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구지찌짐에는 땡초도 넣어야 맛있다
국민 학교에 입학(1984년)하고 정구지가 아니라 부추라고 해야 한다는 말에 충격 받았다.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단어였다. 부.추.라니. 당근을 보고 배추라고 말해야 한다는 것처럼 며칠을 충격에 휩싸였다.
엄마는 시장에 가면 난전에 장사하는 아주머니와
"아지매, 정구지 얼만교?"
"다 가가라. 다 해서 오백 원만 주라 새댁."
"옴마야 떨이 주믄서 오백 원을 받노. 사백 원만 받으소."
"안 팔고 말지. 새댁이 그라믄 몬써. 이거믄 김치도 담고 찌짐도 열 장을 넘게 꿉으 묵는다."
엄마는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천 원을 내고 정구지를 한가득 받고 옆에 오이를 덤으로 달라고 했다. 아주머니는 못 이기는 척하며 진열된 예쁜 오이 말고 상자 안에 있는 못 생긴 오이를 꺼내줬다.
그게 정구지였다. 김치도 담아먹고 찌짐도 구워먹는 정구지를 정구지라 부르지 못한다니. 호형호제를 못 하는 홍길동의 마음이 내 마음과 같았겠지. 정구지만 못 부르면 다행인데 찌짐이라고 하면 안 된다고 했다. 선생님은 부침개나 전이라고 해야 한다며 찌짐은 사투리라고 했다. 표준말을 사용해야 교양 있는 사람이라며
"너거들도 앞으로 표준말을 사용하쎄요. 아랐지요?" 하며 교양 있는 척 했다.
엄마와 아빠는 남해에서 나고 자랐다. 서부경남의 사투리는 부산의 사투리보다 더 짙고 탁하다. 개그우먼 김숙이 말했던 것처럼 부산 안에서도 울산이나 진주에서 온 아이들의 사투리를 놀린다는 것은 사실이었다. 부산 사람들은 부산 근교 지역의 사투리를 귀신같이 알았다.
“오데서 왔는교?”
“남해서 부산 온 지 십 년 넘었쓰예.”
“그래도 표 난다. 부산 말이랑 쪼매 다릅니데이.”
경상도의 표준어는 부산 말이라는 듯이 부산 사람들은 다른 지역의 경상도 사투리를 들으면 고향을 물었다. 나는 부산에서 나고 자랐지만 남해에서 나고 자란 엄마와 이야기할 때는 엄마 말투를 잘 따라 한다. 지금도 엄마랑 이야기할 때는 세고 드센 사투리를 많이 섞어서 이야기한다.
11살 딸이 부침개를 먹고 싶어 한다. 부산에서 나고 자랐지만 부산 사투리를 전혀 안 쓴다고 생각하는 딸은 부추랑 오징어 많이 넣어서 전을 부쳐달라고 한다. 딸을 위해 부추 전을 하고 있는데 엄마한테 전화가 왔다.
"저녁 묵나(저녁 먹니)?"
"아니 찌짐 한다. 진아가 먹고 싶다 캐서(해서). 오징어 넣어서 한다."
"아, 정구지 집에 쌔빗는데(많은데) 가가지.(가져가지)"
"사몬(사면) 된다. 그거 쪼매(조금)가지러 가는 기름 값이 더 든다. 엄마 꿉으무라. (구워 드세요)“
부침개를 먹으러 나온 딸이 묻는다.
"할머니야?"
"응"
"엄마, 엄마는 할머니랑 이야기할 때는 꼭 할머니처럼 말해. 약간 시골사람처럼 말해."
"그런가? 할머니가 남해사람이라 엄마도 할머니 남해 말을 잘 따라 해서 그런가 봐. "
교양 있는 척 딸에게 대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