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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머니 Feb 13. 2023

명품김치도 나이 앞에 장사 없다

엄마의 손맛을 대신한 오징어 2마리, 설탕, 미원

 시아버지는 결혼하고 우리 집에 식사하러 오셔서 김치를 많이 드셨다. 원래 김치를 좋아하시는 줄 알았는데 남편은 아니라고 했다.

"아부지 매운 거 안 드신다."

이상하네. 김치 잘 드시던데. 엄마 김치 매운 편인데 했지만 남편은 아니라고 했다. 아들은 저렇게 자기 부모한테 관심이 없다며 시부모님을 딱하게 여겼다.      

 아버지가 식사하고 가신 다음 주, 시댁에서 점심을 먹는데 시어머니가 말씀하셨다.

"느그 아부지가 그렇게 맛있는 김치 첨 묵어봤다고 하드라. 내가 김치를 못 담그든. 사돈 김치가 그래 맛있다 하시드라."

시어머니의 김치를 먹어본 사람은 그 말씀이 겸손이 아님을 안다. 짠맛이 강한 시어머니 김치를 처음 먹고 나서 남편이 내게 하던 말을 이해했다. 

"사람들은 엄마하면 생각나는 음식이 있다 하잖아. 나는 그런 거 없다. 엄마 음식 중에 특별히 먹고 싶거나 기억나는 게 없어."


 우리 엄마의 음식을 받아먹으며 결혼 생활을 시작한 남편은 장모들은 원래 다 김치를 잘 담는 줄 알았단다. 친구네 놀러 갔다가 장모한테 얻어 온 김치라기에 의심 없이 먹었다가 놀랐다며 말했다. 

"와, 어떻게 그 장모 김치는 짜고 맛도 없지."     

 엄마는 김치를 잘 담는다. 누가 먹어도 맛있다 소리가 절로 나오는 김치를 담는다. 엄마 김치를 먹어본 내 친구들은 집에 놀러 오면 김치 얻어갈 생각에 눈이 반짝인다. 김치냉장고를 명품관 쳐다보듯 부러워한다. 어쩌다 한 포기라도 싸줄까 하면 좋아서 어쩔 줄을 모른다. 비닐에 꽁꽁 묶어서 명품 쇼핑백에 담아 손에 들려준다. 그녀들은 김치 냄새 폴폴 나는 그 가방을 요래조래 흔들며 좋다고 집으로 간다. 어머니 김치 갖고 오시면 전화하라는 말도 잊지 않는다. 신상백이 나오면 연락하라는 고객님처럼 당부를 하고 간다.      

 

 그런 엄마의 김치가, 명품도 부럽지 않던 김치가 맛이 없다. 10번이면 10번 다 맛있던 김치가, 10번이면 2번은 맛이 없다. 엄마는 70대 중반이라 그렇다고, 늙어서 맛도 잘 모른다고 한다.

"김치 어떠노? 마싯제?"

하고 물었는데 맛없다고 하면 투덜투덜 그렇게 말한다. 다 늙어서 무슨 김치를 담는다고, 재료만 버렸다고, 이제 네가 담아 먹으라고 한다. 그래도 담아 먹을 자신은 없으니 또 해달라고 한다. 그러나 이제는 맛만 없는 문제에서 그치지 않는다. 자꾸 보이는 머리카락을 내가 먼저 보고 빼내면 다행이지만 식탁에서 남편의 젓가락에 걸려 올라오면 얼굴이 화끈거린다. 엄마에게 전화해서 머리 좀 빗고 김치 담으라고 퍼붓는다. 

“그게 왜 들어 갔을고? 이상하네. 머리 다 빗고 담았는데.” 

하며 무안해 하는 엄마는 아랑곳 않고 전화를 끊는다.      

 

 몇 주가 지나고 새 김치 담았으니 가져가라기에 엄마에게 갔다. 친정 부엌 벽에는 못 보던 화려한 꽃무늬 모자가 걸려있다. 머리카락 들어갈까 모자 쓰고 김치를 담는다는 엄마. 그래도 불안해서 돋보기까지 쓰고 담으니 이제 걱정 말고 먹으라고 한다. 큰 통에 가득 든 김치를 들고 집으로 와서 맛을 본다. 생김치로 먹기엔 맛이 없다. 익혀서 찌개나, 볶음으로 먹어야겠다며 냉장고 깊숙이 넣어둔다. 70대 중반의 엄마에게 앞으로 몇 번이나 김치를 더 받을 수 있을까? 김치 맛이 있네, 없네 잔소리를 하는 것도 아직은 건강한 엄마가 옆에 있어서라는 걸 안다. 그러니 이번 김치도 10번 중의 2번에 속하는 머리카락을 세 번이나 찾아낸 김치이지만 오징어를 두 마리나 넣어서 김치전을 한다. 엄마가 김치 맛을 물어보면 부침개해서 먹으니 끝내준다, 찌개 하니 최고다 한다.

"그래, 내 김치는 뭘 해도 마시따. 아끼 무라. 배추 비싸다. 난주 배추 값 떨어지몬 또 담아 놓으께. 가가라이." 한다.     

"김치전 맛있네." 

하는 남편에게 오징어 2마리와 설탕과 간장과 미원에게 빚졌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장모가 담은 김치라 맛있다고 생각하게 내버려 두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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