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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머니 Feb 25. 2023

유씨가문 유부초밥

결혼은 미친 짓이니 미친 척하고 해야 한다.

79년도 10월에 부산에서 한 아이가 태어났다. 그 아이는 유 씨 집안의 첫째 아들이었고 아버지는 매운 음식을 입에도 못 대는 분이셨다고 한다. 유 씨 집안 아들은 자라면서 빨간 음식을 먹은 기억이 없다고 한다. 어머니는 맵고 자극적인 걸 좋아하는 전형적인 부산 사람이었지만 강원도 출신 아버지는 매운 음식만 보면 땀을 흘리시는 분이었다. 그래서 집에서 먹는 음식은 대체로 허여멀건 했단다. 김치도 고춧가루 조금, 국물요리는 맑게, 땡초는 먹어보지 못하고 자란 유 씨 집안 첫째 아들.


79년도 2월에 정 씨 집안의 둘째 딸이 태어나기 전부터 어머니를 힘들게 했다고 한다. 어머니는 입덧이 너무 심해서 과일과 매운 음식만 먹고 견뎠다고 한다. 이 집의 아버지는 음식에 땡초가 안 들어가면 불같이 화를 내는 분이셨다. 아버지만 그런 게 아니라 어머니도 모든 음식에 땡초, 땡땡초, 땡땡땡초를 넣어 드시는 걸 좋아했단다. 땡초가 안 들어가면 입도 안 대고 백김치는 김치도 아니라며 눈앞에서 치우라며 자란 정 씨 집안 둘째 딸.


유씨네 남자와 정씨네 여자는 만나서 결혼을 했다. 입맛은 놀랍도록 달랐고, 성격도 입맛과 비슷했다. 남편은 순하고 느긋하고 태평하고 게으르다. 아내는  표독스럽고 급하고 조급하고 재빠르다. 그들이 공통분모를 가지고 좋아하는 음식은 5손가락 안에 들 정도로 많지 않다. 그러니 아내가 매운 아귀찜이 먹고 싶으면 남편이 미워진다. 우거지 가득한 감자탕이 먹고 싶으면 남편을 바꾸고 싶다. 매콤 새콤한 비빔국수가 먹고 싶으면 아내는 왜 결혼을 했나 후회스럽다.


담백하고 허여멀 건하고 느끼해 보이는 유부초밥에 마요네즈에 풍덩한 크래미를 얹은 유부초밥을 한 날이다. 아내는 먹지도 않을 저 유부초밥을 한 이유가 뭘까? 유 씨 집안 첫아들에게 미안한 일이 있었으니까.  짜증스럽게 말하고  하고 싶은 말만 하지만 어제는 더 그랬다는 걸 아니까 슬슬 눈치가 보인다. 매콤한 김치찌개가 먹고 싶지만 그걸 했다간 유 씨 집안 첫째 아들의 기분이 계속 안 좋을 걸 알기에 다급하게 냉장고를 스캔하고 초밥을 준비한다.


아내는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남편을 부른다.

"유부초밥 했는데... 크래미도 얹었어."

대답 없이 게임만 하던 남편은 아내가 베란다로 간 사이 식탁으로 온다. 세탁기에 빨래를 돌리고 이것저것 바쁜 척을 하고 돌아오니 식탁 위 접시에는 유부초밥이 반만 남았다.  


11년을 같이 살았는데 변하지 않는 입맛, 이해되지 않는 성격이다. 그래도 아내는 먹지도 않을 유부초밥을 한다. '미안하다, 화 풀어라' 말 대신 맵지 않은 음식을 한 접시 해놓으면 남편은 '괜찮다'는 말 대신 다 먹어 없앤다. 결혼은 미친 짓이지만 결혼을 안 한다고 안 미친 게 아니니 미친 척하고 해 보라고 한다. 유부초밥은 공짜로 줘도 안 먹던 아내가 시간과 공을 들여 남편을 위해 만들게 되는 것이 결혼이니까. 미친척하고 해 볼 만하다며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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