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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머니 Mar 13. 2023

겉절이를 봄동 하다

이번 대회의 우승자는 미모와 맛을 겸비한 겉절이양

"브런치 먹으러 가자."

별로 안 좋아하는 제안 중에 하나다. 누군가 아이들 등원과 등교를 시키고 브런치를 먹으러 가자고 했다. 새로 생긴 브런치 카페에 가자며 분위기도 좋고 샐러드도 맛있는 곳을 안다고 했다. 그걸 들은 아줌마들은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집에서 먹던 김치나 밥 말고 세련된 느낌이 나는 브런치 먹으며 우아해 보자며 다들 신나 했다. 거기서 산통을 깨며 비빔밥이나 먹으러 가자고 할 수는 없으니 나는 그저 약속이 있다며 그 브런치를 함께 하지 않을 뿐.


비싸고 양도 작은 브런치. 큰 접시에 샐러드가 한가득 나오고 계란 프라이 하나 빵 몇 조각에 소시지 한 두 개쯤을 내어주며 2만 원 넘게 받는 곳도 있다. 음료를 따로 시켜야 하니 커피값 5천 원을 더하면 2만 5천 원이었다. 그렇게 먹고 배라도 부르면 다행이지만 돌아오는 길에는 국수라도, 김밥이라도 먹어야 뭐라도 먹은 것 같았다.

'그래요. 나 촌스러워요. 배도 커서 많이 먹어요.'

내가 돈을 내도 아깝고 누가 사준다고 해도 아까운 그 브런치의 메인은 누가 뭐래도 샐러드였다. 샐러드가 싫은 건 아니지만 한식으로 이만큼 살이 찐 사람으로서 샐러드에게 마음을 뺏긴 적이 없다. 조금 맛있다 싶어도 엄마가 금방 무쳐주는 겉절이를 먹고 나면 '캬, 이거지. 새콤달콤 고기랑도 잘 맞고 겉절이가 최고야' 그랬다.

겨울초(동초)가 나오면 여리여리한 잎을 손으로 툭툭 뜯어서 새콤하게 겉절이 했다. 얼갈이가 맛있는 여름이면 한 단에 천 원에 사서 겉절이를 해서 바로 먹기도 하고 익혀 먹기도 했다. 그리고 겨울부터 나오는 겉절이를 봄동 했다. 달큼하고 아삭거리는 소리가 좋아서 봄동만 보이면 사 와서 무쳤다. 초벌부추가 보이면 그것도 사서 같이 무쳤다. 설탕도 넣고 식초도 가득 넣어서 살살 무쳐서 숨이 죽지 않은 상태로 먹으면 그 어떤 샐러드한테도 기죽지 않았다. 샐러드 선발대회가 있다면 진이겠구나 싶게 맛도 미모도 완벽했다.


세련되고 비싼 걸 좋아하는 사람들은 여전히 샐러드를 먹자며 샐러드가 맛있는 브런치 가게로 가자고 한다.

"진아 엄마 내일 뭐 해? 우리 브런치 먹으러 가자."

2만 5천 원이나 하는 브런치를 먹으러 가느니 우리 집에 와서 봄동 겉절이에 계란프라이를 넣어서 참기름을 가득 둘러 밥을 비벼 먹자고 말하고 싶다. 세련되고 비싼 사람들에게 샐러드 선발대회 진의 맛과 미모를 선보이고 싶지만 촌스러운 취향이 들킬까 봐 오늘도 약속을 핑계 대며 브런치와 샐러드를 멀리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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