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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머니 Mar 17. 2023

노인을 위한 나물은 없다

해놔바라 잘먹지

물컹거리고 단맛이 도는 무나물이 싫다. 어려서도 싫었지만 결혼하고 아이를 낳아도 변하지 않았다. 안 먹던 고사리도 취나물도 없어서 못 먹지만 무나물에게만은 마음을 열기 어려웠다. 맛도 싫었지만 냄새도 색깔도 싫었던 나물이다. 무나물은 할머니들이 이가 성하지 않아서 먹는 반찬이었다. 동네 평상에 앉아 놀던 할머니들은 밥때가 되면 양푼에 담긴 밥과 무나물을 먹었다. 허연 무나물을 허연 밥 위에 올려 먹으며 이도 없는 할머니들은 오물오물거렸다. 치과 치료를 받거나 속이 쓰려서 약을 먹을 때는 엄마도 무나물을 했다. 차라리 무생채를 하라고 말해도 엄마는 먹기 편하다며 무나물을 해서 혼자 먹었다. 그런 엄마도 가족에게 무나물을 권하지는 않았다. 소화가 잘 되고 씹기에 부담이 없지만 엄마도 즐겨 먹지는 않고 약처럼 먹는 무나물이었다.


하비에르 바르뎀 -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유명한 영화라고 했다. 단발머리에 권오중과 박나래를 닮은 남자배우가 나오는 영화지만 나는 안 봤다. 제목만 듣고 노인이야기인가 싶지만 줄거리를 찾아보니 그렇지 않다고 한다. 영화는 안 보고 제목만 듣고 멋대로 노인을 생각하고 무나물을 안 먹어보고 맛이 없다며 싫어했다.


노인을 위해 만든 무나물. 이제는 노인보다는 환자라는 말이 더 익숙한 시아버지. 8개월 전 쓰러지셨을 때는 병원에서 한 달도 못 버틸 실 거라고 했다. 저번주에 만난 시아버지는 휠체어 타고 병실에서 내려오셨다. 왼손으로 내 손도 잡고 아이들의 손도 잡으시며 눈물을 흘리신다. 어눌한 말투로 반찬해온다고 고생한다 고맙다고 하신다. 8개월 동안의 고달픔과 슬픔과 어려움은 재주가 모자라 글로 다 옮길 수가 없다.


시아버지를 위해 좋아하시는 소고기를 잔뜩 넣어서 무나물을 한다. 노인을 위한 나물이라며 안 먹던 무나물을 한 입 먹어보니 맛이 좋다. 5살 아들도 잘 먹겠다 싶어 한 입 권하니 "또, 또"를 외친다. 할아버지의 외모를 똑 닮은 아들은 입맛도 닮았나 보다. 아들 밥그릇에 가득 덜어준다.


영화를 봐야겠다. 노인 이야기겠지 하며 짐작하지 말고 보고 나서 평가를 해야겠다. 무나물도 먹어야겠다. 노인들이나 좋아할 반찬이라며 멀리하지 말아야겠다. 무나물이 입에 맞다며 철이 드는 꿈을 꾼다. 몇 달 만에 식성이 바뀌서 내가 좋아하는 무나물 많이 했으니 조금 들고 간다며 시아버지가 건강하게 걸어 다니시는 시댁으로 가는 꿈을 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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