주라도 되는 양 해맑게 무시했다.     

 

 서울은 추웠고 못되고 이기적이었다호텔리어는 법적 휴무를 다 지켜서 쉴 수 있었다주 5일 근무에 월차와 연차와 생리휴가까지 쓸 수 있었다한 달에 11일 이상을 쉴 수 있었지만 서울에서 만날 친구도 없었다호텔에서 알게 된 친구와는 휴무가 맞지 않으니 밖에서 만나기도 어려웠다집에만 있기는 그러니 종로나 인사동을 갔다동대문도 갔다배가 고프면 길에서 오뎅(어묵글의 재미를 위해 오뎅으로 통일합니다)을 사 먹었지만 서울말이 서툴러 차마 물어보지 못한 말이 있었다.

'아주머니여기 물떡은 없나요?'

목까지 차오는 이 말을 못 물어봤다어디에 가나 떡이 안 보였다서울사람들은 오뎅보다 떡을 좋아해서 떡이 빨리 팔리나 보다 했다그래도 부산에는 늘 한두 개는 남아 있는데다 팔리면 아줌마가 바로 넣어주는데 서울은 안 그랬다.     

 

 그날도 서울은 추웠고 손님들은 어려웠고 선배들은 얄미웠다새벽조라 6시부터 2시까지 근무를 마치고 집으로 가야 하는데 배가 너무 고팠다떡볶이와 오뎅을 파는 곳이 보였다그리고 그날은 물떡이 하나 먹고 싶었다짭조름한 멸치육수에 폭 담겨서 흐물흐물해진 떡을 젤리처럼 씹어 먹고 싶었다용기를 내야 했다.

"아줌마물떡은 없어요?"

"무슨 떡여긴 떡은 안 팔아요."

"아니요물떡요떡이요오뎅처럼 꼬지 끼운 떡 없어요?"

"우린 그런 거 없어요어묵뿐이에요."

서울에는 물떡이 없는 거였다.

그동안 다 팔려서 못 먹은 것이 아니었다물떡이 없다니서울에는 물떡이 없다니.     

 

 그때부터였다서울이 우스웠다물떡도 안 파는 서울물떡도 모르는 서울내기들바다도 없는 주제에 한강가지고 잘난 척 하다니 코웃음이 났다. 2년 반 동안의 호텔리어를 끝내고 부산으로 내려와서 좋았던 것은 오뎅을 파는 곳에는 반드시 물떡이 있다는 거였다간장에도 찍어 먹고 떡볶이 양념을 조금 덜어 찍어 먹어도 되는 물떡이 있었다.     

 

 부산에서 나고 자란 아이들은 집에서도 밖에서도 물떡을 잘 먹는다보이면 사달라고 하고 배고프면 만들어 달라고 한다그 아이들이 자라서 서울에 간다고 하면 말해줘야지서울엔 물떡이 없단다오뎅에 반짝이는 물떡 꼬치는 없는 곳이란다그러니 엄마야 누나야 부산 살자 하면서 서울 가지 말라고 붙잡아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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