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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머니 Feb 17. 2023

꽃을 보듯 너를 본다.

자세히 먹어야 예쁘다. 오래 먹어야 예쁘다.

곧 봄이 올 거라고 한다. 입춘은 지났고 낙동강 옆 도로에 오래된 벚꽃나무들은 벌써 연분홍빛을 보이기 시작했다. 냉이와 달래가 맛있는 봄이라고 했다.

그러나 주변을 둘러봐도 여기도 패딩, 저기도 패딩, 패딩이 판을 친다. 그래도 곧 온다는 봄이라기에 분홍색 얇은 재킷을 입고 나간 나는 식겁하며 3월까지는 나도 패딩이라고 마음먹었다.


시간이 지나면 봄은 오고 꽃은 핀다. 알싸하게 추운데 매화꽃이 피면 군락지 근처에 차를 가지고 간 자신은 탓하지 않고 남 탓만 한다. '다들 돈 없다면서, 경기 어렵다면서 꽃 보러는 오나 보네.' 하며 길에 서 있는 다른 차들만 원망한다. 벚꽃사진은 SNS에서 '좋아요'를 많이 받을 수 있으니 꼭 찍어야 한다. 비 오면 떨어질 테니 봄비가 오기 전에 가야 한다며 서두른다. 그렇게 봄을 기다리는 사람들은 꽃에서 봄을 찾는다. 봄=꽃이라는 공식은 언제나 옳다며 한참을 기다리고 오랜 시간을 들여서 꽃을 보러 다녀온다.


꽃을 보는 시간은 며칠이나 될까? 한참 보는 시간은 얼마나 될까? 그렇게 기다렸지만 활짝 핀 꽃 앞에서 사진만 열심히 찍으며 제대로 보지도 않고 돌아와서는 내년봄에 필 꽃을 기다리고 있는 건 아닌가 말이다. 우리 딸처럼, 우리 딸이 떡볶이를 기다리는 것처럼 말이다.


금요일은 나도 불금이라고 외치는 11살 딸은 오늘 저녁으로 떡볶이를 원했다.  떡볶이에 찍어먹을 튀김도 있어야 한다며 이것저것 말만 하면 나온다는 듯이 주문했다. 금요일의 지친 몸을 이끌고 떡볶이와 튀김을 준비하는데 1시간 정도가 걸렸다. 꽃이 피기를 기다리는 그 시간처럼, 지루하고 더디갔다. 딸은 몇 번이나 부엌으로 와서 진도를 확인하고 튀김을 주워 먹었다. 드디어 떡볶이가 다 되었다.

"와서 먹어. 다 됐어."

젓가락까지 세팅을 하고 식구들을 불렀다.


둘 째의 밥을 몇 숟갈 먹이는 동안 떡볶이는 이미 바닥이 보였다. 10분도 걸리지 않는 그 개화의 시간 동안  아무도 말하지 않고 먹기 바빴다. 나 혼자서 계속 묻고 있었다.

"맛있지? 안 맵지? 계란도 맛있지?"

건성으로 응, 응 대답하던 딸과 튀김만 먹던 남편은 젓가락을 놓고 유유히 사라졌다. 개화시기 꽃 사진만 찍고 사라지듯이.

그 떡볶이가 다 되기까지 어떤 노력이 있었는지 궁금해하는 사람은 없다. 얼마나 많은 시간이 필요했지는 아는 사람은 없다. 개화시기 우리는 꽃만 보고 사진만 탐하는 것은 아닌가. 떡볶이가 다 되었다고 먹고만 가는 것은 아닌가.


긴 시간을 기다려 핀 봄꽃에게도, 한 시간을 만들어 마친 떡볶이에게도 예의를 다하자. 자세히 들여다 보고, 오래 들여다보자.

너 참 예쁘다.

너 참 맛있다.

꽃 같은 말을 떡볶이처럼 피워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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