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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머니 Mar 14. 2023

전생에 나라를 구하고 만든 꼬막

손동지 오신 날

손동지. 그녀를 그렇게 부르는 사람은 내 남편이다. 그들은 같은 정치색을 가지고 같은 정당을 후원하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절대 집회나 모임에 참석하지 않지만 정치 후원금을 내고 조합이나 연합이라는 이름의 단체에 기부를 한다. 손동지가 집에 온다 하면 남편은 먹거리를 걱정한다.

남편은 바닷가 비린내가 나는 음식을 싫어한다. 눈치가 보여 생선도 못 굽고 조개도 못 삶지만 손동지가 놀러 오는 날은 마음대로 먹을 수 있다. 같은 정치색을 가지고 같은 정당을 지지하는 손동지에 대한 남편의 배려라고 할까? 해물찜이나 낙지볶음까지는 참아내며 같이 먹던 남편도 꼬막 앞에서는 무너졌다.

"난 햄버거 시켜줘."


손동지는 나와 입맛이 비슷하고 책취향, 음악취향, 남자취향도 비슷하다. 우리가 처음 만난 곳은 목포에서 온 천사가 아르바이트했던 가게였고 주인과 손님이었다. ('은혜 갚은 게장'을 읽고 오세요) 손님으로 왔던 손동지는 작고 소중했다. 몸이 큰 남자친구 뒤에 숨으면  작아서 잘 안보였고 많이 시켜 먹어서 매출을 올려주는 소중한 손님이었다. 그녀와 나는 처음부터 사랑에 빠진 것처럼 끌렸다. 책과 음악과 시와 남자 취향이 어쩜 이렇게 비슷하냐며 '서로의 마지막 연인'이라도 되는 듯이 애정하고 좋아했다.

 

18년을 빠짐없이 만나고 좋아할 수 있었던 것은 내가 전생에 나라를 구했기 때문이라 믿는다. 취향은 비슷해도 살아온 환경 때문인지 성품은 다르다.  나는 성격이 모나고 뾰족하다. 손동지는 순하고 여유롭다. 이렇게 다른 우리가 18년을 찰떡같이 붙어 다닐 수 있었던 이유는 분명 내 전생에 있을 것이다. 아이들 좋아하지 않는 손동지는 결혼 12년 차에 아이가 없는 부부생활을 행복해한다. 아이 낳을 생각이 없지만 언니네 아이들은 보고만 있어도 사랑스럽다며 코로나로 외출이 힘들어지니 집으로 왔다. 자주 왔고 늘 무겁게 아이들 선물을 들고 왔다. 명품 립스틱을 사 오고, 프랑스산 치즈를 들고 온다. 첫 책을 계약했다니 작가에게 어울리겠다며 고급 스카프를 사 오는 손동지. 그러니 내 전생을 믿어 의심치 말라.

꼬막 껍데기를 깔 생각을 하니 고달프다. 차라리 배달로 해물찜 같은 걸 시켜줄까 싶다. 그러나 손동지가 좋아하는 꼬막을 양념해서 밥에 비벼주면 얼마나 잘 먹을지 알기에 그러지 못한다. 언니가 해주는 건 다 맛있다고 이것도 저것도 조금씩 먹으며 식탐을 부리지만 결국은 반도 못 먹을 배 작은 손동지를 기쁘게 해주고 싶다. 명품 화장품도 고급 스카프도 못 사주는 언니지만 너를 위해 명품 꼬막을 사서 고급 양념을 만들었다고 해야지. 프랑스산 치즈 말고 우리 집산 김치를 곁들여 먹자고 해야지. 남편에게는 더블패티로 햄버거를 시켜주겠다고 약속을 하고 냄새를 폴폴 풍기며 꼬막을 삶는 손동지 오기 전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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