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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머니 Feb 19. 2023

우리의 김밥은 당신의  고기보다 아름답다.

카드값의 무서움에 대하여

자고로 김밥이라 함은 재료 많이 들어가고 손 많이 가는 음식이라 하겠다. 한 줄에 천 원 하던 김밥이 4천 원이 된 시대에서 김밥은 돈 많이 들어가는 음식이라 해도 뭐라 할 사람이 없다.


그런 김밥에게, 비싸져 버린 김밥에게 감히 해선 안 될 말이지만 해버리고 만다.

(우리의 김밥은 당신의 고기보다 아름답다)

주말이니까, 밥도 하기 싫었으니까 고기 먹으러 가자는 남편의 말이 사랑스러웠다. 어쩜 저렇게 내 마음을 잘 알아주나 싶어  그럼 어디 한 번 가볼까 하고 엉덩이를 들었다. 나를 다시 끓어 앉힌 '띵동'하는 알림음은 핸드폰에서 나왔다. 결제일에 내야 할 돈이 월급과 맞먹으니 고기 같은 소리 말라며 다시 앉으라고 했다.


'그래도 주말이잖아. 나갈 거야. 밥 하기 싫다니까. 그렇다고 고기 먹으러 가면 5만 원은 넘게 쓸 텐데, 소고기 먹자고 하면 10만 원인데 다음 달 카드값 자신 있어?' 내 안의 천사와 악마가 싸웠다. 천사는 고기를 먹으러 가라며 나를 달랬고 악마는 돈도 없는 게 고기 먹으려 한다고 나무라는 것 같았다.

누가 천사인가?

누가 악마인가?


잠깐 고민하고 말했다.

"점심 맛있는 거 해줄게. 집에서 먹자. 먹고 공원 가서 킥보드 타자. 아이스크림도사 줄게."

아이들은 좋다며 박수를 쳤지만 남편은 달랐다.

"고기는?"

"다음에 먹자"

"언제? 우리 저번주에도 안 먹었는데? 그럼 점심은 뭐 해줄 건데?"

무슨 카드값이 이렇게 많이 나오냐고 매달 묻는 남편에게 네가 먹자는 그 고깃값이라고 말하고 싶다.

"뭐 먹고 싶은데? 일단 재료 좀 볼게"


저번 달에 김밥 싸고 남은 통단무지의 3분의 1쪽이 보인다. 엄마가 무쳐주고 간 시금치나물이 있다. 계란은 늘 있으니까 됐다. 냉동실에 어묵과 김밥김은 상비약처럼 넣어두니 그것도 다행이다. 당근과 햄이 문제다. 당근은 반쪽밖에 없으니 일단 그거라도 넣고 되는대로 해보자. 햄은 없지만 세일한다고 샀더니 맛없다고 거들떠보지도 않던 소시지가 보인다. 이거다! 이거면 되는 거다!

"김밥 먹자."

모두의 환호를 받으며 재료를 준비하고 둘둘 말아 김밥을 6줄 쌌다. 왔다 갔다 집어먹기 바쁜 딸은 맛있다고 엄지 척을 날려준다. 어른이보다는 어린이의 입에 맞추느라 밥은 적게 크기는 작게 쌌다.  뭐라도 잘 먹는 남편은 먹기 바쁘다.


나의 수고로움으로 김밥은 그렇게 사랑받았다.

고기보다 맛있고, 카드값한테도 눈치 보지 않았다.

우리의 김밥은 당신의 고기보다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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