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주머니 Feb 14. 2023

입맛이 어떻게 변하니?

미역... 먹고 갈래요?

예쁜 이혼녀는 젊은 총각에게 라면 먹고 가라며 꼬셨다. 사실 그 정도 미모면 라면 먹고 가라고 안 해도 안 넘어올 남자는 없지 싶다. 그 영화를 보았던 20대에는 젊은 총각이 너무 불쌍하고 여우 같은 이혼녀가 참으로 얄미웠다.

'저거, 저거, 저렇게 예쁜 이혼녀들이 잘 생긴 총각들을 툭툭 건드리니 내가 만날 남자가 없잖아'

하며 내 외모 말고 그녀의 외모만 탓했다.

.

20대에도 안 먹던 미역나물.

10대에는 냄새도 싫다고 했다. 엄마가 자주 하던 반찬인데 바다 냄새나고 텁텁한 맛이 나서 싫다고 했다. 특히 미역줄기의 질긴 식감이 싫었고, 생마늘의 알싸함이 끔찍했다.

"안 먹어. 미역 좀 무치지 마."

그래봐야 엄마는 겨울이면 꾸준하게 미역을 무쳤다. 생미역을 초장에 찍어먹고 미역귀를 와구와구 씹어 먹었다. 창문만 열면 바다가 보이고 그 위에 떠 있는 외할아버지의 배가 보이는 바닷가에서 나고 자란 엄마는 바다가 지겹지도 않은 모양이다. 바다에서 나는 건 뭐든 좋다고, 맛있다고 먹는다. 70이 넘어도 미역귀를 와구와구 잘도 씹어 자신다.

.

사랑이 어떻게 변하냐는 총각을 애틋해 하던 나는 이제 예쁜 이혼녀를 이해한다. 사랑은 변하는 거고, 쉬운 만남도 있다는 것을. 모든 사랑이 영원불변은 아니라는 것을. 사랑이 변하듯 입맛이 변한다는 것도 안다. 쉬운 입맛도 있다. 아이를 둘이나 낳고 모유수유하는 1년 동안 미역을 안 먹은 날 보다 먹은 날이 더 많았지만, 미역이 좋다. 안 먹던 미역나물이 맛있다. 흔하고 뻔한 라면보다 바다향이 나는 텁텁하고 오독거리는 식감이 좋다. 생마늘향이 안 나면 계란 빠진 라면처럼 섭섭하다.

.

라면 먹고 가라고 꼬시던 예쁜 이혼녀는 못 됐지만, 미역 먹고 가라고 꼬실 수 있는 아이 둘 낳은 아줌마가 되었다. 몸에 좋고 맛도 좋고 값도 싼 미역이다. 겨울에만 맛볼 수 있는 생미역을 좀 먹고 가라고 꼬시 있는 중이니 누구라도 좀 넘어와 줬으면.

매거진의 이전글 토마토 반찬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