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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머니 Mar 11. 2023

김수한무거북이와소시지

볶으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

딸은 발로 키우는 거라고 했다. 아들 둘을 키워본 친구는 내 딸을 보며 그랬다. 저런 애는 발로도 키운다고. 나는 힘들어 죽겠는데 지는 애 다 키웠다고 저런 소릴 한다 싶어 얄미웠다. 딸도 손으로 키운다고 힘들어 죽겠다고 했다.


힘들게 키운 딸이 6살이 되고 나는 41살이 되었는데 둘째를 가졌다. 아들이라고 했다. 장손인 남편과 결혼했으니 아들 눈치를 안 주셔도 나는 받았다. 시어른들께 어깨 펼 수 있었다. 넓은 어깨를 더 넓게 더 활짝 펴며 나온 배를 어루만졌다. '내 배에 아들 있다.'

그 아들이 나오고 손과 발을 다 쓰고 허리까지 내어주며 키우다 보니(허리디스크 왔어요. 많이 업어줘서요) 옳은 말 하는 친구에게 절로 고개가 숙여졌다. 그렇게 힘든 것 같더니 아들 키워보니 딸은 발로 키웠어도 될 만큼 수월했다.


딸은 한 번도 한 적이 없는 행동을 하는 아들을 이해하기 어려웠다. 나는 딸로 자란 적 밖에 없으니까. 싱크대에 냄비를 다 빼고 들어가는 아들, 식탁밑에 온갖 장난감을 넣어두는 아들, 현관문을 열자마자 튀어나가는 아들, 놀이터에서 집에 안 가겠다고 드러누워버리는 아들. 그런 행동을 할 때마다 나는 남편을 불렀다.

"니 아들 좀 봐."


딸은 밥도 잘 먹고 반찬투정도 없었는데 남편의 아들은 안 그랬다. 잘 먹는 날도 있지만 안 먹는 날은 상을 뒤엎어 버렸다. 시금치를 잘 먹어서 또 해주면 뱉어버리고, 백김치를 잘 먹기에 잘게 잘라주면 집어던졌다. 인내심이 한계에 달하는 날에는 울기보다 열기를 택했다. 소시지 한 봉지를 열고 몇 개를 꺼냈다.


저 어린아이에게 소시지라니. 아질산나트륨이 풍부한 몸에 나쁜 소시지라니. 넌 진짜 나쁜 엄마야


다 들리게 혼잣말을 하며 소시지에 칼집을 가득 내고 끓는 물에 끓여서 닦아내서 구워서 준다. 남편의 아들은 투정 없이 밥 한 그릇을 다 비우며 최고를 외치며 사랑스럽게 웃어준다. 신나게 뛰어놀고 있는 아들을 보니 죄책감이 밀려오지만 힘들게 나물을 하고 김치를 잘라줘서 안 먹는다고 화를 내느니 서로를 웃게 해주는 소시지야 말로 좋은 음식이 아닌가 싶다. 몸에 좋은 음식을 먹으며 스트레스를 받으니 좋아하는 음식을 먹으며 기쁘다면 진짜 몸에 좋지 않겠냐며 스스로를 설득한다.


오래전에는 귀한 아이가 태어나면 무병장수하라는 의미에게 긴 이름을 지어 불렀다고 한다. '김수한무 거북이와두루미삼천갑자동방삭...' 하며 이름을 불 렀단다. 안 먹는 채소를 먹이기 위해 볶음밥을 하면서 잘 먹는 소시지를 넣은 날은 그렇게 아들을 불러본다. '김수한무거북이와소시지...' 하며 몸에 안 좋은 음식도 엄마가 이런 긴 이름으로 불러주면 몸에 좋은 음식으로 바뀐다는 전설이 있다는 듯이.

"김수한무거북이와소시지야, 볶음밥 먹자. 소시지 가득 넣었네요."

"쏘띠지? 와, 최고"

먹어보지도 않고 최고를 외치며 달려오는 김수한무거북이와소시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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