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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머니 Mar 09. 2023

이름을 지어주실래요?

고기는 한입도 안 먹는 나, 고기만 한없이 먹는 너.

사장님 소리를 듣던 아빠는 자신을 늘 목수라고 소개했다. 또는 집 짓는 사람이라고 했다. 우리가 살던 집도 옆에 옆집도 밑에 골목에도 사거리 큰 상가주택도 아빠가 지은 집들이었다. 그리고 아빠가 공사를 하나 계약했다는 소문이 들리면 새시나 페인트, 도배장판 집을 하던 사장님들은 파인애플 선물세트나 종합과자선물세트를 들고 집으로 왔다.

"고마 지나는 길에 들렀슴다. 집에 알라들 있는 거 생각나서 샀심다. 알라들 주이소."

그 알라는 나였고 나는 좋아서 웃음이 나는 걸 참기가 힘들었다. 빨리 저 사장님이 가야 선물세트를 풀어볼텐데 싶어 언제 가는지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조금 이야기를 나누던 사장님은 아빠와 껄껄껄 웃으며 나갔다.

"사모님 오늘 저녁 하지 마이오. 사장님 제가 모시고 가서 저녁 대접하겠심다,"

"아이고, 선물도 윽쑤로 비싼 거 사 왔는데요. ㅎㅎㅎ 그러몬 나는 밥 안 해예. 당신 밥 묵고 오이소. 집에 와서 밥 달라 하지 마이소 호호호."

하며 엄마는 현관까지 배웅했다.

"아이고 갔다. 라면끼리 줄까?

엄마는 진짜 밥을 안 할 생각이었고 나는 선물세트에 라면이라니 오늘 복 터졌구나 싶었다.


저녁 대접을 받고 온 아빠는 잔뜩 화가 나서 투덜거리며 들어왔다.

"밥 있나?"

"밥요? 밥을 왜 찾는교? 저녁 대접받고 온 사람이.."

"소고기 묵자캐서 고마 돼지 묵자카니께 유명한데 있다고 가자캐서 갔지. 고기 다 묵고 나니 느끼해서 김치찌개나 묵었으면 하는데 그 집에는 된장찌개뿐이라네. 그거 달라카니 그것도 소고기 넣은 거라. 느끼해서 죽긋다. 김치랑 밥도."

 아, 그 사장님 어쩌나. 아빠한테 소고기를 사주다니. 그건 대접이 아니란 걸 몰랐을 사장님은 아마 그 공사에 자신의 가게 물건은 못 넣었을 것이다.


피는 못 속이지만 소고기 불호도 못 속인다. 나는 소고기보다 돼지고기가 좋다. 같은 값이면 돼지고기를 먹고 싶다. 돈을 더 내서라도 돼지고기를 먹고 싶다. 아빠는 소고기를 기름지고 느끼해서 싫다고 했다. 선물세트로 소고기가 들어오면 나와 아빠는 실망했고 언니와 엄마는 침을 흘렸다. 네 명의 가족도 이렇게 입맛이 달랐지만 늘 아빠 위주로 밥상을 차리던 그 시절 엄마 덕분에 나는 원하면 언제든 삼겹살을 먹고 돼지고기 김치찌개를 먹을 수 있었다. 제육볶음과 수육도 즐겨 먹던 우리 집에서 소고기를 먹은 날은 열 손가락 안에 들 정도로 많지 않았다.


33살에 결혼하고 34살이 되었을 때 나는 친정엄마와 언니에게 말했다.

"평생 먹은 소고기보다 결혼하고 1년 동안 먹은 소고기가 더 많은 것 같아. 소고기 좀 그만 먹고 싶다."

그도 그럴 것이 시아버지는 돼지고기를 안 드셨다. 닭고기도, 오리고기도 안 드시는 분. 소고기만 드셨고 소고기를 좋아하셨다. 주말마다 시댁에 가면 소고기를 가득 구워서 먹어야 했다. 그리고 이 집도 피를 못 속여서 큰 아들인 남편도 그랬다. 오로지 소고기만, 반드시 소고기를, 비로소 소고기여야만 했다.

이제는 소고기를 좋아할 때도 되지 않았냐고 할 지모르지만 모르는 소리다. 여전히 돼지고기가 좋은 나는 소불고기는 냄새만 맡아도 자다가 깨는 남편을 위해서, 소고기 안 좋아하는 나를 위해서 꾀를 낸다. 소불고기 양념에 같이 버무린 떡볶이 떡을 먹겠다는 원대한 계획을 가지고 궁중 떡볶이를 아니 간장 떡볶이를 아니 불고기 떡볶이를 했다. 이 음식을 뭐라고 불러야 하나? 빨강도 파랑도 아니지만 어떤 이름도 어울리는 이 음식이야 말로 회색분자가 아닐까 싶지만 맛만 좋다면 뭐라고 부른 들 무슨 상관이냐 싶다. 나는 나 좋아하는 것 먹고, 너는 너 좋아하는 것 먹으면서 살게 해 줬으니 너의 이름을 뭐라고 부른 들 무슨 상관이냐 싶다. 그래도 혹시 시간이 나신다면... 이름을 지어주실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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